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풍기' 써도 될까?..정부-환경단체 전자파 문제 '핑퐁' [뉴스AS]
핵심 차이는 '비교 기준'..'833mG' 대 '4mG'
국제표준에 근거한 국내 기준대로면 사용 가능
다만, 전자파 발암 위험 연구는 현재진행형
환경단체도 "25cm 거리두고 사용하면 안전"
최근 휴대용 선풍기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인체에 안전한 수준인지를 두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환경단체 사이에 공방이 오가고 있습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시민센터)는 지난달 26일 휴대용 선풍기의 전자파를 측정한 결과 발암 위험성이 우려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과기정통부는 지난 1일 휴대용 선풍기에서 나오는 전자파는 인체보호기준을 충족한다고 반박했습니다. 이에 대해 시민센터는 만성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며 2일 재반박했습니다. 주장과 반박이 핑퐁처럼 오가고 있는 모양새인데요. 그렇다면 휴대용 선풍기, 과연 써도 되는 걸까요?
시민센터는 2일 기자회견을 열고 “과기정통부가 자체 구매한 손‧목 휴대용 선풍기 10대의 전자파를 측정한 결과 한 대를 제외하고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암연구소(IARC)의 발암가능물질 지정 배경연구 전자파 세기인 4mG(밀리가우스·전자파 세기 단위)의 최소 49.5배~최대 224배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전날 과기정통부는 지난달 26일 시민센터가 전자파를 측정해 발표한 휴대용 선풍기 10대를 포함해 모두 20대의 전자파를 측정한 결과 인체에 안전하다고 밝혔는데, 이에 대한 재반박입니다.
우선 휴대용 선풍기에서 나오는 전자파는 인체에 얼마나 위험할까요. 휴대용 선풍기에서 나오는 전자파는 극저주파 자기장입니다. 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는 극저주파 자기장과 휴대전화 전자파를 ‘2B군 발암물질’로 분류합니다. 2B군은 ‘암 유발 가능 그룹’으로, 발암 가능성이 있지만 인체에나 동물실험에서 발암성이 있다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를 의미합니다. 절인 채소 등도 2B군에 포함됩니다. 결국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미약한 세기의 전자파는 발암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분류되지만, 아직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명확히 알 수 없어 연구가 계속 이뤄지고 있습니다.
정부와 환경단체의 전자파 측정값, 수백mG로 큰 차이 없는 것으로 해석 가능
다음으로 과기정통부와 시민센터가 휴대용 선풍기의 전자파를 어떻게 측정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과기정통부는 국제표준에 따른 국립전파연구원 계측기를 사용했고, 시민센터는 시중에 판매하는 계측기를 사용했습니다. 과기정통부는 시민센터에서 사용한 계측기가 선풍기 모터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주파수를 구분해 측정할 수 없고, 전자파 측정 안테나 크기도 국제표준에 미치지 못해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난 1일 브리핑에서 최우혁 과기정통부 전파정책국장은 “죄송한 이야기지만 (시민센터가 사용한) 17만원짜리와 (국립전파연구원이 사용한) 3000만원짜리 장비를 갖다 대는 게 수준이 다른 상태라는 걸 전제해달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시민센터는 이날 측정에 대학에서 주로 학술용으로 사용하는 새 계측기를 사용했습니다. 가격은 약 500만원이라고 합니다. 국립전파연구원 계측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지난달 사용한 것보다는 고가의 기기입니다. 이날 시민센터는 정부가 전자파를 측정한 20대의 휴대용 선풍기 중 시민센터가 지난달 측정했던 10대를 제외한 나머지 10대에 대해 새 계측기와 지난달 사용한 계측기로 두번씩 전자파를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새 계측기로 측정한 전자파(288.00mG)와 지난달 사용한 계측기로 측정한 전자파(288.30mG) 사이에 차이가 작은 제품도 있었고요. 각각 624.2mG(새 계측기로 측정)와 895.7mG(지난달 사용한 계측기로 측정)로 가장 차이가 큰 제품도 있었습니다.
