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국거래소 출신 IPO 전문가의 후광

이인아 기자 2022. 8. 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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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에서도 '그분'과 연관된 회사가 상장 예비 심사를 청구하면 정말 깐깐하게 본다고 합니다. 이제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 사이에서 거래소 출신이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입니다."

한국거래소 내 상장 심사 파트에 오랜 기간 재직한 기업공개(IPO) 전문가가 퇴사하면 어디로 갈까? 지난달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한 바이오 기업에서 해당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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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아

“거래소에서도 ‘그분’과 연관된 회사가 상장 예비 심사를 청구하면 정말 깐깐하게 본다고 합니다. 이제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 사이에서 거래소 출신이 ‘디딤돌’이 아니라 ‘걸림돌’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입니다.”

한국거래소 내 상장 심사 파트에 오랜 기간 재직한 기업공개(IPO) 전문가가 퇴사하면 어디로 갈까? 지난달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한 바이오 기업에서 해당 질문에 대한 답이 나왔다. 상장 업무를 담당하는 한 증권사 관계자는 ‘그분’의 사례를 언급하며 위와 같이 말했다.

최근 한국거래소 출신 한 임원이 퇴사 후 동시에 두 곳의 제약·바이오 회사에 입사해 상장 작업을 맡으면서 논란이 됐다. 해당 임원은 코넥스·코스닥·코스피 등 거래소가 운영하는 3개 시장의 상장 업무를 모두 맡은 경력이 있는 상장 전문가로 꼽힌다. 비상장사로 적을 옮긴 후 사실상 IPO만 전문적으로 총괄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 참여자들은 해당 임원이 바이오·신약 개발 회사만 골라 입사한 점에 주목했다. 지난해 코오롱티슈진, 신라젠 등 대형 바이오 기업이 연이어 상장폐지 위기에 놓이면서 거래소가 제약·바이오 기업의 상장 심사 시 기업 계속성 요건을 중심으로 깐깐하게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한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통상 제약·바이오 기업은 벤처캐피탈(VC)로부터 투자받아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VC는 기업가치를 올린 후 상장시켜 투자금을 회수하곤 한다. 최근 제약·바이오 기업의 증시 입성 난도가 높아진 점을 고려하면, 상장 맞춤형 전문가가 가장 필요한 업종이었던 셈이다.

애석하게도 실상은 약간 달랐다. 해당 임원이 입사한 회사는 첫 번째 상장예비심사에서 고배를 마셨다. 당시 업계에서는 거래소가 ‘전관예우’ 논란을 우려해 상장심의위원회 심사에서 미승인했다는 후문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회사는 미승인 결정 후 재수 끝에 상장에 성공했다.

물론 거래소 출신 인사가 본인의 업무 경력을 살려 이직하는 게 무조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IPO 시장이 호황일수록 업무 지식, 관련 네트워크를 갖춘 거래소 인사들의 몸값이 크게 뛰곤 한다. 기업 입장에서도 상장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매력적인 조건을 붙여 관련 인사에 러브콜을 보낼 때도 있다. 과거 코스닥본부 상장부장이 인공지능(AI) 자산관리업체로 가거나 심사역 출신이 게임상장사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가는 사례도 있었다.

문제는 거래소 출신을 영입하면 상장이 수월해진다는 신호가 시장에 퍼졌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해당 임원이 첫 작업(?)을 마치자마자 두 번째 회사로 건너가 상장 작업을 진행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한탕주의’식 상장을 조장한다는 우려도 있었다. 한 주관사 관계자는 “상장 승인만 받으면 그만인가 싶을 정도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논란이 된 거래소 출신 임원은 해당 기업 내에서 스톡옵션을 가장 많이 보유한 상태였다. 비상장사들은 상장 주관사의 도움을 받아 상장 작업을 진행하는데, 기업마다 내세우는 부문이 달라 상장 심사에서 어떤 부분을 부각해야 할지 몰라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막대한 스톡옵션은 상장 전문가의 손길, 즉 거래소를 위한 ‘맞춤형’ 보고서를 매끈하게 작성하는 가격으로 추정된다. 심사역 입장에서 보고서를 작성하니 거래소에 보여주고 싶은 것만 강조해 제시하고, 약점은 살짝 가리는 행태도 충분히 가능해서다. 그를 거쳐 상장이라는 난제가 해결된다면, 시장 논리로 해결되는 대가가 될 수 있다.

거래소 출신 상장 전문가라는 후광은 언제까지 비춰질까? 해당 임원이 ‘미다스의 손’으로 승승장구할수록, 그가 오랜 기간 몸담았던 거래소에 대한 신뢰도는 반비례할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든 적정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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