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로미티 눈사태] '쾅' 어마어마한 굉음..온난화가 참사 불렀다

글·사진 임덕용 꿈속의 알프스등산학교 2022. 8. 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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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우측 상단이 빙하가 무너진 곳. 마치 UFO가 산에 추락해 구멍이 생긴 것처럼 보인다.

"쾅 하고 어마어마한 폭음이 들려 고개를 드는 순간 비행기가 산 정상에 추락한 줄 알았습니다. 근데 연기가 없더군요. 잠시 후 소리가 난 곳에서 하얀 연기가 구름처럼 조금씩 피어올랐고 이내 거대한 건물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잠시 후 쏴쏴쏴 하며 폭풍우에 밀려 엄청난 얼음과 돌들이 섞여 굴러 내려가는 게 보였습니다. 산장에서 식사를 하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일어나서 촬영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검은색의 작은 폭포처럼 보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하얀색으로 변하며 눈사태가 폭포처럼 흘러 내렸습니다. 사면 중간에 커다란 크레바스로 빨려 들어가며 눈사태가 멈추기를 기다렸는데 크레바스를 타고 넘어서 계속 무서운 속도로 내려갔습니다. 아래 등반객들이 있는 곳까지는 안 내려가겠지 하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는데…."

-마르몰라다 아래 페니아 호수 산장 주인

헬기 조종사와 구조대원들이 교대로 수색에 나서고 있다. 현장에는 총 5대의 헬기가 교대로 수색 중인데 모두 자원봉사 대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

7월 10일 기준, 이탈리아 알프스 돌로미티 최고봉 마르몰라다에서 빙하 붕괴 사고로 현재까지 총 11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희생자들의 시신 훼손이 심해 DNA 분석으로 신원을 파악 중에 있다. 경찰은 주차장 주변에 주인이 없는 차량을 조사 중이고, 산악 구조대는 2차 사고에 대비에 조심스럽게 구조 작업을 펼치고 있다. 빙하에서 떨어져 나간 거대한 얼음들이 녹아야 구조 작업이 끝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구조견들이 투입되어 조난자 수색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실종자 수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다.

마르몰라다는 돌로미티의 행정 수도인 볼자노에서 1시간 40분이면 닿는 곳에 있고, 정상까지 등반하고 귀가하는 데 10~12시간이면 되는 당일 산행 코스이다. 노말 루트 등반은 피켈과 아이젠이 필요하며, 비아 페라타Via ferrata(와이어 안전장치가 설치된 등반코스) 등반은 정상 오른편 리지로 4시간을 올라 3시간을 하산한다.

눈이 부드러워지고 기온이 오르는 초봄이나 4월경이 북벽을 등반하기 가장 좋은 시기이다. 5월 말까지도 눈이 많아 산악 스키를 신고 정상에 올라 내려오는 데 약 5시간이면 충분했다. 한여름에도 만년설 등반을 즐겼고 세락에서는 빙벽 등반을 즐겼었다. 10년 전만 해도 섬머 스키를 탔던 나에게 마르몰라다는 집 뒤뜰 같은 돌로미티의 최고봉이었다.

그간 마르몰라다를 여러 번 여러 루트로 올라 본 경험으로 봤을 때 이번 사고는 절대로 사고가 날 수 없는 위치에서 발생했다. 사고 이틀 전에도 구자준 회장 부부를 비롯해 국내 유수 대기업 회장 부부 여섯 쌍을 10일간 가이드 산행하며 마르몰라다를 올랐다.

산장 주인이자 절친한 친구인 로베르토가 빙하가 무너질 때 찍은 사진. 그는 일 때문에 사람들을 구조하러 가지 못한 죄책감에 해당 사진을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순환하는 빙하

20년 전 빙하가 가장 안정적인 11월 초, 크레바스를 220m 내려가서 본 빙하의 속살을 기억한다. 온 천지가 얼음이었지만 혈관 같은 작은 틈으로 물이 흐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세락이나 크레바스의 속살에는 인간의 혈관처럼 가늘게 물이 흐르는 통로가 있다. 사고 당일 정상 온도가 10℃로 역대 최고 기록을 갱신했다. 이번 사고는 고온으로 미세혈관 같은 작은 틈들이 분열을 일으키다가 위에서 누르는 힘에 의해 한순간 무너졌다고 생각한다.

