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바빠진 기내식..이런 것까진 모르셨죠?
호텔 연회의 70배‥하루 7만명분 식사 만드는 곳
요리사가 웍(wok)을 흔들 때마다 커다란 불꽃이 세차게 타오릅니다. 대형 오븐은 비워지기가 무섭게 다시 가득 찹니다. 지난달 20일 찾은 서울 강서구 소재 대한항공 기내식 공장은 아침부터 분주했습니다. 얼핏 보면 대형 호텔 주방 같기도 했는데요. 음식의 규모가 호텔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보통 호텔 연회가 1천 인분 정도인데, 여기서는 하루 2만 5천 인분의 식사를 만들고 있습니다. 음식 종류만 8백 종에 달합니다. 코로나 이전 생산량인 하루 7만 식에 비하면 좀 적어 보이지만, 코로나가 한창일 때 하루 2천 식까지 떨어졌던 것을 생각하면 회복세가 완연합니다.
대량의 음식을 효율적으로 만들려면 철저한 분업이 필수. 그래서 기내식 공장은 마치 미로 같았습니다. 스테이크나 스튜, 수프를 만드는 핫 키친(hot kitchen), 샐러드나 애피타이저, 카나페 등을 조리하는 콜드 키친(cold kitchen), 고기와 생선을 다듬는 공간, 야채 준비실, 베이커리, 그리고 이슬람식 할랄(Halal) 음식을 만드는 공간까지, 각각의 방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조리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여러 장비도 눈에 띄었습니다. 생선이나 스테이크를 고르게 구울 수 있는 '벨트 그릴(belt grill)'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오믈렛 만드는 과정도 특이했는데요. 참기름과 달걀이 나오는 파이프 아래를 12개의 프라이팬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지나갔습니다. 마치 커다란 붕어빵 기계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승객 138명 식중독?‥맛보다 위생에 목숨거는 이유
먹음직스럽게 완성된 스테이크, 관자 구이, 그리고 고등어조림, 그런데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들을 곧바로 차디찬 냉장고로 가져갑니다. 기내식은 만들자마자 급속 냉각기에 넣어 온도를 5도 아래로 낮춰야 합니다. 이것이 기내식과 일반 음식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일반 음식은 조리 후 바로 먹지만, 기내식은 먹지 않고 식힙니다. 미생물 증식을 막기 위함입니다.
이후에도 단계마다 영상 5~15도의 콜드체인(cold chain)을 유지합니다. 식품 위해요소 중점관리 기준(HACCP)상 기준은 핫밀(스테이크 등) 72시간, 콜드밀(샐러드 등)은 48시간 내 취식인데요. 이 업체는 핫밀은 48시간, 콜드밀은 24시간 내 취식하도록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바로 식중독 우려 때문입니다. 지상에서는 아프면 병원에서 치료받으면 되지만 상공 1만 미터 위에서는 그럴 공간이 없습니다. 집단 식중독 사건이 터지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악몽이겠죠.
실제로 과거에 그런 사례가 있었습니다. 1975년 2월 4일 경향신문 기사입니다.
"동경을 떠나 파리로 가던 일본항공사(JAL) 소속 점보 전세여객기 승객 1백38명이 3일 기내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갑자기 식중독을 일으켜 코펜하겐에 있는 블레그담스병원에 입원했다고 병원 대변인이 말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1992년 2월 23일자 조선일보를 보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출발해 미국 LA에 도착한 아르헨티나 항공 탑승객 2백여 명 중 5명의 콜레라 환자가 발생해, 1명이 사망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렇게 기내식중독 사건이 현실화하면서 '기장과 부기장은 같은 기내식을 먹을 수 없다'는 규정까지 생겼습니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자는 겁니다.
또, 일부 음식은 아예 기내식으로 쓸 수 없도록 했습니다. 기내식 제조업체 전훈민 대리는 "식중독 유발 가능성이 있는 날것의 음식이나 아니면 독성이 있는, 예를 들면 복어, 민물고기는 대부분 제한하고 있고요. 조개의 경우 안에 이물질이 있을 수 있고, 조개 껍질로 인한 치아 손상 가능성도 있어서 역시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봉골레 스파게티나 바지락 칼국수는 기내식으로 만들 수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콜드 체인을 유지한 기내식은 인천공항 근처에 있는 또 다른 기내식 시설로 옮겨집니다. 용기에 음식을 담는 '디쉬 업(dish up)' 작업을 위해서입니다. 디쉬 업까지 끝난 기내식은 카트에 실려 푸드카(food car)로 옮겨지는데 이때 CMCS(Cart Management Control System)라는 시스템을 이용합니다. 원하는 승차 지점을 입력하면 카트가 공장 위쪽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고속으로 이동하는데요. 이후 푸드카가 비행기 앞에서 몸체를 들어 올리면 기내식은 카트째로 비행기에 실리게 됩니다.
