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해소도 질병코드 넣어 청구 가능 실손보험료 또 오르는 이유 있었네

2022. 8. 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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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지급 기준 약한 곳에서 누수
과잉청구, 보험료 인상으로 전가
전문가 "비급여 가이드라인 필요"

“사람 이름 깜빡 잊는 기억력 손실 같은 것도 있지 않아요? 실손보험 있죠? 코로나 후유증에 맞는 주사가 있으니까 보험 있으면 그걸로 드릴게요.”

서울의 한 병원. 피로감을 느껴 찾았다고 하자 병원에서 대뜸 실손보험이 있냐고 묻고 일명 ‘영양주사’를 맞고 갈 것을 제안했다. 코로나 확진 이력을 밝히니, “더 좋은 주사가 있다”고 했다. 처방전에는 수액치료 목적에 ‘코로나19 감염 후유증 치료목적’이라고 쓰였다. 비급여 주사제는 ‘질병 치료’ 목적일 때만 실손보험금 청구가 가능하다.

수액은 여러 개를 조합한 것이었다. 살펴보니 기자가 말한 피로감 해소를 위한 주사는 푸르설티아민이 유일했다. 기억력 손실은 없다고 했는데, 비코라민(기억력 저하) 등도 수액에 포함됐다. 아르믹스(영양실조) 역시 따로 요청하지 않은 것이었다. 1시간 남짓 주사를 맞고는 15만원의 진료비가 청구됐다. 직원이 “숙취 해소도 청구 가능토록 해드린다”고 귀띔했다.

▶보험사 1곳서만 비급여주사 보험금 지급 월 100억...보험료 상승으로 전가될 수=보험금지급기준이 약한 실손의료보험 진료 과목으로 보험금 청구가 다시 늘고 있다.

실제 한 대형 손해보험사의 비급여 주사제 관련 실손 지급 보험금은 올 상반기 697억원으로 월 평균 100억원 이상 지급된 것으로 집계됐다. 반기기준으론 최고 규모다.

보험업계는 이같은 행위가 법에 저촉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의료법 제22조에 따르면 의사는 진료기록부 등을 거짓으로 작성하거나 고의로 사실과 다르게 추가 기재·수정해서는 안 된다. 보험사 관계자는 “환자가 단순히 피로하다고 말한 것 외에 집중력 상실이나 영양실조, 기억력 저하 등을 추가하면 보상에 더 용이하기 때문에 이를 추가해 적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렇게 과잉 청구되는 보험금은 같은 실손보험 상품을 가입한 소비자들에게 보험료 인상으로 전가 될 수 있다. 실손보험은 주기에 따라 보험료가 변동되기 때문에, 보험료와 지급보험금의 비율에 따라 자체 손해율이 책정되고 연령대 및 성별로 세분화돼 보험료가 갱신된다. 부당청구 지급보험금이 늘면, 해당 가입자와 같은 조건의 가입자들이 더 많은 보험료를 낼 수 밖에 없다.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 한 해에만 실손보험료는 평균 15%가량 인상됐다.

▶올해 보험 사기 금액 1조 넘을 것...대책 마련 시급=전문가들은 비급여 의료비 허위나 과잉 청구와 관련해 수가와 진료량 등을 표준화한 ‘비급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산업연구실장은 “독일의 경우 의사협회에서 주관이 되어 민영의료보험에 적용되는 의료수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며 “의료기관이 일정 수준 이상의 수가를 책정하고자 할 경우, 보험사에 사유를 제출하거나 진료 전에 합의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사기 피해를 막기 위해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을 실효성 있게 개정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경찰이 검거한 보험사기범은 2021년 기준 1만1491명으로 2017년 2658명 대비 약 4.3배 늘었다. 비급여 의료비 허위·과잉 청구 등 보험사기 금액은 올해 1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병원의 비급여 항목이 공유돼 의료비 과다 책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란 의료기관과 보험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간 데이터를 공유해 별도 서류 없이 전산으로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다. 그러나 의료업계는 이를 반대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실손보험 자체는 필수적인 의료 부분이 아닌, 부가적인 여러 비급여 질환 등을 보장받기 위해 드는 것이라 ‘어디까지 규제할 것이냐’는 문제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실손보험청구 간소화가 이뤄지면, 정작 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의료기관에 불필요한 행정규제를 조장하고 환자의 개인정보 유출 등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3월 기준 가입자가 3977만명에 달하는 실손보험은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실손보험은 약 2조8600억원 손실을 기록하며, 그 폭이 1년 전보다 3600억원 가량 커졌다.

김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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