사고가 난 지대는 보통 등산객들이 거의 안 가는 지역이다. 이번 사고는 정상 부근 빙하가 무너지며 전위봉과 정상을 오르던 등반가들을 덮쳤다. 비아 페라타로 오른편 능선으로 정상을 오르는 루트와 기존 하산 루트 사이의 중단부를 무너진 빙하가 산사태로 덮치며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고 방지책도 없는 사고이다. 구조대장은 인터뷰에서 "이번 사고는 인재가 아니다. 조난자들이 억세게 운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전문 알피니스트들이었고 아이젠, 피켈, 로프를 가지고 있었다. 그날 그 시간 거기에 있었던 게 죄일까?"라고 말했다.

나도 사고가 난 세락 바로 위까지 몇 번이고 장비를 착용하고 혼자 갔던 곳이라 섬뜩하다. 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데, 움직이지 않고 있던 그 산이 아주 미세하게 한쪽 눈을 윙크하듯 움직인 것뿐인데….

마르몰라다의 모든 협곡을 스키로 처음 활강한 벨룻지가 사고 현장을 배경으로 방송사 인터뷰를 하고 있다.

녹아내리고 있는 알프스의 빙하

올해 알프스 정상의 눈은 역대 눈이 가장 많이 녹았던 때보다 한 달 더 빠르게 녹아내리고 있다. 예전에는 주로 8월에 눈이 녹았지만 올해는 한 달이나 빨라져 7월 초부터 빙하가 빠르게 녹고 있다. 실제로 작년과 비교해 6월 눈 두께 차이도 커졌다. 기후학자 알렉산더 올리크는 "지난해 6월 눈의 최소 두께는 363㎝였는데 올해 6월 30일 관측소 주변 눈 두께는 39㎝"라며 "6월 눈 두께가 가장 낮았던 1942년 120㎝보다도 훨씬 적은 수치"라고 발표했다.

최근 이탈리아 북부는 가뭄에 시달렸고 알프스 지역 또한 정상 온도가 10℃가 넘는 등 극한 여름 온난화를 겪고 있다. 이탈리아 국립 극지과학연구소 과학자들은 "향후 25~30년 뒤에는 빙하가 존재하지 않거나 매우 적은 양으로만 존재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빙하 연구자 파울 크리스토퍼슨 케임브리지대 교수 또한 <가디언>에 "마르몰라다 빙하 붕괴는 기후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자연 재해"라며 "기후변화로 녹아내리는 얼음으로 인해 빙하의 갑작스러운 붕괴가 일어나며, 이런 재앙적인 빙하 붕괴는 더 빈번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월간<산>으로부터 마르몰라다 사고를 취재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날 우연히 마르몰라다 근처를 가이드 등반하고 있었다. 5년을 함께 일한 알파인 가이드 베네데타에게 대신 산행을 리딩해 달라고 부탁하고 사고대책 본부에 가서 취재하고 급박한 사고 영상을 찍은 친구에게 혹시 자료가 더 있나 해서 찾아갔다.

스키 강사이자 알파인 가이드인 로베르토 플라터가 운영하는 산장은 마르몰라다를 정면에서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가 기자들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다며 나에게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다. 그에게 왜 이 사진을 기자들에게 보여 주지 않았냐고 물으니 갑자기 그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일요일이라 100명이 넘는 손님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사고가 났어. 나는 음식을 주문받고 서빙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 잠시 후 내 친구들은 구조대로 출동하겠구나 생각하니 비참해졌지. 사진을 공개 안 한 이유는 알파인 가이드인 내가 조난 현장에 가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있었고, 이 사진을 기자들에게 보여 주면 나는 아마 마르몰라다가 정면으로 보이는 내 산장 앞에서 연기자처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어야 할 거야."

그를 만난 시간, 그의 산장 앞뜰에는 여러 방송사들이 유명 알피니스트를 불러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티롤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서빙을 하던 로베르토는 그저 산장의 종업원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무너져 내린 마르몰라다 정상부의 빙하.

월간산 2022년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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