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비상이 일상화된 韓국회..'정당 시스템 개혁·지도부 권한 집중' 도마위
지도부 집중·당규 개정 시스템도 문제
비대위, 혁신 없이 관리식 장기운영도
"1인 지배체제 당 시스템 확 바꿔야"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국회에서 매번 반복되는 주요 정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전환은 허약한 정당 정치 시스템, 권력투쟁식 정쟁에 몰두하는 정당, 중앙집권적 정당 운영 등 3가지 악재가 중첩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당원과 일반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 당 지도부를 모두 교체한 이후에도 새로운 정당 개혁이나 혁신안을 만들지 못하고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적 성격의 기구로 비대위를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당헌·당규 개정 등 시스템화된 정당 개혁안 마련, 당원 중심의 민주적 정당 운영 등을 통해 후퇴한 정당 민주주의를 시급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2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 출범 80여 일 만에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제1·2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정의당이 모두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거나 전환을 앞두고 있다. 이는 지난 2016년 6월, 제20대 국회 출범 이후 새누리당·민주당·국민의당이 선거 참패와 내부 분열 등으로 모두 비대위 체제로 전환한 지 6년여만이다.
앞서 민주당은 올 3·9 대통령선거 패배 이후 윤호중·박지현 비대위로 운영됐다. 6·1 지방선거 이후에는 우상호 비대위 체제로 전환됐다. 정의당은 6월 지방선거 참패 이후 창당 후 최대위기에 내몰리면서 대표단이 총사퇴, 이은주 원내대표 체제의 비대위가 운영되고 있다.
비대위 체제를 앞둔 국민의힘은 지난해 4·7 재·보궐선거에 이어 올해 대선과 지방선거를 모두 승리했기 때문에 이번 비상 상황으로의 전환이 더욱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여야가 5년만에 바뀌면서 힘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결국 기회는 위기가 됐다.
사상 최초 집권여당 대표의 중징계 사태 이후에도 당 대표 직무대행의 사적 채용 발언 논란, 대통령과의 내부 메시지 공개 등 연이은 구설수로 결국 당 지도부가 대거 사퇴하는 등 당내 혼란이 거듭돼 왔다. 오는 5일 당 전국위원회에서 비대위로 전환되면 2020년 9월 현 당명으로 전환된 이후, 이준석 대표 체제의 1년여를 제외하고는 모두 비대위 또는 권한대행 체제라는 비정상적인 구조로 당이 운영되는 오점을 남기게 됐다.
오는 8월과 9월 야권인 민주당과 정의당은 전당대회를 개최해 당 지도부를 교체할 예정이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은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비대위 운영기간이나 비대위원장 권한 여부, 전당대회 개최 시기 등도 정하지 않은데다 연말께 징계가 풀리는 이준석 당 대표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원은 “비대위를 운영하는 것 자체가 이준석 대표가 복귀가 힘들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며 “당 지도부를 ‘제로 세팅’화 할 수 있도록 당헌·당규를 바꾼 이후 차기 총선 공천권을 잡기 위한 갈등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비상 상황인 정당을 개혁하고 차기 지도부 구성을 위한 중간 다리가 되는 비대위 운영이 장기화될 경우 급속도로 악화된 현 민생·경제 위기가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여당 내부에서 차기 당권을 잡기 위해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 친이준석계, 제3의 중도 세력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 경우 당내 세력화 등에 집중하면서 여야 간 합의 지연, 의정 활동 등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비대위는 임시 조직이기 때문에 3개월 가량 짧게 운영되지만, 비대위 기간이 정식 당 지도부 임기에 버금가게 운영된 경우도 있다. 지난 2020년 6월 출범한 국민의힘 비대위는 2021년 4월까지 10개월간 운영됐다. 민주당의 경우 올해 3월 대선 이후 오는 8·28 전당대회까지 6개월여 기간 동안 비대위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는 비대위가 당의 개혁을 할 수 있는 차기 지도부 구성을 위한 임시 조직이 아니라, 단순히 비상상황 자체에 대응하기 위한 관리형으로 운영된 결과라는 해석이다.
그러다 보니 그때그때 이름값 하는 사람들을 내세워 땜질 처방을 한다. 실제 달라지는 것이 없다보니 조금 지나면 또 비대위가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민생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초고물가 공습과 북한 위협 등 복합적인 경제·안보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해결해야 하는 ‘정치’는 실종된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현재 중앙집권적 형태의 당 지도부 체제 속에서 당론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필요에 따라 규정을 쉽게 바꾸는 관행도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성규 건국대 행정대학원 특임교수는 “당의 주인은 지도부가 아닌 당원들임에도 현 1인 지배체제인 정당 시스템이 정당 민주주의의 폐혜가 되고 있다”며 “비대위 목적과 상황에 따라 당헌 당규를 개정하는 비민주적인 시스템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기덕 (kidu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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