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겹친 고환율, 기업들 수출효과보다 원가부담 '비상'

문창석 기자 2022. 8. 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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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철강 등 타격 커..'비상경영'으로 환리스크 대응
4개월 연속 무역적자에도 한몫..기업들 "1206원 적정"
지난달 1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다중노출 촬영) 2022.7.15/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서울=뉴스1) 문창석 기자 = 달러·원 환율이 두 달 가까이 1300원대로 고공행진하면서 산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수출 증가 효과보다 원가 상승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주요 기업들은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하고 경기침체발 수요 위축에 대비하고 있다.

3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전날 달러·원 환율은 1306.6원로 마감했다. 이는 지난해 평균 환율(1144.6원)보다 162원(14.2%) 상승한 것으로 지난 6월22일(1302.5원) 이후 약 한달 반 동안 1300원 선에서 등락을 거듭하며 머물러 있다.

통상 달러·원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이 늘어나 경상수지 개선에 도움이 된다. 원화 가치가 하락한 만큼 한국산 제품의 가격이 떨어지기에 외국인 입장에선 같은 제품을 싼 값에 구입할 수 있어서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연평균 1102.59원이었던 환율이 2009년 1276.4원으로 173.81원 상승하자 같은 기간 경상수지는 17억5300만달러에서 330억8800만달러로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공식이 깨졌다. 지난 1일 관세청이 발표한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올해 7월 수출액은 607억달러, 수입액은 653억7000만달러로 46억7000만달러의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수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9.4% 늘어 7월 기준 역대 최고 실적이었지만 수입액이 21.8%나 급증한 탓이다. 지난 4월부터 4개월 연속 적자로 올해 누적 적자액은 150억2500만달러(약 19조6000억원)에 달한다.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에서 컨테이너 선적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 2022.8.1/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이는 최근 고물가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공장 가동에 필수인 원유·석탄·가스 등 에너지 관련 원자재가 대표적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7월 에너지 수입액은 전년 동기(97억1000만달러)보다 90.5% 증가한 185억달러다. 이는 7월 전체 수입액의 28.3%에 해당하는 것으로 전체 수입액 증가를 주도했다. 철강·구리 같은 금속과 반도체 소재 등 타 산업 원자재도 마찬가지다.

이미 원자재 가격이 올랐는데 환율 상승까지 겹쳤다. 환율이 상승한 만큼 원자재를 더 비싼 가격에 수입해야 하고 이로 인해 제조원가가 높아지면서 환율 상승으로 인한 수출 증가 효과가 상쇄된 것이다. 해외에서 원자재를 조달해 국내에서 재가공 후 수출하는 형태가 과거보다 더 많아진 점도 영향을 미쳤다.

한 재계 관계자는 "올해 초 1100원 후반대였던 환율이 3월 들어 1200원대로 상승했고 이후 급등하면서 1300원대까지 왔는데, 무역수지도 3월부터 7월까지 갈수록 적자 폭을 키우고 있다"며 "환율이 무역 적자의 결정적 요인은 아니라도 주요 이유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환율 상승에 대한 반응은 업권별로 갈린다. 반도체·자동차 등 주요 제조기업들은 기존 공식대로 환율 상승으로 수출이 늘어나는 호재를 만났다. 고환율로 인해 2분기 삼성전자는 1조3000억원, SK하이닉스도 3000억~4000억원의 영업이익 증대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현대·기아차도 지난 1998년 현대차그룹 출범 이후 역대 최대 실적을 올해 상반기에 기록했는데 차량 판매 호조와 더불어 고환율 효과를 톡톡히 봤다. 한국조선해양도 환율 상승으로 수주액에서 환차익이 발생해 흑자전환 시점이 기존 4분기에서 3분기로 앞당겨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항공기 리스비와 유류비 등을 대부분 달러로 결제하는 항공사들은 비용 상승으로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대한항공의 3분기 영업이익 컨센서스(3906억원)는 전년 동기 대비 7% 감소하고 4분기 영업이익(3203억원)도 54.5%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철광석·석탄 등을 해외에서 달러로 매입해오는 철강사들도 상황이 마찬가지다. 포스코는 지난달 24일 최정우 회장 주재로 그룹경영회의를 열고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했는데, 원료 조달비용 상승이 주요 배경 중 하나였다. 유연탄 등 주요 원자재 조달비용이 늘어난 쌍용C&E도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으며 석유화학 제품 제조를 위해 나프타를 수입하는 LG화학 등 화학사들도 비용 증가가 불가피하다.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환율 급등으로 인한 물가 상승도 기업들의 불안요소 중 하나다. 가뜩이나 경기 불황으로 소비가 부진한데, 고환율이 물가 상승을 부추기면서 침체가 더욱 길어질 수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8.74로 전년 동기보다 6.3%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두 달 연속 6% 이상을 기록한 건 지난 1998년 10월(7.2%)과 11월(6.8%) 이후 23년 8개월만이다.

재계에선 경상수지 개선을 위해 환율을 지금보다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12대 수출 주력 업종의 15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들은 수출 채산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적정 환율 수준이 평균 1206.1원이라고 답했다.

기업들은 환율 상승으로 인한 비용을 최대한 줄이는 등 대응에 나섰다. 한 기업 관계자는 "수출시 원화 결제보다 달러 결제 비중을 늘려 환차손을 상쇄하고, 달러 차입금 비중을 줄이는 동시에 원화 차입금 비중을 늘리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며 "환율 리스크 관리가 3분기 실적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themoo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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