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들은 형사사건을 '10원짜리 사건'이라 부른다"

나경희 기자 입력 2022. 8. 3.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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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차게 검찰 내부의 문제를 제기해온 임은정 검사(사진)가 책을 펴냈다. 그는 검찰이 바뀌어야 하고, 바뀔 거라고 했다. 10년, 20년이면 안 바뀌는 듯해도 수십 년 뒤에는 바뀐다는 것이다.
ⓒ시사IN 이명익

글쓰기는 전략이기도 했다. 22년 차 검사로서 증거가 중요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검찰 조직을 향해 쓴소리를 할 때마다 ‘혹시 나중에’라는 걱정을 떨치기 어려웠다. 증거로 남기기 위해 쓰고, 다시 싸우기 위해 썼다. 일기장에 쓰고, ‘사내’ 게시판에 쓰고, 신문 칼럼에 썼다. 그렇게 10년 동안 쌓은 기록을 묶었다. 〈계속 가보겠습니다〉. 7월20일 출간된 임은정 검사(대구지방검찰청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검사)의 첫 책이다.

7월16일 〈시사IN〉 편집국에서 만난 임은정 검사는 기자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책이 어렵게 읽히지는 않나요?” 대답하기 전에 그가 혼잣말을 덧붙였다. “동료들은 또 뭐라고 욕을 할지. 돌이 날아올 텐데….” 10년 넘게 내부고발자로 살아왔어도 비난받는 건 여전히 고단한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첫 질문이 나왔다.

요즘도 댓글을 읽나?

과거에 인사 거래 제안을 받은 적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는 칼럼을 썼을 때다. 한 부장(부장검사)이 “(인사 거래 제안이) 덕담인 것 같은데 진지하게 들었느냐”라는 식으로 비꼬는 글을 이프로스(e-PROS, 검찰 사내 온라인 게시판)에 올렸다. 그 밑으로 검사들이 댓글 놀이를 했다. 그때는 정말 공황이 오려고 했다. 너무 억울해서. 그러면 안 되는데 악플에 시달리다 자살하는 연예인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더라. 마치 철가루가 자석에 끌려가듯이 내가 자꾸 이프로스를 열어보고 있었다. 그 시기가 지나가고 나서 맷집이 좀 더 세졌다. 맷집이 하루아침에 세지는 게 아니다.

조직 안에서 부조리를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처음 하는 게 힘들지 그다음부터는 간이 자꾸 커진다(웃음). 문제는 아무리 말해도 조직이 안 듣는다는 거다. ‘이렇게 해도 안 죽는구나’라는 말은 ‘이렇게 해도 안 듣는구나’라는 말과 똑같다. 맷집도 커지고 탄압도 커진다.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관심을 받지 못하는 내부고발자들은 잘려 나간다. 내가 정말 다행인 건 내부고발자로서 관심을 받았다는 거다.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방어막이 되어주었다. 내가 조금만 말해도 돌아봐주고 들여다봐주었다. 나는 정말 행복한 내부고발자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원래는 ‘애교 많은 막내’였다고.

실제로 딸부잣집 막내이기도 하고. 내가 용비어천가를 잘 불렀다. 초임 때는 부장이 밥 먹다가 쓸데없이 화를 내면 “아이고, 부장님 고혈압에 안 좋아요” 이런 거 있잖나(웃음).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이 식사할 때 내가 없으면 부장 기분을 띄워줄 사람이 없으니까 밥이 안 넘어간다고, 점심 약속 잡지 말라고 했을 정도다.

ⓒ시사IN 이명익

그런데 어쩌다 ‘목에 도끼를 걸고 상소를 쓰는 선비’가 되었나?

2009년에 법무부로 발령받았을 때 ‘아무개 간부랑 불륜 관계’라느니 별의별 소리를 들었다. 배경도 없는 여성 평검사가 딱 하나 남아 있던 자리에 갔으니 이례적이긴 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부인인 김윤옥 여사가 다문화에 관심이 많았는데, 내가 광주지검에 있을 때 다문화 사업을 전담한 검사라서 그걸로 실적을 인정받아 법무부로 간 거였다. 그런데도 회식 자리에서 어떤 과장이 불륜 소문을 들었는지 나에게 ‘헤픈 여자’라고 하더라. “문제 제기를 하면 꽃뱀 여검사라고 하고 가만히 있으면 헤픈 여자라고 하니 직장생활 참 힘들다”라고 항의했다. 그때 여차저차 사과받고 넘어가긴 했는데, 속으로는 점점 끓고 있었다.

어떤 일이 계기가 됐나?

