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농 열전 백년농부] "소비자가 농산물 맛보고 즐길 공간 필요했죠"
[가족농 열전 백년 농부] (13) 농장 겸 카페 ‘본앤하이리’ 이끄는 황인재씨
할아버지 농사 열정…어머니 가공·체험농장 운영경험
밭에서 놀며 자라…농부의 삶 꿈꿔
안정적 수익 내기 위해 카페 등 마련
시설하우스·전통음식연구소도 눈길
지난해 농식품부 ‘사회적 농장’ 지정
인근 학교 발달장애아이들 체험교육
전북 완주의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농장 겸 카페 ‘본앤하이리’. ‘본(Born)’은 ‘태어나다’라는 뜻의 영어에서, ‘하이리’는 용진읍 마을 이름에서 따왔다. 회사 설립을 기획한 건 황인재씨(24)다. 간판에 지역명을 넣었을 만큼 황씨는 고향에 대한 애정이 크고 농촌 지킴이로서 마음이 남다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물론 그도 용진읍 하이리 토박이로서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
황씨 가족은 소위 3대를 잇는 백년농가다. 할아버지인 황의홍씨(86)는 젊은 시절 지역에서 솜씨 좋기로 소문난 농사꾼이었다. 당시 지역특산품이었던 상추·치커리·참나물을 키웠다. 뒤이어 황씨도 부모님의 밭일을 도왔으니 그가 농부가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릴 적 밭이 놀이터였어요. 농번기 때면 배추 모종 옮긴다고 땀 흘리며 일하시는 할머니 일손을 거들었고 또 잡초 제거를 위해 낫을 받아다 갈아드린 적도 있어요. 농부가 아닌 삶은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1차 농산물 재배만 하던 가업이 변화를 맞은 건 부모님 때였다. 기후 탓에 소출이 신통치 않고 또 예상치 못한 가격 폭락으로 손해를 본 해가 잦아지자 황씨 어머니 정선진씨(51)는 체험농장 ‘담소담은’을 지었다. 농산물가공시설까지 갖추자 원활한 판매로 들쑥날쑥했던 수익이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황씨는 1차 생산에 온 열정을 바친 할아버지, 농산물 가공과 체험농장의 가능성을 키운 어머니를 곁에서 보고 배웠다. 여기에 자신만의 감각을 더했다. 직접 소비자와 만나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렇게 세워진 것이 본앤하이리다.
“윗세대를 보면서 전업농만 해선 어렵겠단 생각을 했어요. 영농을 이어가려면 안정적인 수익이 중요해요. 그러려면 소비자가 직접 농산물을 맛보고 즐길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하고요. 또 지역 활력화를 위해 청년들이 자주 찾을 수 있는 시설이 필요했죠.”
본앤하이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카페다. 붉은 벽돌로 치장한 2층 건물은 멀리서 봐도 멋스럽다. 그러나 황씨가 중요하게 신경 쓴 곳은 바로 옆 1650㎡(500평) 규모의 시설하우스다. 할아버지가 키우던 레몬·한라봉·유자를 옮겨 심었다. 새벽부터 오전 내내 이곳에 머물며 농부로서 역할을 잊지 않는다. 단호박·생강·대파를 키우는 5000㎡(1500평) 규모 노지 밭을 돌보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 외 전통음식연구소도 있는데 우리농산물 본연의 맛을 지키고자 연구·개발에 노력한다. 이곳은 6차산업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치유농장(케어팜)이자 농촌문화를 이끌고 지켜가는 보고인 셈이다.
황씨 직책은 정확히 본앤하이리 사무국장이다. 영농부터 직원 관리, 메뉴 개발과 생산, 총무까지 실질적인 업무를 책임진다. 대표는 어머니 정씨가 맡고 있다. 정씨는 전신인 담소담은을 이끈 경험을 살려 농장 전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한다. 가업의 뿌리인 할아버지는 고문이다. 아직 황씨에게 가르쳐야 할 영농기술이 많아 일을 놓을 수 없다.
황씨는 3대 가업 계승이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같은 목표를 품고 일하는 것이 든든하고 단합도 잘된다.
“서로 의견이 다를 때도 있어요. 그럴 땐 서로 굽히지 않고 끝까지 이야기합니다. 그러고 잠시 시간을 두고 곰곰이 따져보는 거죠. 그러면 ‘어머니 말씀이 옳았어’ 하는 생각이 들어요. 혹은 어머니가 제 의견이 맞다고 해주실 때도 있고요. 그렇게 의논하면서 중요사항을 결정합니다.”
정씨 역시 동감한다. 가감 없이 생각을 나누는 것이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정씨는 “아들이 냉정히 제 의견을 반대할 땐 서운하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어요. 아들에게 제게 없는 장점이 많이 있더군요. 얼마나 의지가 되는지 몰라요.”
본앤하이리는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사회적 농장이다. 사회적 농장이란 장애인·고령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게 농업을 통해 교육·돌봄·고용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인근 학교와 협약을 맺고 발달장애 아이들에게 체험교육을 진행한다.
“농사를 짓는 것만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어요. 그런 농업·농촌의 힘을 알리는 곳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 고향 완주를 지키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갈수록 농민과 농지가 줄어 걱정인데 농촌도 행복한 삶의 터전이 될 수 있고 미래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묵묵히 해나간다면 어느새 꿈꾸던 모습이 돼 있지 않을까요?”
완주=지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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