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25년 추적' 알자와히리, '발코니 독서 습관'에 꼬리잡혔다
CIA, 미군 철수 뒤 귀환 확신
아프간이 여전히 테러 세력 은신처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은거하던 알카에다 지도자 아이만 알자와히리(71)를 제거했다는 발표는 미군 아프간 철수 이후 대테러전의 딜레마를 보여준 사건이다. 미국은 미군 아프간 철수 이후에도 테러 세력에 대처하는 능력을 과시했지만 아프간이 여전히 테러 세력들의 무대로 남아 있음도 드러냈다.
중앙정보국(CIA) 등 미국 정보당국이 알자와히리를 추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군 아프간 철수 뒤 그가 아프간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미 당국은 이 때문에 아프간 내 알자와히리의 연결 고리를 추적해, 그를 포착하게 됐다고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은 2일 전했다.
미국은 알카에다가 존재감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1998년 탄자니아 및 케냐의 미 대사관 동시 폭탄테러 사건 이후 25년 가까이 알자와히리를 추적해왔다. 알자와히리는 당시 사건 이후 대부분의 세월을 파키스탄의 아프간 접경 지역에 은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그와 오사마 빈라덴을 잡으려다가 지난 2009년 알카에다 이중첩자의 역공작에 말려, 아프간 기지에서 폭탄테러를 당해 중앙정보국 대테러요원 7명이 숨지기도 했다.
2011년에 오사마 빈라덴을 제거한 중앙정보국은 2012~2013년 파키스탄 변경지역인 북와지리스탄의 한 작은 마을에 알자와히리가 숨어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마을의 가옥 12채 중 어떤 것이 그가 숨어있는 곳인지를 파악할 수 없어서 습격을 하지는 못했다.
지난해 8월 미군이 아프간에서 전격 철수한 이후 추적팀은 그가 아프간으로 돌아올 것으로 확신하고, 탈레반의 분파인 하카니 네트워크 등을 주시했다. 하카니 네트워크는 1980년대 소련의 아프간 침공 때부터 알자와히리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알자와히리의 가족들이 아프간으로 온 것으로 파악됐고, 그 또한 귀환한 사실을 알아챘다.
외국대사관 등이 있던 카불의 부촌인 세르푸르 지구에 있는 주택 한 채가 미국 당국에 포착됐다. 이 주택은 하카니 네트워크 고위관리의 측근이 소유한 주택이었다. 알자와히리의 태도와 생활습관 등을 오랫동안 분석한 추적팀은 그가 아침에 발코니에 나와서 장시간 맑은 공기를 쐬거나 독서를 하는 습관을 알고 있었다. 추적팀은 장년 남성 한 명이 포착된 주택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고, 아침에 발코니에 오랫동안 머무는 것을 파악하고는 알자와히리임을 확신했다.
지난 4월 1일 중앙정보국은 이런 추적 결과를 백악관에 보고했다. 6월과 7월 고위관리들은 백악관 상황실에서 알자와히리 제거 작전을 거듭 논의해, 중앙정보국 소속의 드론을 이용해 헬파이어 미사일로 공격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알자와히리 제거 작전이 불러온 정치적 파장에 신중했던 조 바이든 대통령도 7월 25일 작전을 승인했다. 지난 7월31일 새벽 카불의 상공에는 드론이 떴고, 아침 6시께 주택에서 한 남성이 발코니로 나왔다. 6시18분께 헬파이어 미사일이 발사됐고, 20년 이상 걸렸던 알자와히리 제거 작전은 막을 내렸다. 미국이 발사한 헬파이어 미사일은 탄두가 없는 대신 표적에 명중하기 직전에 6개의 칼날이 주변으로 펼쳐지도록 한 파생형 ‘에지엠(AGM)-114R9X’이 사용됐을 것으로 <아에프페>(AFP) 통신은 추정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일 알자와히리 제거 사실 발표 때 공격 당시 집에 있던 알자와히리의 가족 중 다친 사람은 없다고 발표했다.
제임스 인호프 공화당 상원의원은 알카에다 지도자가 아프간에 있었다는 사실은 “이 나라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 정책의 실패를 반영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아프간 특사를 지낸 잘메이 할리자드는 이번 작전은 “우리가 아프간에 비용이 많이 드는 대규모 병력을 주둔하지 않고도 테러에 맞서 우리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다”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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