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번복으로 국민 신뢰 잃어"..尹정부 소통방식 이대로 괜찮나
(시사저널=박나영 기자)
교육부가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낮추는 학제개편안을 발표한 지 나흘 만에 폐지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정부의 대국민 소통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공론화 과정 없이 정책을 내놓은 다음 반발에 부딪히자, 수정·전환하면서 국민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통령실은 2일 초등학교 입학연령을 낮추는 학제개편안에 대해 "아무리 좋은 개혁정책이라도 국민 뜻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라며 백지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곧이어 박순애 교육부 장관도 "국민이 원치 않으면 폐기될 수 있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2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박 장관이 학제 개편안을 공식화한 지 4일 만에 전면 재검토 수순을 밟게된 것이다.
성난 학부모와 교육 관계자들이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예상치 못한 반발에 직면하자, 다급히 수습에 나선 정부는 혼란을 더 키우는 발언을 이어갔다. 앞서 강력한 추진 의사를 보였던 것과 달리 공론화를 약속했고, 이어 반발이 더 거세지자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정책은 폐기하겠다며 백지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백년지대계'를 성급히 발표한 데 이어 상황에 따라 방침이 계속 바뀌면서 불신이 더 깊어지는 형국이다.
섣부른 '만 5세 입학' 정책 발표로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신뢰만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지적이다. 조성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대통령 업무보고 내용을 보면 '학생, 학부모 등 수요자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마련하고 국민과 함께 펴나가겠다'고 돼 있는데, 누구의 요구도 없었고 누구와도 사전 교감이 없었던 정책을 불쑥 발표했다가 뭇매를 맞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억지로 찬성 의견을 만들어서 찬반논란으로 끌고갈 일도 아니다"라며 "어느 정도 국민의 공감대가 있어야 공론화 필요성도 있는건데, 대다수가 반대하는 정책을 공론화하는 것은 소모적이고 괜한 갈등만 부추길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정책을 발표하면서 어느 정도 비판을 예상했을 것이고, 예상을 못했다면 더 이상하다"면서 "불쑥 꺼냈다가 반대가 심하니 말을 바꾸는 것은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릴 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학제개편안에만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정작 교육개혁을 위해 교육 관계자들이 의견을 제시했던 중요한 의제들은 뒤로 밀리게 됐다"고 강조했다.
앞뒤가 바뀐 정부의 정책 추진에 이해 당사자들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입학연령 하향 문제는) 과거 논의에서도 찬반 양론이 치열했던 게 아니라 반대 의견이 훨씬 높았고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해 추진되지 않았던 건데 초보 장관이 이론적 토대 없이 학제개편안을 들고나온 것부터 의아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책을 입안할 때는 충분히 공론화가 돼야하는데 발표부터 하고 반발이 거세니까 안하겠다는 것은 문제가 많다"며 "소위 말하는 '뜬금포' 정책이다보니, 세간에는 다른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연막탄이라는 얘기가 돌고 있을 정도"라고 비판했다. 향후 정부의 정책방향도 가늠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그는 "분위기상 폐기수순으로 갈 것 같긴 하지만, 어떻게 될지 종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집권 3개월여 기간동안 정부의 소통방식에 대한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행정안전부의 경찰국 신설 문제 또한 정부가 의견 수렴 절차를 대폭 생략하면서 경찰 내부의 거센 반발이 부딪혔다. 사상 초유의 경찰서장 회의까지 개최되자,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이를 '쿠데타'에 비유하면서 세간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지난 2일 속전속결로 경찰국이 출범하자 국가경찰위원회는 "경찰국 신설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는데도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이와 관련해 "경찰국 문제는 사실 대한민국 전체로 봤을 때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정부의 추진 방식으로 인해) 큰 문제가 됐고,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는 하나의 주요 요인이 돼버렸다"면서 "정치적 사안으로 변질됨에 따라 결국 누군가 정치적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 됐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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