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를 '영끌 투자'로 이끄는가..실험적 연극 '자연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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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골반이 다 닳아버린 어머니는 더는 걷거나 일을 하지 못하게 됐다.
4∼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하는 연극 '자연빵'은 연출가 전윤환의 비트코인 투자기를 무대로 옮긴 1인 다큐멘터리극이다.
연극 '자연빵' 속에서 전윤환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더 큰 존재는 기후위기와 불평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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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2030에게 제대로 된 사다리 없는지 묻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오른쪽 골반이 다 닳아버린 어머니는 더는 걷거나 일을 하지 못하게 됐다. 비가 오는 날이면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반지하 방에 살던 연극 하는 친구는 '예술인 주택'에 당첨됐다. 유튜브에는 '20년 노력해 번 돈의 몇 배를 친구가 1년 만에 집값으로 벌었다'는 사연이 넘쳐난다.
강화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연극만 생각하던 한 젊은 예술가는 이런 일을 겪으며 가상화폐에 손을 댄다.
4∼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하는 연극 '자연빵'은 연출가 전윤환의 비트코인 투자기를 무대로 옮긴 1인 다큐멘터리극이다. 본인의 실제 경험과 허구와 경계가 거의 없어 예술가의 '당사자성'이 강하게 살아있는 작품이다.
대학로에서 촉망받던 젊은 연출가였던 전윤환은 2018년 강화도로 귀농했다. 그는 지난해 초 동료 연극인의 투자담을 듣고 1백만 원으로 비트코인 투자를 시작했다고 한다.
3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최종 리허설을 마친 전윤환은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처음엔 대부분의 사람들이 투자를 하는 이유가 궁금해 작품을 위한 조사 차원에서 투자를 해봤다"며 "그런데 1백만 원이 3백만 원이 되고, 추가로 넣은 돈이 9백만 원까지 늘어나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눈이 돌아갔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그동안 연극을 하며 모은 전 재산을 다 투자했고 며칠 지나지 않아 1천만 원의 손해를 봤다"며 "오늘 현재 수익률은 마이너스 74%"라고 밝혔다.
이 경험은 다큐멘터리극 '자연빵'으로 만들어져 지난해 6월 서울 신촌극장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다.
당시 공연은 생생한 경험담과 무대에서 직접 빵을 굽고 티켓 수익금을 실시간으로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등의 파격적인 형식으로 화제를 모았다.
세종문화회관이 동시대를 선도하는 작품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싱크 넥스트22'에 초대돼 1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전윤환은 "이 작품을 통해 왜 2030 세대가 제대로 된 사다리 없이 주식, 가상화폐, 부동산 열풍에 인생을 걸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묻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작품 제목인 '자연빵'은 영화 '타짜'에 나오는 도박 용어다.
전윤환은 "'자연빵'은 거짓말이나 속임수 없이 제대로 게임을 하자는 의미"라며 "도박 용어라는 점에서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모습과 잘 맞는 동시에 허구가 아닌 실제라는 의미가 다큐멘터리극의 특성과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투자의 도박적인 성격을 강조하듯 공연 중 티켓 수익금으로 진행되는 실시간 투자는 수익 증대를 위해 부채를 끌어다 투자하는 전략인 '레버리지'를 적용한다.
전윤환은 "레버리지를 쓰면 더 큰 기대감을 품게 되고 또 그만큼 큰 손해를 입기도 한다"며 "지난해 신촌극장에서 공연할 때는 티켓 수익률의 80%가 공연 중 '청산'당했다"고 말했다.
연극 '자연빵' 속에서 전윤환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더 큰 존재는 기후위기와 불평등이다. 전윤환뿐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대부분 세대가 실감하는 엄혹한 현실이기도 하다.
농사를 짓는 농작물이 이상기후로 시들어가고, 전염병으로 인해 닫힌 극장 문은 그에게서 연극의 기회를 빼앗아 간다.
작품은 "이 연극에 희망 따윈 없어"라는 단호한 대사로 끝난다.
경제적 자유를 꿈꿨던 시도들은 처참히 실패하고, 인류가 기후위기 앞에서 힘을 합치기보단 전쟁을 하는 현실은 모른 척하고 싶을 만큼 아프고 절망적이다.
"무대에서 가짜 희망을 전하는 것이 괴로웠다"는 전윤환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기 위해 애쓴 노력의 흔적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한다.
wisef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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