잠든 기내식을 깨울 시간
카트가 비행기 내 갤리(galley)에 도착하면 이제 승무원이 바빠질 차례입니다. 갤리는 기내식에 숨을 불어넣기 위한 공간인데요. 차디찬 기내식을 데우는 오븐, 급하게 금방 나가야 할 음식을 위한 전자레인지는 물론, 국물 요리를 뜨겁게 끓일 수 있는 핫포트(hot pot), 뜨거운 물이 나오는 워터 보일러(water boiler)까지 있습니다.
일반석은 음식을 그냥 데우기만 해서 서빙을 하지만, 비즈니스석이나 일등석의 경우 따로 준비한 식기에 음식을 옮겨 담아 제공합니다. 상위 좌석은 자리도 넓다 보니 지상에서 먹는 것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승무원도 기내식을 먹을까? 승무원은 일반적으로 승객과 같은 '일반석' 음식을 먹고요. 식사는 갤리에서 한다고 합니다. 오아라 객실 승무원은 "식사를 회수할 때 손님이 아주 맛있게 바닥까지 다 보일 만큼 드셨을 때가 가장 뿌듯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늘 위의 별미인 라면의 경우 일반석은 컵라면에 물만 부어서 나오고, 일등석은 봉지라면을 끓여서 제공한다고 하는데요. 이것은 국내 대형항공사 기준이라, 항공사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기내식은 정말 짜게 만들까?
기내식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을 기내식 메뉴 개발 담당자(김태균 대한항공 부장)에게 물었습니다.
① 노선별로 기내식이 다른가? : 노선별, 클래스별, 출발 시간별로 기내식을 다 다르게 운영을 하고 있고요. 또 계절별로 또 메뉴를 다 바꿔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나갈 때는 한식보다는 양식이라든지 그런 음식으로 구성을 해야 승객분들이 좋아하시고, 해외에서 오시는 분들은 이미 현지식을 많이 드셨기 때문에 그리운 맛, 한식이라든지 그런 거 위주로 메뉴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② 기내식은 일부러 짜게 만드나? : 하늘 위에서는 미각이 많이 둔해져서 음식을 많이 짜게 해야 한다는 속설이 있긴 있는데 실제로 저희가 조리할 때는 거기에 개의치 않고 일반적으로 먹을 수 있는 그런 염도에 맞춰서 조리하고 있습니다. (※ 다만, 일부 외국 항공사의 경우 실제로 간을 좀 세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알려져 있음)
③ 기내식은 고칼로리다? = 비행기에서는 좁은 공간에서 많이 움직임도 없고 장시간 이동을 해야 되기 때문에 오히려 소화가 더 잘 되고 위에 부담이 가지 않는 그런 음식 위주로 이제 저희가 구성을 하고 있기 때문에 '기내식은 고칼로리다' 이런 것들은 좀 잘못된 낭설이라고 생각을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마음껏 기내식 즐길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지난 6월 정부 운항규제가 해제되면서 해외여행객은 급격히 늘었습니다. 국토교통부 항공정보포털 실시간 통계를 보면 지난달 국제선 이용객(출발, 도착 포함)은 약 183만 명입니다. 우리가 코로나라는 것을 몰랐던 2019년 7월(약 792만 명)에 비하면 23% 수준이지만, 작년 7월(약 29만 명)과 비교하면 무려 6배 넘게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 재유행이 터지면서 반짝 늘었던 해외여행 수요는 금세 주춤해지는 모양새입니다. 항공편 예약 취소가 잇따르고 있고, 급기야 지난달 28일 인천공항에는 방호복을 입고 출국하는 사람까지 다시 나타났습니다. 치솟은 항공료도 해외여행을 더욱 망설여지게 합니다. 하늘 위의 만찬이자 여행의 설렘을 더하는 기내식, 예전처럼 마음껏 즐기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 [엠빅뉴스] 기장과 부기장이 같은 기내식 못 먹는 이유?
(이준희letswin@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zoomin/newsinsight/6394760_29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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