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리뷰] '감독 이정재'의 놀라운 발견.. 박진감 넘치는 첩보물 '헌트'

라제기 2022. 8. 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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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헌트'는 속내가 다른 두 남자가 목숨 걸고 대립하는 과정을 통해 긴장감을 빚어낸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내용이 인상적이기도 하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오징어 게임’으로 지구촌 스타가 된 이정재가 메가폰을 잡고 주연을 겸했다. 이정재의 오랜 지기이자 동업자인 배우 정우성이 ‘태양은 없다’(1999) 이후 23년 만에 연기 호흡을 맞췄다. 지난 5월 열린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제작비는 205억 원으로 덩치가 만만치 않은 대작이다. 10일 개봉하는 영화 ‘헌트’는 ‘외계+인’ 1부, ‘한산: 용의 출현’, ‘비상선언’과 함께 올여름 극장가 빅4로 꼽히기에 모자라지 않다.

‘헌트’는 198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민주화 시위를 유혈 진압한 후 권좌에 오른 장성 출신 대통령이 철권통치를 하는 시기, 안전기획부(국정원 전신)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국내 파트 담당 김정도(정우성)와 해외 파트 담당 박평호(이정재)가 대통령 암살 계획을 파헤치면서 대립하는 모습, 조직 내 침투한 거물 간첩 동림을 색출하는 과정, 김정도와 박평호의 비밀 등이 반전으로 이어진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 극장에서 언론시사회를 열고 국내 첫 공개됐다. 한국일보 대중문화 담당 기자 3명이 영화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정재가 연기한 박평호는 안기부 해외 파트 책임자다. 그는 대통령 암살을 막기 위해 분투하나 비밀을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송옥진 기자(송)=“이정재가 유명한 배우이긴 해도 감독으로선 신인이라 유명 감독들이 연출한 올여름 경쟁작들에 비해 기대치가 낮았다. 그럼에도 재미 있게 몰입해서 봤다. 오랜 연기로 쌓인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경석 기자(고)=“이정재는 청춘 스타로 시작한 배우이고 예술영화에 많이 출연한 배우가 아니기도 해서 기대치가 높진 않았다. ‘연출을 해봐야 얼마나 잘하겠나’ 하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깜짝 놀랄 만큼 연출력이 뛰어났다. 감독 이정재의 잠재력이 보였다.”

라제기 기자(라)=“올해 개봉한 한국 상업영화 중 완성도로는 최상위권에 올릴 수 있는 작품이다. 이야기 구성엔 약점이 있긴 해도 장르적으로 영화를 이끌어가는 연출력, 한국 현대사에 대한 대범한 접근 등 눈길을 끄는 점이 많다.”

송=“시작할 때부터 등장하는 총격전이 여러 차례 긴장감을 만든다. 이야기는 좀 복잡해 보이나 그렇다고 잘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다. 여러 총격전만으로도 힘이 느껴졌고, 끝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정우성이 연기한 김정도는 강직한 군인 출신으로 안기부 국내 파트를 책임지는 인물이다. 그는 조직 내 침투한 간첩을 쫓으면서 자신의 비밀을 감추려 한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고=“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뒷부분은 아쉽다. 김정도와 박평호의 행동을 뒷받침할 만한 감정적인 토대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점도 문제다. 북한과 연결 지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 가상하는 부분도 설득력이 없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영화를 즐기는 데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듯하다.”

라=“장면 하나하나를 박진감 있게 찍었다. 장르적인 쾌감을 주기 위해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젊은 남자’(1994)와 ‘태양은 없다’ 같은 출연작 속 철 없는 이정재 이미지를 온전히 뒤집는 영화다.”

송=“동림이 누구인지 밝혀지는 지점은 감정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관객들을 놀라게 하면서 극적으로 묘사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서스펜스가 갑자기 뚝 떨어지는 느낌이다. 김정도와 박평호의 감정이나 입장이 어떤 치열한 과정을 통해 형성됐는지 묘사가 잘 안 돼 급작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고=“개인적으론 동림이 누구인지 밝혀지기 바로 직전부터 재미가 반감됐다. 동림의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 이어지는 대통령 암살 시도 장면이 영화의 두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 절정을 만들어내기 위해 동림 관련 부분을 좀 억지스럽게 만든 느낌이다.”

라=“누가 첩자인지, 둘 다 첩자인지 관객에게 혼동을 주면서 재미를 만들다 보니 작위적인 면이 생긴 듯하다. 첩보영화로서 전형적이라 할 장면들이 많이 나오나 상투적이지 않아 좋다. 좀 지루해질 만하면 볼거리가 될 수 있도록 액션들을 잘 배치했다.”

송=“안기부 수뇌부에서 수상한 인물 여럿이 활동한다는 설정이 이야기의 핵심 동력이다. 아무리 영화적 설정이라 해도 관객이 쉬 납득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고=“동림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게 봤다. 김정도와 박평호에게 집중하며 주변 인물들을 꼭 필요한 부분에만 등장시켜 배경을 설명해주는 연출력이 마음에 들었다. 액션 장면들의 완성도가 매우 높다. 볼거리를 한쪽에 몰아넣은 ‘한산’이나 ‘비상선언’과 달리 액션을 적절히 나눠 배치한 점도 좋았다."

라=“차별화되지 않은 액션 장면을 한국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다. 감독의 시각이 반영되지 않은, 무술감독이 다 만든 장면이다. ‘헌트’는 확실히 다르다. 감독의 개입이 느껴진다. 스태프의 전문성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한 감독의 의지가 드러난다.”

'헌트'는 이정재와 정우성이 23년 만에 연기 호흡을 맞춘 점만으로도 눈길을 끈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고=“유령 작가라는 표현처럼 유령 감독이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연출력이 좋다. 국내 배우 출신 감독 작품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정재는 첫 번째 연출을 하면서 연기까지 하느라 쉽지 않았을 텐데 연기까지 빼어나다. 정우성 연기도 흠잡을 곳이 없더라.”

라=“이정재가 편집을 지독하게 붙들고 늘어졌다는 소문이 있다. ‘그렇게 집요한 사람인 줄 몰랐다’는 말까지 돈다. 박성웅 주지훈 김남길 정만식 등 유명 배우가 한꺼번에 카메오로 등장하는 액션 장면이 어수선하게 보이지 않게 완급을 조절하는 점도 눈에 띈다.”

고=“요즘 한국 영화나 드라마는 두 남자가 대립하는 관계여도 서로 뭔가 마음이 통하는 듯한 대사를 종종 넣는다. ‘헌트’는 불필요한 브로맨스 같은 걸 안 넣어서 좋았다.”

고=“여름 빅4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영화는 무엇인가. 개인적 만족도로는 ‘헌트’, ‘외계+인’, ‘한산’, ‘비상선언’ 순이다.”

송=“재미로 따졌을 때 ‘한산’을 앞에 두고 싶다. 그 다음은 ‘헌트’이고 ‘외계+인’ ‘비상선언’이 뒤를 따른다.”

라=“상업성을 배제하고 평가한다면 ‘헌트’에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흥행 성적이 잘 안 나오는 ‘외계+인’이 그다음이다. ‘한산’과 ‘비상선언’ 순으로 순위를 매기고 싶다.”

※여름은 극장가 최대 대목입니다. ‘외계+인’ 1부를 시작으로 ‘한산: 용의 출현’ ‘비상선언’ ‘헌트’ 등 한국 영화 대작 4편이 차례로 개봉합니다. 독자분들의 옳은 선택을 위해 대화로 풀어낸 작품 분석 코너인 ‘톡톡 리뷰’를 연재합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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