"학부모가 들러리냐" "전날 연락와, 황당"..'만5세 입학' 간담회

2022. 8. 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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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전 차관·유치원학부모 간담회
"발달·정서 고려 부적절" 학부모 의견
"만4세부터 한글교육..말도 안돼"
전날 간담회 소집, 졸속 간담회 비판도
차관 "아이가 자산, 인재로 키워야"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교육부-유치원 학부모 국가교육책임제 강화 관련 간담회에서 한 학부모가 질문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만5세 취학 학제개편안 관련 교육부 간담회에서 유치원 학부모들은 만5세부터 초등학교 교육을 받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일치된 입장을 보였다.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교육부·유치원 학부모 국가교육책임제 강화 관련 간담회에서는 만5세 입학 추진 시 사교육 증가, 누리과정 중단, 열등감 같은 심리적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학부모들의 우려가 나왔다.

이날 간담회에는 서울·인천·경기 소재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고 있는 학부모 9명과 장상윤 교육부 차관, 김병규 교육복지정책국장 등이 참가했다.

학부모들 대다수는 만5세 아이들의 발달과정에 비추어 초등학교 입학이 무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장 차관은 “아이마다 다를 수 있는 발달 차이를 보조교사를 배치해 케어하거나 적응을 도울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열등감 같은 심리적인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인천에서 온 만4세 아이 학부모 곽유리 씨는 “아이들이 원치 않는 환경과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정서적 결함으로 향후 사회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염려했다. 곽 씨는 “내 아이만 잘 크면 안 되고 옆의 아이, 그 옆의 아이도 잘 커야 하는데 무리한 만5세 입학으로 사회가 더 각박해지지 않겠나”고 되물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학부모 다수는 2025년 정책 강행 시 2019년생 등 과도기 학생들이 받는 불이익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취학 연령을 당기는 것보다 만4세~만5세 대상 유아교육 자체를 의무교육으로 바꾸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학부모들은 만5세 입학 추진 시 당장 아이들이 겪을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해 설명했다. 서울에서 만4세·만2세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 김정숙 씨는 “놀이 중심 누리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아이들이 갑자기 40분짜리 학교 수업을 듣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며 “2019년 개정된 누리과정에 정부가 들인 노력까지 수포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립유치원생 학부모 A씨는 “정책이 2024년 2월에 확정되면 2019년 1~3월생 준비도 없이 학교에 가야 한다”면서 “보조교사를 통해 도움을 줄 게 아니라 누리과정 3년을 2년으로 축약하든, 반 구성을 달리하든 취학 전에 미리 도움을 다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의견에 대해 장 차관은 “고려해 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전국 유치원 42%가 사립, 어린이집 50%가 민간”이라며 “관리주체, 보육교사와 유치원 교사의 자격 문제, 서비스의 질 등 해결할 문제들이 많다”고 답했다.

이날 장 차관은 학령인구 감소를 언급하며 학부모에게 학제개편의 배경을 설명했다. 장 차관은 “학령인구가 줄어 지금 2세가 대학 갈 때면 정원은 47만명인데 아이는 29만명”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의 국가경쟁력과 경제를 유지한다는 전제라면 아이들이 우리나라의 자산”이라며 “한 명 한 명 인재를 키워내는 방식으로 교육하지 않으면 어려운 상황이 된다”고 부연했다.

장 차관은 아이들의 한글 교육과 익힘 시간을 초등학교 과정에서 확대하는 방안을 이야기했으나 학부모들의 공감을 받지 못했다. 학부모들은 공교육의 질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교육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교육부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대다수 아이가 입학 전 한글 교육을 끝낸다며 취학 연령이 당겨지면 만4세부터 한글 교육이 시작될 거라고 반박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유치원 학부모 9명과 국가교육책임제 강화 관련 간담회를 마치고 한 학부모로부터 항의를 받고 있다. [연합]

한 학부모는 “한글을 알아야 수학 등 다른 과목 문제와 내용을 따라갈 수 있다”면서 “한글 교육을 안 시키고 아일 보낼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학부모 B씨는 “만4살 제 아이는 아직 1부터 10까지 세지도 못한다”면서 “1자도 쓰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경기 소재 공립유치원의 만3세 아이 학부모 김성실 씨는 “8살인 아이 반에서 4월부터 한글 시작해 3개월 만에 문장 받아쓰기를 하더라”면서 “취학 전에 한글을 마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학제개편 추진 시 신도시 등에 과밀학급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경기도에서 만5세 아이를 키우는 박미정 씨는 “수도권 신도시의 경우 총량제 때문에 학교 신설 및 학급 증설이 어렵다”면서 “정책이 성인 공급자 위주의 시각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장 차관은 “수도권 같은 인구 집중 지역은 과밀학급 문제가 심각한 게 맞다”면서 “과밀학급 해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경기 공립유치원 학부모 권영은 씨는 “갑작스럽게 마련된 이 자리가 너무 당황스럽고 유감”이라면서 “유치원에서 정서적으로 성장하고 노는 게 우선이 될 아이들의 1년을 함부로 빼앗으려고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간담회는 열띤 질의가 이어지며 예상 시간보다 10여분 늦게 끝났다.

지난 1일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빠른 속도로 간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를 두고 ‘졸속 간담회’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한 학부모는 간담회가 끝난 뒤 나오는 장 차관에게 “학부모들을 들러리 서라고 부른 거냐”며 질타했다. 이어 “새 정부가 나온 지가 언제인데 이런 식으로 진행을 하느냐. 사과하고 철회하라”고 요청했다. 실제로 이날 간담회는 전날 오후께 학부모들에게 연락이 왔고 그 과정에서 장소도 변경됐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또 다른 학부모도 황당함을 드러냈다. 그는 “갑자기 참석해 달라는 유치원 연락을 받았을 때 너무 황당했다”면서 “장소가 여의도라 해서 간다 했는데 장소도 바뀌어 못 올 뻔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말할 우선순위라도 좀 더 고민해서 왔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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