그동안 검사직을 세 번 걸었다. 첫 번째 직을 걸었던 건 2009년 법무부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 국립묘지 안장 여부를 검토할 때였다. 노 전 대통령이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건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니 무슨 일이 있어도 막는다 생각했는데, 당시에 노 전 대통령이 생존해 있었기 때문에 결정이 나지 않고 그냥 넘어갔다. 그러다 2011년 6월에 안현태 전 장군이 사망했다. 12·12 쿠데타 주역이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을 지낸 사람이다. 이때도 국립묘지 안장 여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안 전 장군이 국립묘지에 묻히면 노 전 대통령도 국립묘지에 묻힐 게 뻔하기 때문에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사건이 아니니까, 후배 사건이니까 하면서 외면했다. 그때 택시 타고 가서 국립묘지안장심의위원회 회의실 문을 걸어 잠그고 부결시켰어야 했는데. 그걸 안 한 게 엄청 후회되더라. 그게 부글부글 끓다가 한계점을 넘은 순간이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검사들이 호떡 뒤집듯이 해석을 바꾸면서 바람개비처럼 흔들리는 거. 나는 더 이상 바람개비가 될 수 없었다.

두 번째로 직을 건 때는?

2012년 9월에 박형규 목사님 재심에서 무죄를 구형했을 때다. 박 목사님은 민청학련 사건 때 15년 형을 선고받은 분인데, 이런 사람을 위해서라면 직을 걸어야겠다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게 결재가 나서 당황했다. 그해 12월에는 조봉암 선생과 진보당을 창당하고 간사장을 맡았던 윤길중 전 의원의 재심에서 무죄를 구형했는데, 결국 결재가 안 나고 검사도 교체됐다. 어쩔 수 없이 각오하고 재판정 문을 걸어 잠근 채 무죄를 구형했다. 그게 세 번째로 직을 건 일이었고, 내 마지막 사건이 될 줄 알았다.

결국 징계를 받았다.

징계위원회가 열렸을 때 내가 최후진술을 하고 나가니까 누군가가 나더러 ‘소영웅주의에 빠졌다’고 비웃었다더라. 내가 겁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하니까 하는 건데. 내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후배들은 이런 일을 안 겪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인 건데. 지시 위반을 이유로 정직 4개월 징계를 받았지만 취소소송을 통해 대법원에서 징계무효 판결을 받았다. 그때부터 검찰 안에서 ‘미친X’이었다. 나를 ‘임은정씨’라고 부르는 후배들이 나타났다.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를 검찰 간부가 은폐했다는 의혹 등을 공론화한 임은정 검사(가운데)가 2018년 2월6일 서울 동부지검에 참고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싸운 보람이 있었나?

처음에는 순진했다. 내가 이프로스에 글을 올리면 다른 검사들도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이 바뀌고, 관행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는 건 한두 해 만에 되는 일이 아니더라. 글을 올릴 때마다 부장한테 불려갔다. “대검하고 법무부에서 근무했던 30기 중에 여검사가 총 몇 명이야? 그중에서 검사장이 나와, 자네 이러면 검사장 못 돼.” 사실 이프로스에 글을 올리는 순간 인사를 포기한 건데 부장은 승진을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검사장이 뭐 별거라고. 그렇게 중간 간부가 되느니 검사로 살아야지. 계속 이프로스에 글을 쓰니까 부장이 징계하겠다고 난리를 쳤다. 그래서 페이스북으로 옮겨갔더니 그냥 도로 돌아와서 이프로스에다 쓰라더라(웃음). 말의 힘을 느꼈다. “여기 문제가 있어요”라고 말하는 거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법을 말하는 엘리트 집단이 어떤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지, 하루하루 일어나는 일을 써내려가는 사관의 심정이었다.

글을 쓰는 걸 넘어서 직접 고발장을 내기도 했다.

징계 취소소송에서 이기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소장을 넣으면 판결문이 나오는구나. 이기든 지든 이런 판례가 하나 둘 쌓이면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이 되겠구나.’ 감찰을 요청하고 고발장을 내야 검사들이 말하는 법과 원칙의 실체가 대체 무엇인지, 증명력이 있는 공문서의 형태로 세상에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알아야 검찰이 조금이라도 바뀌니까. 그래서 징계처분에 대한 국가배상 소송을 시작했다. (잘못된) 징계를 하라거나 블랙리스트를 만들라는 위법한 지시에 따르는 건 잘못이라는 판례를 받아내고 싶었다. 2015년 남부지검에서 있었던 성폭력 은폐 사건도 고발하고, 2016년 부산지검에서 일어났던 부산지검 고소장 위조 사건도 고발했다. 판례를 받아낼 때까지는 절대 안 나간다, 아무리 힘들어도 못 나간다는 생각이었다. 생각보다 힘든데 버틸 만하더라. 버틸 만하면 버텨야지.

그 정도라면 보통 직장을 나오기 마련인데 왜 아직도 검찰에 남아 있나?

내가 아는 게 검찰밖에 없긴 하지만 검찰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검찰은 적정한 수사로 죄의 무게를 다는 곳이다. 검찰을 떠나서 변호사를 해봤자 법정 안에서 다시 검사를 상대로 한다. 법조계를 떠나 다른 일을 한다고 해도 법률 분쟁이 있으면 결국 검사를 마주하게 된다. 대한민국을 떠날 게 아니라면 내가 피한다고 해서 피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검찰을 바꿔야 하지 않겠나.

