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비대위 속도전', 이준석에겐 호재?
'당권 다툼 희생양' 이미지, 민심엔 득?..보수층 지지율 상승해
(시사저널=박성의 기자)
국민의힘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권성동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는 비대위 성격과 기간에 대해 일단 함구하고 있다. 다만 비대위가 출범할 경우 약 5개월 이후 대표직에 복귀하겠다던 이준석 대표의 계획도 무산된다. 때문에 이 대표에게 비대위 출범은 치명상이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는 여권의 '비대위 속도전'이 되레 이 대표에게 득(得)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성 접대 및 증거은폐 논란' 이후 잠행을 거듭하던 이 대표가 다시금 당내 '천적들'을 저격할 수 있는 명분과 계기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여권 중진들 사이에선 이 대표가 가처분 신청을 통해 비대위 출범을 막을 경우,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 세력이 궁지에 몰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李 '흑화'에 홍준표·최재형도 '지원사격'
2일 국민의힘은 비대위 체제 전환을 위한 상임전국위원회와 전국위원회 소집 안건을 상정해 가결했다. 이준석 대표가 당 윤리위원회로부터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를 받은 지 26일 만이다.
비대위 출범이 초읽기에 들어가자 여권 일각에선 이 대표의 복귀를 막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승한 집권여당이 비대위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란 추측에서다. 실제 이 대표 측은 비대위 추진에 불쾌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비대위를 무리하게 추진하면 결국 '역풍'이 불 것이란 자신감 섞인 전망도 함께 내놨다.
이 대표측 한 관계자는 "이게 과연 공당의 모습인지 모르겠다"고 자조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이 대표가 얼마나 힘든 싸움을 했는지, '윤핵관'의 수준이 얼마나 바닥인지 드러나게 된 것"이라고 비난았다. 이어 "(비대위 체제를 결정한) 권성동 원내대표는 처음부터 (당 대표 직무대행의) '그릇'이 아니었다"고 비판했다.
반대로 이 대표에게 '공격의 명분'을 쥐여준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중징계에 반발하지 않고 잠행을 거듭하던 이 대표에게 '흑화'할 명분을 안겨줬다는 주장이다. 실제 이 대표는 비대위 체제가 속도를 내자 SNS를 통해 연일 당을 저격하고 있다. 동시에 이 대표가 중징계 당시 꺼내지 않았던 가처분 신청 카드를 빼들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2일 페이스북에 당 최고위원회가 비대위 전환을 추인한 데 대해 "이 대표가 가처분이라도 신청한다면 이번에는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이는데, 왜 그런 무리한 바보짓을 해서 당을 혼란으로 몰고 가는지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도부는 총사퇴하고 원내대표를 다시 선출해서 새 원내대표에게 지도부 구성권을 일임해 당대표 거취가 결정될 때까지 비대위를 꾸리는 것이 법적 분쟁 없는 상식적인 해결책이 될텐데 왜 자꾸 꼼수로 돌파하려고 하는지 참 안타깝다"고도 했다.
이 대표가 '당원권 6개월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을 당시 별다른 지원사격을 하지 않던 당내 친이준석계도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김용태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3일 페이스북에 "양심을 팔아 권력에 머리를 조아리고, 손바닥이 닳도록 비비고, 또 권력에 줄 서는 자들에게 바보같이 당했다"면서도 "전투에서 졌다고 전쟁에서 지진 않겠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제 가치와 원칙을 지켜나가겠다"고 적었다. 이어 "윤석열 정부의 임기가 끝날 즈음 결국 윤 대통령 주변에 끝까지 남는 사람들은 원칙을 지킨 자들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혁신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최재형 의원도 같은날 페이스북에 "당대표 거취는 앞으로 있을 사법기관의 수사 결과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라며 "비상 상황에 대한 지도부 전체의 공감대 없이 비대위 설치를 강행하면 당은 더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국민의 눈에는 당권 다툼으로 보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이번 비대위 혼란으로 이 대표에 대한 '성 접대 가해자' 이미지가 일부 희석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대신 당권 경쟁에서 밀린 '희생양' 이미지가 덧씌워졌다는 얘기다. 실제 당권을 둔 일련의 논란에도, 이 대표에 대한 '민심'이 더 우호적으로 흐르는 양상이다.
리서치뷰가 지난달 30~31일 전국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7월 정기조사(8월2일 발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범보수 차기 대권 주자 적합도 조사 결과, 이 대표는 지난달 조사보다 3%P 오른 9%로 5위를 기록했다. 1위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13%(2%P 하락), 2위 홍준표 대구시장 12%, 3위 오세훈 서울시장 11%(4%P 하락), 4위 유승민 전 의원 10%(1%P 상승) 순이다.
특히 보수층 응답자(416명)는 한 장관 23%, 오 시장 17%(5%P 하락), 홍 시장 14%, 이 대표 12% 순으로 지지의사를 밝혔다. 이 대표는 지난달 조사보다 5%P 상승했다. 여권 주자 중 적합도가 오른 주자는 이 대표가 유일하다. 비대위 출범과 중징계로 당대표 복귀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지만, 역설적으로 이 대표에 대한 기대감 역시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국민의힘의 비대위 체제는 곧 '이준석 복귀 막기'다. 하지만 만약 이 대표가 가처분 신청 등을 통해 비대위 출범을 막아내는데 성공한다면 당은 초토화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만약 비대위가 출범해 이 대표 복귀가 막힌다면 2030세대 국민의힘 지지층이 이 대표를 따라 대거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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