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바게뜨 투쟁을 왜 '여성의 문제'로 봐야할까[플랫브리핑]
‘파리바게뜨 투쟁’의 중심엔 늘 여성이 있었다.
이들은 2017년 진급상의 성차별에 반발하여 노조(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를 결성하고,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과 ‘불법파견’ 인정 결정을 이끌어냈다. 노사·정당(더불어민주당,정의당)·가맹점주·시민사회와 함께 ‘8자 사회적 합의’를 이뤄냈다.
“노조는 본사 직접고용 대신 자회사 고용을 받아들인다. 대신 회사는 3년 안에 제빵기사들의 급여를 본사 정규직과 동일한 수준으로 맞추고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노동 취약계층(하청·비정규직·여성)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낸, 한국 노동사에서는 보기 드문 성취였다.
그후 5년, 여성 제빵기사들은 여전히 거리에서 싸움을 이어간다. 3월28일부터 5월19일까지 53일간 단식에 나선 임종린 지회장에 이어, 지난달 4일에는 노동자 5명이 또다시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 31일째를 맞은 3일 현재 4명은 건강 이상으로 중단했고, 1명이 남아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SPC는 지난해 4월 ‘사회적 합의 이행을 완료했다’고 선언했는데, 이는 합의 당사자인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배제한 ‘셀프선언’에 불과하다는게 노조 입장이다.
그간 파리바게뜨 갈등은 ‘불법파견’이나 ‘노조탄압’을 비롯한 부당노동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일터에서의 ‘성차별’은 노동 현장을 위태롭게 하는 가려진 요인 중 하나다. 유니폼을 갈아입을 탈의실을 마련해줄 것, 임신한 노동자에게 시간 외 근무를 시키지 말 것, 성희롱 성폭력을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할 것… 제빵 기사들의 80%는 여성이고, 이들의 투쟁은 ‘노동 문제’인 동시에 ‘여성 문제’가 된다.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의 투쟁을 ‘젠더의 관점’로 보지 않으면 무엇을 놓치게 될까. 파리바게뜨 사회적합의 이행검증위원회 여성인권건강분과 소속 권혜원 동덕여대 경영학과 교수와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에게 물었다.
여성인권건강분과는 지난달 12일 제빵기사 297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응답자 대부분이 평균 연령 33.5세의 젊은 여성들”이라며 “지금은 젊기 때문에 열악한 노동환경을 버티고 있지만 근속이 길어질수록 쓰러지는 노동자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인터뷰는 26일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파리바게뜨에서 ‘임신한 여성 노동자’가 마주하는 현실[플랫]
📌집단단식·불매운동에도···길어져만 가는 ‘파리바게뜨 사태’ 왜?
-파리바게뜨 사회적합의 검증위원회는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권혜원=이하 권)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임 지회장의 단식이 50일 이상 길어지면서 노동사회단체들이 SPC 주장을 점검하는 위원회를 꾸렸어요. 1~3분과가 노조탄압, 승진차별, 동일처우 등 합의이행 여부를 검증했다면, 4분과(여성인권건강분과)는 제빵 기사들의 보건휴가 사용율, 모성보호, 성희롱 성폭력 실태 등을 조사했어요. 사실 4분과는 ‘사회적 합의사항’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파리바게뜨 기사의 80%가 여성이고, 그중에서도 모성권 침해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이 드러났죠. 젠더 관점에서의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겠다는 판단 하에 학계·시민사회 여성노동 전문가들이 모였습니다.
-여성인권건강분과의 실태조사는 어떻게 진행됐나요.
(한인임=이하 한) 노조 설립 직후인 2018년 비슷한 조사를 진행한 적이 있었어요. 당시는 제빵 노동자 543명(여성 419명)을 조사했었는데, 그해 임신한 사람의 58.3%가 유산했다는 충격적인 수치가 나왔었죠. 여성 직장인의 유산율(23%)의 2배가 넘는 수치였어요. 이번 조사에서는 2018년 조사와 문항을 비슷하게 구성해서 무엇이 나아졌고 무엇이 나빠졌는지를 보려고 했습니다. 제가 4일간 기사 297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실태조사를 진행했고, 권 교수님이 그중 7명과 면접조사를 진행했어요. 나머지 분들은 이 과정에서 법적·의료적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봐주셨고요.
