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 32도, 대나무 돗자리로 버티기..대구 쪽방촌의 여름
쪽방 안 온도 32도..선풍기 하나로 여름 견뎌
더 더워질까 형광등 못 쓰고 밥솥도 밖에 내놔
대구시, 전국 처음으로 폭염기간 임시거처 지원
“오늘은 그래도 시원하구마. 그란디 뭐 뜨거버도 우짜겠나? 쪽방 살믄서 이만하면 됐제.”
지난달 28일 저녁 6시께 대구시 서구 비산동 ㄱ여인숙에서 만난 김아무개(57)씨는 벗고 있던 윗옷을 주섬주섬 걸치며 이렇게 말했다. ‘시원하다’고 한 김씨 방 안 온도는 섭씨 32도였다. 이날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대구의 낮 최고기온과 같다.
두 평 남짓한 방에는 작은 창문이 있었지만, 바깥을 다른 건물 벽이 막고 있어 바람은 거의 들지 않았다.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방과 방이 마주 보고 있어 방문도 마음껏 열어두기 힘든 구조다.
위층에 사는 김아무개(53)씨의 선풍기에는 모터 덮개가 없었다. 모터가 과열될까 봐 덮개를 일부러 없앴다고 했다. “시에서 선풍기를 주는데 영 시원찮은거라. 그래서 내가 시장 가서 직접 중고로 하나 샀다. 이 신일 선풍기가 지금까지 나온 선풍기 중에는 최고라.”
말하면서도 멋쩍은 듯 연신 선풍기 받침대를 쓰다듬었다. 김씨의 방 위는 옥상이다. 건물 주인이 옥상에 임시로 그늘막을 쳐두었지만 내리쬐는 햇볕을 막기엔 역부족인 듯 해가 진 저녁에도 방의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았다.
ㄱ여인숙과 한 블록 떨어진 곳에는 일반 주택을 개조한 쪽방이 있다. 이곳에 사는 정아무개(65)씨는 아예 불을 켜지 않는다. 방 안이 바깥보다 더운 건 형광등 열 때문이라고 여겨서다.
이날 낮 정씨 방의 온도는 31도였다. 이곳은 마당을 중심으로 방들이 ‘ㄷ’자 형태로 배치돼 있다. 마당 쪽에서 미세한 공기 흐름이 감지되긴 했지만, 방문 앞에 걸터앉아 대화를 나눈 지 5분도 되지 않아 양 볼을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불 써노면 뜨거버서 몬 살아. 벽이고 문이고 뜨끈뜨끈하다니까. 그릇 요(여기) 있잖아? 요 달걀 놔두면 익어뿐다카이.” 정씨가 방 한쪽에 둔 스테인리스 그릇을 들어 보였다.
인접한 여관 쪽방에 사는 윤아무개(65)씨 방에는 개인 냉장고와 벽걸이 에어컨이 있었다. 하지만 에어컨은 들어오기 전부터 고장난 상태였다고 한다. 윤씨는 수리비와 전기요금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기사를 부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에게는 선풍기 한 대, 대나무돗자리, 500㎖ 얼음물, 파란색 여름 이불, 대구은행 로고가 박힌 부채가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의 여름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전부였다.
대구지역 쪽방은 대부분 오래된 여관이나 여인숙, 일반 주택을 개조한 단칸방이다. 대구쪽방상담소의 지난 5월 조사를 보면, 쪽방촌은 동구·북구·중구·서구에 퍼져 있고 거주자는 667명이다. 월 임대료는 평균 20만원인데, 서구가 15만원대로 가장 싸다.
대부분의 쪽방은 건물이 낡고 오래돼 에어컨과 실외기를 설치할 수 없는 환경이다. 동구·중구의 20만원대 쪽방은 에어컨이 있지만 이마저도 사용료 3만~5만원 정도를 더 내야 해 엄두를 못 낸다.
대구지방기상청은 지난달 14일 “올해 7월 상순까지 대구의 폭염일수는 24일로 평년(최근 30년 평균)보다 18.5일 늘었다”고 밝혔다. 폭염일은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이다.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 기후통계분석을 보면, 지난해에도 대구의 폭염일수는 23일로 전국 평균(11.8일)의 두배였다.
기상청이 지난해 발표한 최근 10년간 폭염 발생 일수를 보면, 대구의 폭염일수는 27.6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매년 여름이 오기 전 대구시가 ‘폭염종합대책’을 세우는 이유다. 노숙인, 쪽방 생활인 등 주거 취약계층을 상대로는 재난관리기금을 통해 선풍기, 냉장고, 여름 이불, 보양식 키트 등을 지원한다.
