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스타벅스 캐리백 논란..엄습한 발암물질 공포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2. 8. 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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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유명 커피 전문점이 소비자들에게 제공했던 기념품의 악취 소동이 2달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인쇄용 잉크 때문에 발생하는 악취는 ‘인체에 무해하다’는 제조사의 억지는 처음부터 믿을 것이 아니었다. 4월 종이 빨대 악취 소동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커피 전문점에 대한 기대는 확실하게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소비자가 묵은 오징어 냄새를 풍기는 기념품에서 1군 발암물질이라는 폼알데하이드를 검출했다. 이제 소비자들은 발암물질 공포에 떨게 되었다. 기념품에 적용할 안전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먼 산만 쳐다보고 있는 정부나 폼알데하이드의 발암성에만 매달리는 언론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휘발성 유기물질(VOC)을 걱정해야

소비자가 직접 나서서 기념품의 악취에서 확인한 성분은 폼알데하이드였다. 제조사도 뒤늦게 국가인증기관을 통해 그 사실을 재확인했다. 그런데 흔히 ‘포르말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폼알데하이드 특유의 강한 소독약 냄새를 소비자들이 묵은 오징어 냄새로 착각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사실 소비자에게 기념품으로 제공하는 가방을 포르말린으로 소독했을 가능성도 없다.

실제로 기념품의 악취는 원단의 인쇄 과정에서 사용했던 유기 용매를 충분히 제거하지 않아서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유기 용매에는 폼알데하이드만 들어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벤젠·톨루엔·아닐린 등의 다양한 휘발성 유기물질(VOC)이 혼합되어 있기 마련이다. VOC 중에는 인체 유해성이 폼알데하이드에 못지않은 성분들도 많다. 기념품의 인체 위해성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악취에 포함된 모든 VOC에 대한 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악취를 풍기는 기념품의 인체 위해성 문제를 폼알데하이드에만 한정시켜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제조사가 기념품에서 방출되는 휘발성 유기물질의 종류와 총량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만 한다. 국가공인기관에서의 분석 결과 중에서 소비자가 지적한 폼알데하이드의 수치만을 선택적으로 빼내서 공개한 커피 전문점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런 사실을 지적하지 못한 언론의 반성도 필요하다.

소비자가 VOC의 위해성을 회피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언론의 책임이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휘발성 유기물질은 말 그대로 공기 중에서 쉽게 증발해버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온도가 높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는 증발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는 뜻이다. 포장을 완전히 제거한 기념품을 햇볕이 잘 쪼이고, 환기가 잘 되는 곳에 놓아두면 된다. 물 세척이 가능하다면 비눗물로 깨끗하게 세척한 후에 사용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발암물질은 뱀독·복어독과 다르다

발암물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공포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발암물질을 한 번이라도 먹거나 만지기만 해도 당장 암에 걸리는 것처럼 겁을 내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다. 발암물질이 조금이라도 들어있는 제품‧음식‧환경요인은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고 야단법석이다. 발암물질이라는 단어에 내포된 뉘앙스 때문이라는 점에서 십분 이해되는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언론과 전문가들이 소비자들을 안심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의학·식품·환경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렇다. ‘발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전문가의 주장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인체 발암물질은 사람에게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독성 물질을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는 ‘1군’(Group 1)으로 분류한다. 현재 IARC는 폼알데하이드·벤젠을 비롯한 54종의 화학물질, 7종의 바이러스, 헬리코박터와 같은 박테리아, 간흡충(디스토마)을 비롯한 3종의 기생충, 햇볕·자외선·미세먼지·배기가스 등을 비롯한 41종의 매개체, 마약 소비와 흡연 등 24종의 환경요인을 1군으로 분류한다.

화학물질의 인체 발암성을 확인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인체 발암성이 의심되는 화학물질에 대한 직접적인 인체 실험은 윤리적인 이유 때문에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병원에서 장기간에 걸친 추적 조사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야만 한다.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집단발병에 대한 역학(疫學, epidemiology) 조사의 결과도 유용하게 활용된다. 전문가들의 어설픈 학술 논문 한 편으로 인체 발암성이 확인되는 경우는 기대할 수 없다.

