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그래프] (22) 건국대 김기태 "궂은일로 분위기를 바꾸는 선수가 되고 싶다"

조형호 2022. 8. 3.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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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억하고 뽑아 주세요" 2022 KBL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완생을 꿈꾸는 대학 졸업반 미생들의 농구 인생을 조명해본다.
[점프볼=조형호 인터넷기자] 스물두 번째 미생은 건국대 김기태(G, 170cm)다. 불리한 신체조건을 극복하고 프로 무대를 밟고 싶은 김기태의 농구 인생을 살펴보자.

#선수보다는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농구, 현재는 인생 그 자체다
평범한 학생이었던 김기태는 중학교 때부터 농구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아버지는 전 오리온 사무국장(김태훈 씨)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농구장에 자주 다니며 농구와 친해질 수 있었다. 아들의 왜소한 신체조건과 운동선수의 힘듦을 알았던 아버지는 농구선수가 되겠다는 김기태의 꿈을 반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를 수차례 설득한 끝에 삼일중학교에서 농구를 시작했다.

“사실 선수보다는 농구를 가르치고 즐거운 일을 하고 싶었어요. 아버지께서는 농구하는 것을 극구 반대하셨죠. 신체조건의 한계도 그렇고 힘든 일인 것을 알기에 많이 반대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농구가 너무 하고 싶었고, 삼일중학교에서 일주일 정도 기회를 받은 뒤에 정식으로 농구를 하게 됐어요.”

김기태는 또래보다 늦은 구력과 신체조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유급을 선택했다. 1학년 때는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으나 기본기와 기량 향상에 초점을 맞췄고, 2학년 때부터 경험을 쌓은 끝에 3학년에는 긴 출전 시간을 소화했다. 비록 전주남중의 기세에 밀렸지만 이현중 등이 건재한 삼일중은 수차례 준우승을 차지했다.

“중학교 3학년 때 김도완 코치님께서 기회를 많이 주시고 제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기술들을 잘 알려주셨어요. 동기였던 장세권과 손영진 등 친구들이 더 자신 있게 해도 된다면서 항상 자신감을 북돋아주기도 했고요. 그리고 그 친구들은 지금까지도 자신감을 가지고 농구를 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한 존재들이죠.”

#건국대행, 농구를 반대하던 아버지에게 기쁜 선물이 되다
김기태는 삼일상고가 아닌 양정고로 진학을 위해 삼일중학교에서 양정중학교로 전학을 택했다. 삼일상고의 전력이 워낙 강했기에 출전 기회를 더 많이 받기 위해서였다. 양정고 진학 후 1학년 때는 부상으로 경기에 자주 나서지 못했지만 2학년 때부터 코트를 누비는 시간이 늘어났다.

“중학교 때는 공격도 많이 못 보고 수비만 하는 선수였는데 고등학교 때부턴 제 기회를 살리려고 더 공격적으로 임했던 것 같아요. 3학년 때 농구가 정말 많이 늘었거든요. 그때는 선수층이 얇아서 거의 풀타임을 뛰었죠. 팀 높이가 낮다 보니까 리바운드에 참여를 많이 하려고 했고, 수비 위주로 하다 보니까 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한 적도 있었어요(웃음).”

김기태는 결국 건국대로 진학했다. 건국대 코칭스태프의 러브콜을 받은 김기태는 곧바로 건국대행을 결정했고, 농구하는 것을 반대하던 아버지와 함께 기쁨을 만끽했다. 그러나 그는 기쁨보다 긴장감이 더 앞섰다고 말했다.

“코치님들께서 좋게 봐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컸죠. 하지만 기쁘다기보다는 오히려 더 떨렸던 것 같아요. 중, 고등학교 때부터 왜소한 편이어서 힘들었는데 치열한 대학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어요. 대학 진학이 결정되고 농구를 반대했던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하셨어요. 보완해야 할 부분이나 제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조언을 많이 해주셨던 기억이 나요.”

#김기태의 대학 무대 생존기 ‘공격이나 스포트라이트보다는 수비나 궂은일로’
“고등학교 때까지는 집에서 통학했는데 대학교에서 처음 숙소 생활을 해보니 당황스러웠어요. 그래도 룸메이트였던 최진광 형(현 KT)이 잘 챙겨줘서 적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운동을 하면서 확실히 피지컬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대학에서 스피드로 많이 밀리진 않는다는 걸 느껴서 제 장점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어요.”

김기태는 건국대 입학 후 2년간 경기에 거의 나서지 못했다. 3학년 후반기부터 힘이나 기량이 부쩍 성장했고, 이후 출전 기회가 늘어났다. 공격이나 돋보이는 부분보다는 수비나 궂은일로 팀 분위기를 바꾸는 데 주력했다. 올해 4학년이 된 김기태는 주로 교체 멤버로 출전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롤을 많이 맡고 있다.

“제 키가 작다 보니까 상대가 포스트업 할 때마다 힘들었어요(웃음). 중학교 때부터 당했던 거라 적응은 됐죠. 사실 저희 팀이 올해 조금 아쉬웠잖아요. 프레디가 들어온 지 1년도 안 됐는데 팀워크를 맞추려다 보니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고 시간이 조금 더 주어졌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어요. 질 때는 확 무너지고 이길 때는 어렵게 이기는 게 가장 문제였던 것 같아요.”

#“키가 작지만 그만큼 무게 중심도 낮다!”
“프로에 진출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아버지의 영향에 따라 구단 프런트에 가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체육 교사나 지도자가 되는 것도 목표입니다. 농구나 스포츠에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요. 선수 중에서도 심판이 된 분들도 있고, 본부석에서 일하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농구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고 보는 것 자체가 행복하기 때문에 농구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싶죠.”

이현민, 이진욱 등 단신 가드를 보며 희망을 키웠던 김기태는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신체조건의 한계에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김기태는 파이팅 넘치고 열정적인 수비로 팀 분위기를 바꾸고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를 꿈꾸고 있다.

“중학교 때부터 키가 작다는 부분에 대해 크게 위축되는 건 없었어요. 아쉽다는 감정이 있긴 하지만 오히려 장점일 때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보다 상대가 높은 것처럼 저는 상대보다 무게 중심이 낮잖아요. 상대도 제 돌파를 막는 게 까다로울 거라고 생각을 해서 괜찮아요.”

김기태는 농구 인생에 기억 남는 인물을 묻자 “돌이켜 보니 최명도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처음 농구를 시작하게 해주신 분이라 너무 감사한 마음뿐이에요.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지금 농구공을 만지지 않고 평범한 인생을 살았을 텐데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인생이 너무 행복해서 그 길을 열어주신 것에 감사하죠.”라며 현 강원사대부고 최명도 코치를 떠올렸다.

김기태의 건국대는 종별농구선수권대회 우승을 거둔 뒤 U-리그 본선을 앞두고 있다. 과연 170cm 단신 가드 김기태가 팀의 분위기를 이끌고 높은 곳에 위치할 수 있을까. 이현민, 이진욱의 뒤로 잇고 싶은 김기태의 프로 도전기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 사진_ 점프볼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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