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제안 졸속 추진에 또 규제심판.."반성은커녕 끝장내자는 식"

박용근 기자 2022. 8. 3.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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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수퍼마켓협동조합 정양선 이사장 인터뷰
"전국 47개 조합 뭉쳐 대기업 친화 정책에 저항"
전주수퍼마켓협동조합 정양선 이사장이 2일 조합 집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소상공인들에게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인데 국무조정실이 현안 과제로 올린다고 합니다. 앞서 대통령실은 국민제안 탑10 투표안건으로 이 사안을 올렸다가 결국 ‘없던 일’로 끝냈습니다.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를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제목만 보고 ‘좋아요’를 눌러서 결정하라니 얼마나 졸속입니까. 반성은커녕 ‘끝장을 내자’는 식이니 반발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

전북 전주수퍼마켓협동조합 정양선 이사장은 2일 가진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결기 맺힌 말투를 여과 없이 쏟아냈다. 그만큼 분을 삭이지 못한 듯 보였다. 대통령실이 추진한 국민제안 투표는 중복전송이 발견돼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모양새지만, 뒤이어 나온 국무조정실 발표가 기름을 부었다. 그는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 이사이며, 완주군 소상공인연합회장도 맡고 있다.

“어설프게 추진한 국민제안 투표가 조작 정황으로 무효 처리됐다면 소상공인들의 외침을 귀담아듣는 게 정상적인 나라 아닙니까. 한고비를 넘어서니까 이젠 국무조정실이 4일 열리는 제1차 규제심판회의 안건으로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다룰 예정이라니 한마디로 기가 찹니다. 과연 이것이 국정 현안을 다루는 정상적인 방식인지 아연할 뿐입니다.”

국무조정실이 추진하는 규제심판회의는 건의자와 이해관계자, 부처 등 의견을 청취한 뒤 상호 수용 가능한 결과를 도출한다. 5일부터 18일까지 2주간은 ‘규제정보포털’에서 국민 참여 온라인 토론도 함께 연다. 정 이사장은 앞서 대통령실이 투표에 부쳤던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와 비슷한 절차가 많아 ‘결론은 내놓고 과정만 밟는 식’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전주수퍼마켓협동조합 회원들이 지난달 27일 전북도청앞에서 골목상권 사수 시위를 하고 있다. 전주수퍼마켓협동조합 제공

정 이사장이 최근 전개되고 있는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논란에 남다른 분노를 느끼는 것은 그의 수퍼마켓이 전주에 있다는 것과 무관치 않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2012년 전주에서 최초로 조례가 만들어졌고, 전국으로 확산됐다. 골목상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행정과 의회가 의기투합한 결과였다. 대기업들은 의무휴업일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6년 대법원은 ‘골목상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공익적 측면에서 봤을 때 대형마트의 영업 제한은 정당하다’고 최종 판결해 지금까지 10년을 이어왔다.

“소상공인들에게 숨통을 터주던 의무휴업일을 갑자기 폐지하려고 하니 전국 47개 지역조합이 뭉쳐 총궐기한 것입니다. 전주만 해도 1367개 회원사가 똘똘 뭉쳐 있습니다. 전국 연합회는 지난달 19일 유통 대기업들이 사업 범위를 확대하면 골목상권은 또다시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반박 기자회견을 했어요. 지역별로도 집회가 열렸는데 전주는 지난달 27일 반대 집회를 도청 앞에서 열었습니다. 이달 초에는 2차 집회를 열 계획입니다.”

그는 대형마트들이 의무휴업일을 폐지하고 상시영업에 나선다면 골목 슈퍼는 물론이고, 재래시장 등 향토상권은 맥없이 무너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고작 한 달에 두 번 문을 닫는데, 향토 유통업과의 상생발전과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을 위해 대기업들이 지금처럼 한발 양보하는 게 정의롭다는 것이다.

“의무휴업이 왜 향토상권의 생존권과 직결되는지는 조사결과에서 잘 나타납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6월 발표한 ‘대형마트 영업규제 10년, 소비자 인식조사’를 보세요. 대형마트가 의무휴업일 때 소비자의 절반 이상(52.2%)은 중규모 슈퍼마켓을 이용합니다. 그중 동네 슈퍼 이용률도 20.6%나 됐습니다. 전통시장 이용은 16.2%였어요. 즉 대형마트가 문을 닫으면 소비자 중 상당수는 주변 향토상권을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국 곳곳에 걸려 있는 현수막. 전주수퍼마켓협동조합 제공

그는 대통령실의 국민제안 투표가 졸속으로 추진돼 무효화 된 이후, 국무조정실이 다시 규제심판회의 현안과제로 부상시킨 것은 이 정부의 진정성이 의심받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정부가 과연 “백성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인지, 재벌을 위한 나라를 꿈꾸는 것인지 모를 일”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대기업들의 의무휴업을 완화해서 형평성 문제를 해결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대형 플랫폼들의 과도한 시장 독과점을 방지해 ‘기울어진 운동장’에 균형을 맞출 때입니다. 대형마트는 한 달에 겨우 이틀 정도 쉬지만 지역상권과 전통시장의 꺼져가는 불을 다시 켜주는 아주 귀중한 시간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정부가 알았으면 합니다.”

정 이사장은 “코로나 19와 경기 악화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지금, 정부가 계속 재벌의 이익만 살핀다면 우리 연합회와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 상인연합회 등 모든 단체가 규합해 윤석열 정부의 대기업 친화 정책에 맞서 저항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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