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는 엄마도 비건 할 수 있나요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비건’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면 곧바로 질문 세례가 쏟아진다. 남편도 함께 채식하는지, 아이가 채식할 수 있는지, 유치원 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양가 어른들 반응은 어떤지. ‘혼자 하는’ 비건의 길도 쉽지 않지만, ‘같이 하는’ 비건의 길은 더 어렵다. 2022년 7월5일 경기도 용인에서 비건이 아닌 남편, 비건식을 즐기는 5살 딸과 사는 윤송이(37)씨를 만났다. 그가 어떻게 가족의 응원 속에 비건을 실천하는지 비결을 물었다.
그가 ‘비건 맘’이 된 이유
“사실 조금 조심스러워요.(웃음) 비건 육아는 아직 세상에서 많이 응원받지 못하고 있어서….” 6년차 비건 윤씨는 2018년 8월 아이를 낳았다. 채식을 시작한 건 2017년. 지인이 추천한 다큐멘터리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What the Health)을 보면서부터다. 육류 위주 식습관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보자 경각심이 들었다. 윤씨의 어머니는 암 투병 경험이 있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암으로 돌아가신 터였다.
“그때부터 불완전한 채식을 3년 정도 했어요. 혼자일 때는 채식하고 친구나 가족들 만날 때는 불편한 분위기를 만들기 싫어서 고기를 먹고. 그러다가 2019년 겨울 <도미니언>(Dominion)이란 다큐를 보게 된 거죠.”
참혹한 공장식 축산업의 실태를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두 눈으로 직접 영상을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영상을 계속 볼 수 없어 보던 중에 껐다. 펑펑 울었다. 2020년 완전한 비건을 시작했다.
“제가 불완전한 채식을 할 땐 아이도 고기를 가끔 먹었어요. 그러다 제가 본격적으로 비건을 시작했을 때는 아이가 3살이어서 말을 알아듣더라고요. 올해 들어서는 식탁 위 음식이 동물인지 식물인지 생각하는 것 같아요.”
“괜찮아, 다음에 또 먹고 싶으면 얘기할게”
윤씨는 아이에게 비건을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비건을 실천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이에게 충격적인 영상을 보여줄 수 없었지만, 어린이용 동물 영상을 보며 자연의 이치를 알려줬다. 달걀은 처음부터 음식이 아니라 병아리가 부화하기 전의 모습이라는 것, 동물도 음식이기 이전에 생명이라는 것.
“아이가 가끔 달걀을 먹고 싶다고 얘기할 때가 있어요. 무조건 반대하기보다 이 달걀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먹는 게 좋을 거 같다고 생각해요. 제가 먹지 않는 이유가 분명하기에 아이한텐 억지로 반대는 안 해요. 아이가 달걀 맛이 궁금하다고 해서 마트에서 사서 한두 번 해줬는데, ‘이제 어떤 맛인지 알았으니 괜찮아. 다음에 또 먹고 싶으면 얘기할게’ 하더라고요. 집에서 가족이 잘 안 먹으면 딱히 ‘먹고 싶다’ 이런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유치원에서도 달걀이나 우유 대신 과일을 먹고, 나물을 더 잘 먹어요.”
실제로 이날 본 윤씨 가족의 저녁 식탁에는 현미밥, 들깨미역국, 비건버터 통감자구이, 현미쌀가스, 열무김치, 당근 등 골고루 영양소를 신경 쓴 반찬들이 올라와 있었다. 아이는 달달한 당근이 맛있다며 “오도독오도독” 씹어 먹었다. 윤씨가 건넨 비건버터 통감자구이를 먹어보니, 간이 딱 맞아 휴게소 간식처럼 맛있었다. 이날 식사 풍경은 ‘아이에게 맛없는 식사를 강요한다’는 비건 엄마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족이 처음부터 윤씨의 채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건 아니었다. 특히 윤씨는 주말마다 시부모님과 함께 식사하는데, 시어머니가 정성껏 차려주신 고기반찬을 먹을 수 없었다. 지금은 평화롭지만, 첫 1년은 남편과 자주 다퉜다.
“남편이 처음엔 불편해했어요. 둘이 치킨에 맥주 한잔 하던 것, 곱창·삼겹살 데이트 이런 게 다 사라지는 거잖아요. 계속 다투다가 하루는 다큐멘터리를 같이 보자고 했어요. 그걸 보고 나더니 남편이 ‘네가 왜 이렇게까지 하려는지 알겠다. 나는 안 하지만 네가 하는 건 인정한다. 자유롭게 하라’고 하더라고요. 남편은 이제 집에선 같이 (채식을) 하고, 회사나 밖에선 일반식을 먹어요.”
윤씨는 시부모님께도 당뇨나 고혈압에 좋은 채식 식단, 국내외 유명인들이 채식을 실천하는 사례, 채식이 건강·환경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 등의 뉴스를 꾸준히 보내드렸다. 이제 시부모님은 직접 비건 반찬을 만들어주실 정도로 윤씨의 비건 생활을 응원한다.
‘앵그리 비건’ 말고 웃으며
건강에서 시작해 동물권으로, 나아가 환경문제를 고민하는 윤씨는 식생활 외 일상에서도 ‘실천하는 비건’이다. 의류, 매트 등 꼭 필요한 물건은 중고로 사고, 집에서 에어컨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식탁 위에도 휴지 대신 손수건이 놓여 있다.
“과한 육식이 탄소배출을 가속화해 2050년 사람이 살기 힘든 환경이 되면 2020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서른 살이 되기 힘들다는 얘기까지 나오잖아요. 이탈리아에서 폭염으로 빙하가 무너져 사람들이 숨진 뉴스가 오늘 떴는데, 그런 걸 보면 이 일이 더 시급하게 느껴져요.”
세상엔 비건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아이 엄마가 비건 식단을 실천한다면 유독 더 가혹한 시선을 받기도 한다. 비건 사이에 ‘앵그리(화난) 비건’이란 말이 왜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윤씨는 “다 웃어 넘기자”며 활짝 미소 지었다. “저는 자라면서 30년간 육식 외 식사 방법이 있단 걸 배워본 적이 없어요. 비건 육아를 반대하는 많은 분이 아이에게 ‘먹을 자유’를 주라고 하시는데 진정한 자유는 본인이 먹는 게 어디서 왔는지 배우고, 육식 외 선택지도 있다는 걸 알고 선택하는 것 아닐까요”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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