여성인권건강분과 검증위원 : 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 (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권혜원 동덕여대 경영학과 교수, 윤자영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신경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박은정 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신희주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김현주 이대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 문은영 법률사무소 문율 변호사 (민변 노동위 노동자건강권팀 팀장)
분과에 따르면 제빵기사의 주당 평균 근무 시간은 48.4시간이었다. 응답자의 15%는 주 52시간을, 3%는 주 60시간을 초과해 일하고 있었다.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모성보호’ 조치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임신 도중 태아 검진을 자유롭게 받지 못했다고 답한 비율은 77.5%에 달했고, 임신 도중 야간근로와 시간 외 근로를 했다는 응답자도 있었다. 유산율은 41.7%(12명 중 5명)로 2018년보다는 줄었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었다.
고강도 육체노동을 하면서도 휴식 시간이나 공간은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노동자의 23.3%는 점심 식사를 아예 먹지 않는다고 했고, 42%는 휴게공간도 탈의실도 없는 곳에서 일을 했다. 이는 건강에 직접적인 악영향으로 나타난다. 파리바게뜨 기사들의 산업재해 1년 경험률은 근골격계 질환 49.6%, 피부질환 20.1%, 우울증 9.1%으로 모두 노동자 평균(2017년 근로환경조사 기준)보다 높았다. 하지만 응답자 66.7%는 업무상 재해로 인한 치료비를 본인이 부담했다.
-젊은 기사들인데도 산업재해 유병률이 높은 편입니다.
(한) 빵 만드는 게 ‘골병 드는 작업’이거든요. 무거운 설탕이나 밀가루를 들려면 근력이 필요한데, 이 작업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니까요. 하루 2시간 이상 이 업무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근골격계 질환을 피해가기 어려워요. 자동 반죽기나 자동 투입기(호이스트) 등이 보급되면 노동 강도를 훨씬 줄일 수 있는데, 결국 문제는 비용이에요. 임대 사업자들은 보통 평당 임대료를 내게 되니까, 설비를 들여놓을 공간을 마련하려면 그만큼 비용이 느는거죠. 제빵사들이 탈의공간이 없어 냉장고 뒤에서 옷갈아입고, 휴게공간이 없어서 벤치에서 쉬는 것 다 그 이유에요. 점주든 회사든 누군가는 그 비용 부담을 해야하는데 안하니까, 오롯이 기사들의 노동력에 의존해서 후진적으로 제조를 하고 있는거죠.
(이에 대해 SPC 측은 “가맹점에서는 사용하는 원재료(밀가루, 설탕 등) 중량은 1~3kg 수준”이라며 “가맹점에서 직접 밀가루를 반죽하는 업무는 없으며, 100% 공장에서 공급받은 휴면 반죽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또 “2022년 7월 기준 탈의 공간 90% 이상을 마련했으며, 이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8년에 비해 더 개선되거나 악화된 부분이 있다면요.
(권) 일부 개선 된 부분도 있었어요. 태아 검진을 자유롭게 받지 못했다고 답한 비율은 89.8%에서 77.5%로 낮아졌죠. 반면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월 1회 보건휴가를 사용하지 못했다고 답한 이들도 49.4%로, 2018년(31.4%)보다 오히려 늘었어요. 2021년 노사 단체협약에서 “휴무일 최대 7일을 원칙으로 하되 제1일은 주휴일, 제2일은 휴무일로 간주하고 제8일부터는 조합원이 신청한 바에 따른다”는 조항이 생겼어요. 개정 전에는 연차나 보건휴가를 근로자가 원하는 날 쓸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근무 스케쥴에 미리 정해진 휴무일 7일을 다 소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반려가 되는 상황이에요. 이로 인해 월 평균 휴일은 주말, 공휴일을 모두 포함해 6.8일에 불과했고요. 단체협약이 근로기준법을 상회하는 것은 말이 되질 않습니다.
