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살 정치인 펠로시의 대만행..사명감인가 성취욕인가
35년 의정생활 '반중' 행보 대미 장식
중 민주주의·인권 관심 일관성 보이지만
'펠로시 유산' 남기려 무리한다는 지적도
82살 노정객인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하면서, 이 문제가 별안간 미-중 관계의 ‘핵’으로 부상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사실상 만류하는데도 대만을 찾아 강경한 대중국 메시지를 발산하는 그의 뚝심에 어떤 공적, 사적 동기가 있는지 관심을 끌고 있다.
펠로시 의장은 2일 밤 10시44분(현지시각) 대만에 도착한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대만의 활기찬 민주주의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방문 성격을 규정했다. 또 “세계가 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에서 선택에 직면한 상황에서 2300만 대만인들에 대한 미국의 연대는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날 <워싱턴 포스트>에 실은 기고에서도 “중국공산당의 가속화하는 공격에 직면”한 대만에 대한 ‘수호’ 의지를 강조했다. 또 “홍콩의 정치적 자유와 인권에 대한 중국공산당의 잔혹한 탄압”을 비난하고 위구르족과 티베트족을 억압하고 있는 현실도 비난했다. 요컨대 ‘독재냐 민주냐’라는 세계적 차원의 투쟁에서 독재의 아성인 중국공산당에 단호히 맞서겠다는 메시지다.
펠로시 의장의 중국 정부와 중국공산당에 대한 반대 활동은 대중 강경파가 많은 미국 의회에서도 단연 독보적이다. 하원의원이 된 지 4년 만인 1991년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 동료 의원들과 함께 “중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라고 쓴 펼침막을 든 게 강렬한 출발점이었다. 그는 이어 중국에 대한 최혜국 대우 지위 부여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앞장서 반대했다. 방미한 중국 지도자에게 인권 문제에 항의하는 서한을 전달하고, 하원의장 첫 임기 때인 2009년에는 중국을 방문해 정치범 석방을 요구했다. 올해 2월 베이징겨울올림픽 때는 각국 지도자들이 보이콧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국에 대한 그의 높은 관심은 중국 출신 유권자들이 많은 샌프란시스코가 지역구인 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펠로시 의장의 이번 대만 방문은 그런 점에서 일관되고 비타협적인 반중 행보의 연장선에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번 방문은 35년간 거침없는 중국 비판자였던 그의 경력에서 정점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군에서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지 않는다”며 사실상 만류의 뜻을 밝히는데도 방문을 강행한 것에는 개인적 욕심도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외교 사안의 주도권은 대통령에게 있다지만 펠로시 의장은 의회의 독립성을 이유로 고집을 꺾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언론들은 펠로시가 35년 동안 하원의원과 하원의장(총 7년6개월)을 지내는 긴 정치 역정을 걸어오며 꾸준히 매달려온 주제에서 대미를 장식해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펠로시 의장에게 대만 방문은 중국 비판자로서의 긴 경력에서 최고의 성취로 기록될 유산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펠로시 의장은 이번 기회를 놓치면 더는 자신에게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는 올해 4월 대만 방문을 추진했지만 코로나19 감염으로 일정을 미뤘다. 이번에 다시 일정을 연기해 11월 중간선거를 넘기면 더 이상 의장석에 앉아 있지 못할 공산이 크다. 그는 19번째 하원의원 임기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지만,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 지위를 잃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민주당이 승리해도 하원의장을 계속하기는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해 한 대만 언론은 대만 정부 쪽이 초청 철회 의사를 밝혔지만 펠로시 의장이 “이번이 아니면 적당한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대만 정부는 이를 부인했지만, 이 방문이 펠로시 의장 개인의 ‘업적 쌓기’ 성격이 강하다는 관측과 맥이 닿는 보도라 할 수 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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