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금속 활자에 얽힌 미스터리 '활자 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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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서울 인사동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이 출토됐다.
서체와 모양 등을 볼 때 조선 전기 활자와 비슷하다고 추정만 하고 있었던 이 활자들은, 인사동 발굴 활자들과 비교해 보면서 갑인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 시대 금속 활자는 값비싼 구리를 사용해 문자를 새긴 보물과 같은 것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금속활자를 거의 만들지 못했으니, 금속 활자의 제작 규모는 조선의 성쇠와 궤를 같이 했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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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2021년 6월 서울 인사동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이 출토됐다. 인사동에서 발굴된 활자 중 15세기에 제작된 한글 활자와 세종대왕이 만든 갑인자가 포함되어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지금까지 갑인자는 실물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인사동 출토 활자를 두고 "우리 인쇄사를 새롭게 써야 할 위대한 발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치와 의미"를 지녔다 등 연구자들의 평이 줄을 이었다.
20여 년 간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된 활자를 연구해온 역사 학자인 저자에게 인사동 발굴 활자는 그동안 답을 찾지 못했던 숙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됐다.
박물관에 대다수 활자와는 입수 시기와 연유가 다른 150여 점의 금속활자가 있었다. 서체와 모양 등을 볼 때 조선 전기 활자와 비슷하다고 추정만 하고 있었던 이 활자들은, 인사동 발굴 활자들과 비교해 보면서 갑인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자는 그동안 주목 받지 못했던 조선시대 활자를 조명하고 그 의미와 가치를 전하고자 책 '활자 본색'(책과함께)을 썼다.
이 책은 조선 시대에 그토록 많은 금속 활자가 만들어진 이유, 조선 시대에 활자가 가진 의미와 가치, 조선시대 활자의 변천사, 활자를 만들고 사용했던 사람들을 추적하며 조선 시대 활자의 모든 것을 총망라했다.
조선 시대 금속 활자는 값비싼 구리를 사용해 문자를 새긴 보물과 같은 것이었다. 왕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금속 활자를 갖고 싶었지만 누구나 마음껏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에 가장 많은 활자를 만든 왕은 정조로 100만 자가 넘는 활자를 만들었고 이어 세종과 세조가 수십 만 자의 활자를 만들었다. 임진왜란 이후 금속활자를 거의 만들지 못했으니, 금속 활자의 제작 규모는 조선의 성쇠와 궤를 같이 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귀한 구리로 만든 이 금속 활자를 누군가 경제적 이득을 도모하기 위해 훔친 것은 아닐까?
이처럼 저자는 조선 금속 활자에 얽힌 미스터리에 관해 도발적 가설을 제시하면서 활자에 대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 외에 갑인자 제작에 세종대의 각종 과학기기를 발명했던 장영실이 참여했다는 사실, 활자 제작자들의 기록을 활자보관장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이야기도 들려준다.
☞공감언론 뉴시스 suejeeq@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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