검찰 내부에서 임 검사의 바통을 이어받으려는 사람이 없는데.

2012년 이후 ‘미친X’이 되고 나서 검사들이 나를 경계했지만 사적으로는 계속 연락이 왔다. 부당한 일이 있으면 나랑 욕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윗사람한테 말해줄 사람이 달리 없으니까. 나를 그렇게 구박하다가도 급해지면 내게 SOS를 보낸다. 참 슬픈 게, 검찰뿐만 아니라 다른 부처에서도 자꾸 도와달라고 연락이 온다. 그것까지는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면 욕을 하기도 하는데 정말이지 여력이 없다. 내가 강해 보이나 보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섭섭하지 않은지?

섭섭하기는 한데, 이해한다. 조직이 살려두지 않으니까. 나를 공개적으로 응원하던 박병규 선배가 2015년 2월 적격심사(검사가 7년 주기로 받는 직무수행평가)로 잘렸잖나. 그게 현실이다. 검찰은 특히 인사가 너무 불안정하고, 인사가 아니더라도 마음에 안 들면 사건을 많이 배당해서 숨을 쉴 수 없게 만든다. 살짝 튀는 행동을 하면 몰배당을 줘버린다. 그래도 지난 문재인 정부 때 딱 하나 좋은 점이 있었다면 적어도 잘릴 걱정은 안 했다는 거다.

2020년 1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맨 왼쪽)이 참모진과 이동 중이다. ⓒ연합뉴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살짝 일어서려고 하는 내부고발자들을 위에서 짓밟아버리는 걸 팔짱끼고 방관했다. 임은정 검사 ‘미친X’, 서지현 검사 ‘미친X.’ 그리고 짓밟은 사람들은 계속 검사장으로, 고검장으로 승진했다. 잘나가는 사람이 똑같은데 뭐가 달라지겠나. 그 과정을 모든 검사들이 지켜봤다. 내가 느끼기에 많은 검사들이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의 방향을 안다. 그러면 아무도 못 일어난다.

전 정권에서 검찰개혁을 내걸었는데 아쉬웠을 것 같다. 소위 ‘검수완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솔직히 말해서 관심이 없다. 검찰이 스스로 문제를 고치면 (국민들이) 검찰을 더 신뢰할 텐데. 나는 고치는 문제에 집중할 거다. 그게 내 역할이다. 어차피 검찰은 조직적으로 움직이니까 내가 (검수완박에 대해) 말 안 해도 된다. 검찰이 없어져도 할 말이 없는데 오히려 여기서 좀 더 권력을 가져가야겠다는 말을 염치없이 어떻게 하나.

검수완박이 되면 오히려 피해자의 권리가 보호되지 않는다고 반발하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게 부산지검에서 2차 술자리에 붙잡혔을 때다. 부장이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신고식’을 시켰다. 좋아하는 체위가 뭔지, 최근에 언제 성매매를 했는지, 첫 경험을 언제 했는지로 자기소개를 하라는 거다. 근데 그 여성들 대부분 성폭행을 당한 게 첫 경험이었다. 어떤 분은 차량 보닛 위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할 때 본 밤하늘을 이야기했다. 나는 치가 떨려서 듣고 있는데 남자 검사들은 웃더라. 안 듣고 있겠지. 보나마나 그 여성들 몸매나 얼굴 보고 있겠지. 그 검사들 중 몇 명이 인권, 인권 하고 있는 거다. 내 혀를 깨물지언정 그 사람과 같은 ‘인권’을 말하고 싶진 않았다. 그들이 필요할 때 말하는 ‘국민’과 실제 ‘국민’이 그때그때 다르다.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국민이 아니고 그들의 인권은 없는 거다. 검찰에서는 솔직히 형사부가 찬밥 신세다. 형사사건을 ‘10원짜리 사건’이라고 부르면서 이럴 때만 갑자기 국민과 인권을 내세운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검찰 출신이 요직에 배치되고 있다.

이카루스의 날개는 태양 가까이 다가가면 녹는다. 날개에 붙어 있던 깃털이 열기에 녹아서 검찰의 밑바닥이 드러나면 국민들이 냉정하게 판단하시겠지. 길게 보려고 한다. 태양은 곧 정점 아닌가. 담담하게 일몰을 준비할 거다.

검찰이 바뀔까?

바뀌어야 한다. 결국 바뀔 거다. 일제강점기 친일파들이 다들 ‘이렇게 갑자기 독립이 찾아올 줄 몰랐다’고 하지 않았던가. 10년, 20년이면 안 바뀌는 듯해도 수십 년 뒤에는 바뀐다. 내 인생에서야 10년, 20년 힘들겠지만 역사에서 이 시간은 찰나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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