대구시의 폭염대책에는 7~9월에 한시적으로 노숙인, 쪽방 생활인에게 에어컨과 욕실을 갖춘 모텔방을 제공하는 사업도 있다. 고령층, 기저질환 고위험군을 우선으로 35명에게 1명당 80만원(월 40만원·2개월)을 모텔 이용료로 지원한다.
지난해 11월엔 엘에이치(LH)대구경북지역본부와 대구쪽방상담소, 한국부동산원이 노숙인, 쪽방 생활인 등에게 폭염 상황에 입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과 재난안전쉼터를 확보해 지원하고, 비주택거주자의 주거 환경 개선 지원과 복지 안전망 확보에 노력한다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공공임대주택 물량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모텔을 임시방편으로 제공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쪽방 생활인 정씨는 기저질환자로 분류돼 인근 모텔에 임시 거처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모텔에서는 밥을 해 먹을 수 없다. 삼시 세끼 약을 챙겨 먹어야 하는 그는 끼니때마다 쪽방에 와 밥을 해 먹는다.
“에어컨 나오는 방은 천국이라. 근데 모텔에 들락날락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좀 안 좋게 보이 환장한다카이.” 쪽방에서 밥을 챙겨 먹고 모텔로 발걸음을 옮기던 정씨가 쑥스럽게 웃었다.
시에서 지원금을 받아도 월 40만원짜리 모텔을 구하는 일은 쉽지 않다. ㅎ여인숙 맞은편 쪽방 건물에 사는 신아무개(56)씨는 겨우 가격이 맞는 모텔을 찾았지만 모텔 쪽에서 계약서를 써주지 않아 입주를 포기했다.
“모텔 주인들이 쪽방에서 왔다 카니까 계약서를 안 써줄라캐. 우리는 병이 많잖아. 병원에 실려가거나 갑자기 사고라도 터지면 즈그들 골치아파지니까 그런 거 아이겠나?”
이런 탓인지 현재 모텔을 임시 거처로 이용하는 사람은 8명뿐이다. 권덕환 대구시 복지정책과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공공임대주택을 폭염 기간에 지원하자는 요구가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물량 확보가 어려웠다”며 “다양한 대안들을 찾아 시행해본 뒤 성과를 평가해 내년 사업에 반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폭염은 국가재난…공공임대주택 마련해 재난 극복할 수 있도록 해야”
인터뷰 | 장민철(45) 대구쪽방상담소장
“2018년 폭염이 국가재난으로 지정됐어요. 재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게 이젠 국가와 지자체의 의무죠. 하지만 누구도 폭염을 재난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요. 쪽방 주민들은 이 시기가 지나면 잊힙니다.”
28일 대구시 서구 대구쪽방상담소에서 <한겨레>가 만난 장민철 대구쪽방상담소장은 폭염 시기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국가와 지자체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대구쪽방상담소는 올해로 10년째 여름마다 쪽방촌 폭염 모니터링을 해왔다. 6월 말부터 8월 말까지 2개월 동안 매주 한 차례 대구지역 전체 쪽방 주민들 만난다. 혈압·혈당 체크 등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응급환자는 병원으로 연계한다. 대구시에서 지원하는 냉방물품을 전달하고,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복지제도를 안내하는 역할도 상담소 몫이다. 폭염 시기 쪽방 주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최전선에 있는 것이다.
장 소장은 대구시가 올해 처음 시도하는 임시 거처 지원 사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근본적인 대안은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장 소장은 “대구가 전국적으로 보면 폭염 대비 수준이 높은 편이다. 전국적으로 봤을 때 이렇게까지 움직이는 곳은 없다. 올해는 모텔을 임시로 지원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쪽방 주민들이 안전한 공간에서 살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애초 대구시는 엘에이치(LH)대구경북지역본부 등과 협의해 공공임대주택 물량을 확보해 폭염 시기에 제공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엘에이치 쪽이 확보한 공공임대주택은 주로 도시 외곽에 있었다. 쪽방 주민들은 무료급식소와 진료소를 중심으로 모여있는 쪽방촌 주변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 장 소장은 “엘에이치와 대구도시공사 등이 쪽방 근처에 빈 건물을 매입해 임대주택을 마련해 제공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쪽방 주민들이 폭염 시기 공공임대주택에 일시적으로 살아보는 경험을 통해 임대주택 입주 두려움과 거부감도 낮아질 겁니다. 실제로 입주까지 이어져서 주거의 가장 마지막 형태인 쪽방에 사는 주민들이 좀 더 나은 환경으로 연착륙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탈시설 장애인에게 체험홈을 지원하는 것처럼요.”
글·사진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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