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인사·정부 정책 뒷감당 시켜놓고 '개혁'은 시늉만 [심층기획 - 재무위험 빠진 공공기관]

안용성 2022. 8. 3.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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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정치권이 키운 부실
정권 바뀔 때마다 공기관 '혁신' 내세워
시간 지나면 알박기 인사 등 구태 반복
사업성 무시 '포퓰리즘' 정치논리 강요
한전, 전기요금 못 올려 천문학적 적자
코레일 11년째 요금 동결에 재정 악화
"정부가 부실 책임 떠넘긴다" 비판 나와
"낙하산·알박기가 개혁 가장 큰 걸림돌
전문성 가진 기관장 있어야 변화 가능"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공기관 개혁을 부르짖다가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흐지부지됩니다. 정권 초 전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혁을 외칠 뿐 진정한 변화는 바라지 않는 모습이죠. 우리를 마치 ‘적폐’처럼 공격하지만, 공공기관의 부실에는 잘못된 정책 결정과 정치권 낙하산 인사 같은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도 결코 작지 않습니다.”

30년 가까이 공공기관에서 근무한 A씨는 정부의 공공기관 개혁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우리나라 공공기관 개혁은 매번 낙하산 기관장과 노조의 갈등, 알박기 인사, 민영화 논란 등 숱한 문제점을 노출하며 번번이 실패했다. 여기에 정부와 정치권의 섣부른 정책 결정으로 인해 경영상 손해를 입는 일이 반복돼왔다. 우리나라 공공기관이 개혁의 대상의 된 것은 내부적 문제뿐만 아니라 외부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2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 14개 재무위험기관을 선정하고 고강도 개혁안을 내놨다. 공공기관 생산성과 효율을 제고하고 대국민 서비스의 질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 대책을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그동안 공공기관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정부가 공공기관 부실의 모든 책임을 각 기관으로 떠넘긴다는 지적도 있다.

최현선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기관 개혁이 중요한 주제인 것은 맞지만 근본적인 접근보다는 굉장히 피상적으로 마른 수건 짜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라며 “정부 부처의 혁신이나 개혁이 이뤄지지 않고 공공기관만 이렇게 몰아붙이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보여주기식으로 끝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전력공사를 예로 들어보자. 지난 6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전력공사 스스로 왜 지난 5년간 이 모양이 됐는지 자성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이번 공공기관 개혁의 대표로 한전을 지목한 셈이다.

실제 한전은 지난해 5조9000억원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 1분기에는 7조8000억원으로 적자 폭이 커졌다. 하지만 한전의 경영 악화에는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도 크다. 한전 적자의 상당 부분은 전기 요금 결정권을 쥔 정부가 물가 상승 등을 이유로 연료비 상승률을 요금에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 전기 요금은 2013년 이후 9년째 동결되다 최근 소폭 인상됐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간 동안 공공성이 강조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추다 적자 폭이 커진 셈이다. 한전은 “전기를 팔면 팔수록 적자가 커지는 구조”라고 해명한다.
14개 재무위험기관 중 한 곳으로 지정된 한국철도공사의 상황도 비슷하다. 11년째 동결 상태인 KTX 요금에 대해 공사 측은 “수송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요금이라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입장이다. 여기에 고령 인구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노인 무임승차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나 대책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윤석열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공공임대주택의 임대료를 1년간 동결한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지난 2년간 임대료가 동결된 상태에서 1년을 연장할 경우 한국토지주택공사의 부채는 그만큼 커지기 마련이다. 최 교수는 “전기 요금의 경우 한전에서 계속 올려달라고 하는데, 그걸 막은 게 정부와 정치권이었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모든 책임을 공공기관에만 뒤집어씌우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공기업을 단순히 손익 측면에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공공기관의 출발은 공공복리 증진에 있는 만큼 수익성 악화를 감수해야 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정부 정책에 맞물려 공공기관 역할을 강조하다 정권이 바뀌면 수익성을 들이대는 ‘고무줄 잣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공기관 개혁 대책은 정권마다 재탕되고 있다. 2013년 박근혜정부 당시 나온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과 지난달 윤석열정부가 내놓은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은 차이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전문성 없이 정·관계 유력 인사가 기관장으로 임명되는 ‘낙하산 인사’ 관행도 공공기관 부실의 한 원인이다. 정권 말만 되면 각종 공공기관에 ‘알박기 인사’가 되풀이 되는 상황이다. 지난 정부에서도 문재인 전 대통령 임기 말 70여명이 넘는 인사들이 공공기관 주요 자리에 임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낙하산 인사는 공기업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라며 “정치적 인맥 등에 따라 임명되면 기관을 장악하지 못하고 복리 후생만 즐기다 가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 전문성과 리더십을 가진 기관장이 와서 책임을 지고 경영을 해야 진정한 개혁이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안용성·이희경 기자, 이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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