과기정통부의 계측기가 훨씬 더 고가인데요, 측정값에도 큰 차이가 날까요? 과기정통부의 계측기에는 전자파 세기가 표시되지 않기 때문에 이 계측기로 잰 정확한 전자파 수치는 알 수 없습니다. 김기회 국립전파연구원 연구관은 “휴대용 선풍기 모터가 돌아가면서 여러 주파수에서 다른 세기의 전자파가 나온다. 국립전파연구원 계측기는 이를 모두 내부 프로그램에서 합산해 인체보호기준의 몇 퍼센트인지만 표시하게 돼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과기정통부가 “국제 권고 인체보호기준의 2.2∼37% 수준이었다”고 발표한 점을 미루어 역으로 거칠게 계산해보면, 일부 주파수에서 전자파 세기가 수백mG에 달하는 제품도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설명입니다. 지난달 시민센터가 측정한 손 선풍기 6대의 평균 전자파 세기는 464.44mG, 목 선풍기 4대의 평균 전자파 세기는 188.77mg였습니다. 정부와 시민센터 계측기의 차이로 인해 측정 자체의 엄밀성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측정값을 단순화해 비교해보면 양쪽이 측정한 전자파 세기 자체에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핵심 차이는 ‘비교 기준’…정부 ‘833mG’ 대 시민센터 ‘4mG’
결국 비슷한 전자파 측정값을 ‘인체보호기준 충족’(정부) 대 ‘발암 위험성’(시민센터)의 다른 결론으로 이끈 것은 ‘비교 기준’입니다. 시민센터는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한지 판단하는 기준을 주파수 구분 없이 4mG 이상으로, 정부는 60Hz 주파수를 기준으로 833mG 이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시민센터가 적용한 기준은 앞서 언급한 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가 극저주파 자기장을 2B군 발암물질로 분류할 때 참고한 연구들에 나온 내용입니다. 3~4mG 이상의 고압송전선로 전자파 노출이 소아백혈병 위험도를 높인다는 겁니다. 정부는 국제비전리복사보호위원회(ICNIRP) 기준을 활용해 주파수별로 30㎐에서 1666mG 이상, 60㎐에서 833mG 이상, 200㎐에서 250mG 이상, 800㎐에서 62.5mG 이상 등을 인체에 유해한 기준으로 규정합니다. 국제비전리복사보호위원회 기준은 60Hz 주파수의 경우, 1998년 833mG에서 2000년 2000mG로 개정되는 등 완화됐는데 한국은 보다 엄격한 1998년 833mG 기준을 사용합니다.
두 기준 가운데 정부가 활용하는 국제비전리복사보호위원회 기준이 국제표준으로, 세계보건기구의 권고에 따라 대부분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기준입니다. 지난 1일 정부 브리핑에 참여했던 백정기 충남대학교 전파정보통신공학과 명예교수는 2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4mG는 고압송전선로와 관련해 일부 연구에서 나온 수치일 뿐이다. 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가 2B군 발암물질 지정과 관련해 이 연구를 채택한 이유는 증거가 매우 적다 하더라도 발암 가능성을 0으로 볼 수는 없다는 취지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백 명예교수는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인 국제비전리복사보호위원회 기준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다. 4mG는 워낙 낮은 수치기 때문에 4mG를 넘는 게 문제라면 마우스 등 우리가 사용하는 전자제품 대부분이 문제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시민센터는 전자파의 발암 위험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사용에 최대한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이날 시민센터 발표에 참여한 백도명 서울대 환경보건학과 명예교수는 “전자파의 발암 위험성을 동물실험에서 입증한 최근 연구들을 보면, 가능한 전자파 노출에 주의해야 한다. 특히 휴대용 선풍기처럼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제품은 최대한 사용을 줄이는 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백 명예교수는 2018년 미국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 독성학 프로그램 연구와 같은해 이탈리아 라마치니 연구소의 연구를 인용했는데, 두 연구 모두 휴대전화 전자파에 대한 것입니다.
전자파 발암 위험성 연구는 현재진행형…“25㎝ 거리두고 사용하면 안전”
결론적으로 현재 국제표준을 따른 국내 인체보호기준을 보면 휴대용 선풍기 대부분은 사용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전자파의 발암 위험성에 대한 연구는 결론이 난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이에 아직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히 알 수 없는 만큼 전자파가 우려된다면 전자파 노출을 최대한 줄이자는 시민센터 주장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휴대용 선풍기를 사용하되 전자파 노출을 줄이려면 거리를 두고 사용하면 됩니다. 시민센터도 “25㎝가량 거리를 두고 휴대용 손 선풍기를 사용하면 괜찮다”고 합니다.
시민센터는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이 문제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하자고 제안합니다. 최예용 시민센터 소장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등에서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전자파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의견을 수렴해 필요하다면 정책에 반영해달라”며 “단순히 과학적 사실에 대한 논쟁이 아닌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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