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한산 '선비같은 지장'..명량 '필사즉생 용장'

안진용 기자 2022. 8. 3.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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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8일 만에 300만 고지를 밟은 영화 ‘한산:용의 출현’(왼쪽 사진)은 2014년 개봉한 영화 ‘명량’의 5년 전 상황을 다룬다. 이에 따라 보다 젊은 이순신을 연기할 배우로 박해일을 낙점했다.

■ 영화 ‘한산’ ‘명량’속 충무공 비교

한산 “압도적 승리 필요하다”

고뇌에 찬 날선 시간들 묘사

명량 “신에겐 아직 12척 배가”

긴 전쟁 속에도 불굴의 의지

영화 ‘한산:용의 출현’(감독 김한민·한산)이 진정한 리더를 원하는 대중의 마음에 다시 불을 지폈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한산’은 개봉 닷새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평일인 지난 1일에도 38만5998명을 모았고 개봉 8일 차인 3일 누적 관객 수는 300만 명을 돌파했다. ‘한산’과 7년 전 개봉한 ‘명량’은 충무공 이순신을 다루지만 두 영화 속 이순신은 매우 다르다. 박해일과 최민식. 이순신을 맡은 배우의 연기 스타일도 다르다. 연출자인 김한민 감독은 “‘명량’의 이순신은 용장(勇將), ‘한산’의 이순신은 지장(智將)”이라며 “울적할 때도, 잠이 안 올 때도 난중일기를 보면 위안이 됐다. 그 안에 담긴 이순신 장군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47세 이순신 vs 52세 이순신

‘명량’이 ‘한산’보다 먼저 개봉됐으나 ‘한산’은 명량해전 발발 5년 전을 그렸다. 일종의 프리퀄이다.

김한민 감독이 그린 47세 이순신(한산)과 52세 이순신(명량)의 온도 차는 확연하다. 불과 ‘5년’ 차이지만 전장에서의 하루는 1년과도 같다. 게다가 이 시기, 전란을 겪은 조선뿐 아니라 이순신 개인으로도 많은 풍파를 겪었다. 이는 난중일기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한산’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선조 25년)이 배경이다. 빽빽이 채워지던 난중일기는 그해 6∼8월 공백으로 유지된다. ‘한산’의 모티브가 된 한산도대첩이 치러진 때다. 이 시기, 이순신은 정확한 판세를 읽기 위해 전쟁에 집중한다. 고뇌에 찬 채 자기만의 시간을 자주 갖는다. ‘한산’ 속 이순신의 대사량이 적은 이유다. 대신 읽고 쓰기를 반복한다. 붓을 들어 난을 치듯, 하얀 화선지에 꼼꼼하게 학익진을 펼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박해일은 “7년의 전쟁을 버텨내기까지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있었을 거다. 그럴 때마다 술도 마시고 활을 쏘고, 시까지 썼다고 한다. 굉장히 인상적”이라면서 “수양을 쌓은 선비 같은 이순신의 모습이 와닿았다”고 말했다.

‘명량’은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벌어진 명량해전을 스크린으로 옮겼다. 오랜 전쟁에 의한 피로 누적과 누명에 의한 옥살이, 수세에 몰린 전쟁 상황은 ‘명량’ 속 이순신을 용장으로 만들었다. 전투를 치를 때만큼은 누구보다 용맹하지만, 장기간의 전쟁에 지친 백성들에게 따뜻하게 말 한마디를 건네고 보듬는 모습 또한 52세 이순신의 특징이다.

◇“지금 우리에겐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하다” vs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

‘한산’의 이순신과 ‘명량’의 이순신의 다름은 영화 속 명대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전쟁 초기인 ‘한산’의 이순신은 확실한 기선 제압을 위해 전쟁에 몰두하는 철저한 계산과 날카로움이 눈에 띈다. ‘한산’의 명대사 “발포하라”를 외치기까지 기다리는 이순신의 모습은 차분하다. 왜선이 지척으로 다가오고 조선의 배들이 위험에 빠지는 상황 속에서도 이순신은 계산된 거리 안으로 왜선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렇기에 그의 이 한 마디에는 응축된 힘이 느껴진다. 젊은 이순신은 좀처럼 만족감도 드러내지 않는다. 이 전쟁을 “의(義)와 불의(不義)의 싸움”으로 규정하며 “더 나아가자! 지금 우리에겐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하다”고 외치는 이순신의 모습에서는 젊은 장수의 기개가 느껴진다.

반면 ‘명량’의 이순신은 긴 전쟁으로 고통과 패배감에 젖어 있는 이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싸움에 있어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必死則生 必生則死)고 외친다. 바다를 포기하고 권율과 합세하라는 선조에게는 “전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라며 계속 싸우게 해달라 간청한다. 전투에서 이긴 후 부하가 가져온 토란을 받아 든 이순신은 이렇게 말한다. “먹을 수 있으니 좋구나.” 어느덧 노년으로 접어든 ‘명량’의 이순신은 여전히 물러서지 않는 용기와 백성을 두루 살피는 리더의 인자함을 갖췄다.

박해일은 개봉 전 “지금 시대는 ‘한산’의 이순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힘을 앞세운 리더십이 아닌 난세에서도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합리적인 지장 리더십에 대한 시대적 욕망을 읽을 수 있다. 앞서 ‘극락도 살인사건’과 ‘최종병기 활’을 연출하며 박해일과 호흡을 맞췄던 김 감독은 “박해일을 통해서 외유내강의 이순신 장군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수로서 강한 인상은 아니지만 그 안에 자리한 강직한 힘이 느껴져 그가 적역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전 장수다운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은데요?’라는 박해일에게 ‘‘한산’의 이순신은 네 모습이 더 맞는 것 같다’는 대화를 많이 나눴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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