인공적으로 생산한 합성 화학물질은 모두 발암물질이라는 주장은 명백한 가짜뉴스다. 실제로 IARC가 발암성을 평가한 화학물질의 절반은 어떠한 발암성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없는 ‘3군’(Group 3)으로 분류된다.

암은 대표적인 만성 질환이다. 발암물질에 한 번 노출되었다고 당장 암이 발생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발암성은 장기간에 걸쳐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경우에만 나타나는 대표적인 만성독성이다. 발암성은 즉각적으로 독성이 발현되는 뱀독·복어독·버섯독과는 분명하게 구분된다. 화장품의 피부 감작성(알러지)도 즉각적으로 독성이 발현되는 급성 독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암은 세포의 유전물질인 DNA의 손상에 의해서 발생한다. 그런 손상이 반드시 암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생물체는 DNA의 손상을 방지·복구하는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방어 메커니즘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노출에 의해 방어 메커니즘이 무력화되어 버리면 암이 발생하게 된다. 

DNA의 방어 메커니즘은 생물종에 따라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깨끗한 생활환경에 적응한 우리와 달리 쥐는 독성물질이 가득 채워져 있는 시궁창에서도 멀쩡하게 생존할 수 있다. 일부 동물 실험에서는 발암성이 확인되었지만 인체 발암성은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은 ‘2A’군과 ‘2B군’으로 분류된 물질을 ‘발암물질’이라고 호들갑을 떨 이유가 없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방어 메커니즘이 훨씬 취약한 박테리아에서 확인한 유전독성을 근거로 인체 발암성을 주장하는 식약처의 현실은 몹시 안타까운 것이다.

IARC의 분류는 발암성의 강도가 아니라 인체 발암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사람에게 암을 일으킨다는 과학적 근거가 얼마나 확실한지에 따른 분류라는 뜻이다. 결국 1군 발암물질이라고 누구에게나 암을 일으키는 것은 절대 아니다. 

1군 발암물질의 인체 독성도 천차만별이다. 매년 흡연에 의한 폐암으로 사망하는 사람은 100만 명이 넘고, 개방형 연소(부엌)에서 발생하는 연기에 의한 폐암으로 사망하는 사람도 수백 만 명에 이른다. 과음에 의한 간암 사망자도 60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똑같이 1군으로 분류되는 가공육의 과다 소비로 목숨을 잃는 사람은 한 해에 3만 명을 넘지 않는다.

발암물질에 대한 현명한 대응

인체나 동물에서 발암성이 확인된 발암물질을 애써 섭취·접촉·흡입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언제나 발암성이 의심되는 화학물질·매개체·환경요인을 철저하게 회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1군 발암물질이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가장 심각한 건강의 적’이라는 주장은 매우 섣부른 것이다. 소비자들이 발암물질에 대한 과도한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정확하고, 설득력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다.

발암물질에 대한 혼란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우선 누구나 모든 발암물질을 적극적으로 경계하지 않는다. 흡연과 음주의 인체 발암성은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지만 금연·금주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사회는 많지 않다. 

더욱이 발암물질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화학물질은 인체에 위험할 수 있다. 실제로 ‘독성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르네상스 시대의 독성학자 파라켈수스는 ‘용량(dose)이 독을 만든다’고 했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너무 많이 먹으면 독이 되고, 아무리 치명적인 독이라도 충분히 적은 양을 섭취하면 오히려 약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설탕과 같은 탄수화물이나 소금과 같은 무기염도 건강에 꼭 필요하지만 너무 많이 먹으면 문제가 생긴다. 심지어 의사가 처방하고 약사가 조제한 약(藥)도 복용법을 지키지 않으면 치명적인 독이 되어버린다. 발암물질에 대한 지나친 공포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안전’ 또는 ‘허용’ 기준에 대한 오해도 경계해야 한다. 정부가 정해놓은 기준치를 넘어서면 당장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고속도로에서 제한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린다고 반드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고, 반대로 제한속도보다 느린 속도로 달린다고 안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경찰이 과속을 단속하는 이유는 ‘법규 위반’이기 때문이다. 유해물질의 안전기준도 정부가 정해놓은 ‘법률’을 위반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제한속도와 마찬가지로 허용기준도 국민 안전과 규제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고려해서 책정한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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