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빼고 다 불편..고립되는 韓 외교[한반도 리뷰]
한일관계도 기대와 달리 낙관 불허…'현금화' 늦추며 현상관리가 목표?
대미 의존도 심화되고 北 위협에 취약…美 중간선거 후 북미관계도 변수
독일 통일의 교훈은 꾸준한 동방정책으로 동‧서독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이웃국가의 이해와 협조를 얻어낸 것이다. 독일의 경험을 한국의 현실에 비춰보면 한반도 정세가 왜 그리 꼬여만 가는지 극명한 대비를 통해 알 수 있다.
우리의 대북정책은 진보 정부 10년과 보수 정부 9년을 거치며 냉온탕을 오갔고 이후 문재인, 윤석열 정부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권에 상관없이 약 20년을 초당적으로 일관한 독일과 정반대인 셈이다.
독일이 주변국의 우려를 씻어내고 오히려 지지를 이끌어낸 것도 한국과 다르다. 2차 대전의 전범이자 그 형벌로서 분단된 독일이 소련, 영국, 프랑스 등 막강한 주변국의 반대를 이겨낸 지혜를 우리는 통독 30년이 훌쩍 지나도록 깨우치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제재 이어 중국과도 냉랭…박진 방중시 '칩4, 사드' 갈등 불가피
한국은 이 와중에 미중 전략경쟁과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쳐지며 안팎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신냉전 기류라는 어쩔 수 없는 외부 환경이지만 우리가 자초하는 측면도 크다.
일단 정부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러시아 제재에 적극 동참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한미동맹을 축으로 하는 우리 외교에선 어느 정부가 됐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훨씬 더 예민한 사안인 한중관계에 이르면 얘기가 달라진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한국 국민은 중국을 싫어한다" 같은 정제되지 않은 언사로 중국을 자극했다.
취임 후에는 좀 달라졌지만 한미정상회담,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나토정상회의 등을 통해 반중 색채를 명확히 드러냈다. 미국의 요청을 외면할 수는 없겠지만 불필요한 부담까지 덤으로 짊어지는 것은 문제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의 '탈중국' 발언이 대표적이다.
물론 정부는 '특정국을 겨냥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윤 대통령도 "중국이 오해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외교를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중국이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IPEF나 올해 나토정상회의가 중국을 겨냥한 것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불거진 이른바 '칩4 동맹'을 '반도체 공급망 대화'나 '팹(Fab)4'로 이름을 바꿔도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대상 국가를 4개로 한정한 것 자체가 그 폐쇄성을 드러낸다.
결국 중국은 한동안 관망하는 자세에서 공세적 태도로 돌아섰다. 윤 대통령 취임식에 고위급인 왕치산 부주석을 보내는 등 나름 성의를 보이던 것과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중국은 연일 '칩4 동맹'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 데 이어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3불' 문제까지 재론하며 압박하고 있다. 조만간 있을 박진 외교부 장관의 중국 방문이 오는 24일 한중수교 30주년을 계기로 한 것임에도 마냥 축제 분위기를 기대할 수는 없게 됐다.
한일관계도 기대와 달리 낙관 불허…'현금화' 늦추며 현상관리가 목표?
그나마 한일관계는 관계 복원의 물꼬라도 트일지 기대가 컸지만 이 역시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최대 난제이자 발등의 불인 강제징용 배상 문제부터 풀기 위해 민관협의회를 가동하는 등 전향적 대일 접근에 나섰다.
이미 인수위 때 특사단을 보내 아베 신조 전 총리와도 만났고 아베 장례식에는 한덕수 총리를 조문 보내며 긍정적 신호를 잇달아 발신했다. 하지만 일본 측은 여전히 '한국이 해결책을 가져오라'는 고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차갑게 얼어붙은 양국관계의 표피만 살짝 녹았을 뿐, 강제징용뿐만 아니라 독도‧교과서나 원전 오염수 등 다양하고 구조적인 갈등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한 계기였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1일 과거 특사단 방일시 아베 전 총리가 한일 위안부 합의가 지켜지지 않는 것에 큰 유감을 표시한 사실을 소개하며 "(한일관계에 대한) 낙관론이 지배하는 느낌이 있는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가뜩이나 지지율이 떨어진 윤 대통령으로선 한일관계에서 양보할 여력이 없고, 일본도 그런 점을 의식해 마찬가지로 손을 내밀 수 없거나 내밀지 않는 형국이다.
이런 교착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게 관리라도 하는 게 그나마 현실적 목표인 셈이다. 외교부가 지난달 26일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해 사실상 강제징용 판결 관련 '현금화' 시점을 늦추려고 한 것은 그 일환이다.
대미 의존도 심화되고 北 위협에 취약…美 중간선거 후 북미관계도 변수
이처럼 미국을 제외한 모든 주변국들과의 관계가 불편해지면서 한국의 운신의 폭은 그만큼 좁아졌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북한을 적절히 관리하고 중국과 러시아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에 가깝다.
이는 결국 미국에 더 의지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중국‧러시아와는 더욱 멀어짐으로써 다시 한미동맹 강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 삼성, 현대, SK의 대규모 대미투자에도 이렇다 할 반대급부가 없는 것은 이미 대미 지렛대가 약화된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윤석열 정부가 다시 '주적'으로 규정한 북한의 위협이 되살아났지만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는 것이다. 중국‧러시아와의 불편한 관계는 북한이 설령 7차 핵실험 같은 대형 도발을 하더라도 유엔 안보리에서의 협조를 기대할 수 없게 만든다.
정부는 '핵우산' 강화를 뜻하는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 개최를 대미 외교의 성과이자 대북 안전판처럼 홍보한다. 그러나 이는 한미동맹에 따른 미국의 당연한 안보 공약이다. 본질적으로 협상 대상이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도 강경 일변도 대응은 한반도 긴장을 완화할 최소한의 숨구멍마저 차단함으로써 일촉즉발의 위험을 키운다. 정부는 이미 이달 말 재개되는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국가 총력전 개념의 전구(戰區)급'이라고 의미 부여함으로써 북한을 잔뜩 자극해 놓았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부총장은 "북한이 어쨌거나 몰아치기식 미사일 발사를 중단했고 핵실험도 보류한 상태에서 한미훈련은 (대북 억지가 아니라) 북한이 오히려 강대강으로 나올 명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월 중간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국면전환을 위해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성을 보일 가능성을 거론한다. 이럴 경우 북한의 '통미봉남'이 재연되며 한국은 미국에마저 '패싱' 당하는 고립무원 상황도 배제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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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홍제표 기자 ent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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