사회적 합의 당시와 비교해 노조 상황도 복잡해졌다. 2018년 750명에 달했던 민주노총 조합원은 2022년 240명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관리자 중심의 한국노총 노조가 과반 노조가 되면서 민주노총 노조는 단독 교섭권을 잃은 상태다. 노조는 그 배경으로 사측의 ‘노조 탄압’을 지목한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승진을 누락하고, 노조 탈퇴를 유도한 중간관리자(BMC, FMC)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등의 방식으로 탈퇴를 종용했다는 것이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1월 노조 간 승진차별을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고, 고용노동부가 관리자 9명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면서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단독] “노조원 탈퇴시키면 두당 5만원씩 지급” 파리바게뜨 전직 관리자 폭로
-여성 기사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성희롱 피해는 없나요.
(권) 조사 참여자의 5.1%가 한달에 1번 이하 성희롱 피해를 겪었다고 답했는데, 가해자의 절반 이상이 가맹점주에요. “너는 뚱뚱하니까 네가 경쟁 매장 앞에서 춤을 추면 매출이 떨어질 것”이라는 외모 비하를 하거나 “네가 못가면 (기사) 어머니더러 돈케익에 들어갈 돈을 뽑아오라 하라”고 말한 사례도 확인됐어요. 이건 결국 고용주인 회사가 제도로서 규제를 해야하거든요. 하지만 성희롱·성폭력 익명 신고 시스템 구축이 제대로 안돼있다보니 2차 가해도 자주 벌어져요. 남성인 직속 FMC BMC가 조사를 한다며 피해자에게 수위가 높은 성희롱 발언을 다시 말하게 하거나, 증거가 없으면 외부에 알리지 않겠다는 서약을 요구하는 식이에요. 이런게 ‘성차별’을 묵인하겠다는 회사의 시그널이 되는거죠.
-파리바게뜨 기사들 중 여성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 제빵 기사 자격증을 많이 취득한 사람이 여성일 순 있어요. 하지만 지금 만들어진 노동시장 구조도 함께 봐야 해요. 과거 정규직이 하던 업무는 아웃소싱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의 대부분은 여성들이 차지했거든요. 콜센터나 마트, 돌봄 일자리가 대표적이죠.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역시 노조 결성 전에는 하청·비정규직이었고 최저임금도 받질 못했어요. 말단 기사들은 여성이 많지만 중간관리자는 남성 비율이 더 높은 편이라고 해요. 결국 노동시장의 가장 밑바닥을 채우고 있는 것은 여성인거죠.
📌콜센터 상담사에게서 구로공단 여공들이 보였다[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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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노동에서도 여성은 남성보다 적게 번다[플랫]
-왜 파리바게뜨 문제를 ‘젠더 관점’에서 봐야 할까요.
(한) 노동운동 자체가 남성이 기본값으로 되어있음을 기억해야 해요. 산업안전보건기준에관한 규칙에 따르면 근골격계 부담작업을 하는 경우 사업주가 3년마다 유해요인조사를 하고, 작업환경 개선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해요. 그런데 고용노동부 고시(제2020-12호)는 ‘근골격계에 부담작업’을 “하루에 10회 이상 25kg 이상의 물체를 드는 작업”으로 규정하고 있어요. 여성과 남성이 가장 차이가 나는 부분이 체격과 근력인데, 남녀 기준이 똑같이 25kg인거에요. 사업주는 여성 노동자의 특성에 고려한 조치를 취해야 하고, 그러려면 노동에서도 ‘젠더적 관점’이 필요해요.
한편 사측은 분과의 조사 결과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기사들이 속한 SPC 자회사 피비파트너즈 관계자는 “응답자의 집단별 성향에 대한 통제도 이뤄지지 않은 부정확한 조사”라며 “2021년 임신한 직원 총 188명 중 유산휴가를 사용한 직원은 22명(11.7%)으로 노조 측이 주장한 수치(41.7%)는 물론 여성 직장인 평균 유산율보다도 낮다”고 말했다. 성폭력 대응 미비 사례에 대해서는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부정확한 내용들로 보이며, 회사는 성희롱 관련 교육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신고 접수된 건은 고충처리시스템을 통해 체계적이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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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지 기자 sharpsim@khan.kr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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