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정말 푹 쉬는 중"..참모들은 왜 휴식만 강조할까
휴가철 대통령 정국 구상 당연한데도
향후 행보 전망에 "억측, 근거 없는 말"
여권서도 터져나온 참모 쇄신론엔
"입장 낼 상황 아니야" 거듭 단속
“지금은 댁에서 오랜만에 푹 쉬시고 많이 주무시고, 가능하면 일 같은 건 덜 하시고 산보도 하고 영화도 보고 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첫 휴가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도 여느 직장인처럼 ‘아주 평범한 휴가’를 보내고 있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다음 나온 발언은 의아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은 정말 푹 쉬고 계신다”라며 “관계자를 인용해 여러 억측이 나오고 ‘휴가가 끝나면 뭘 할 거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다’ ‘어떤 쇄신을 한다’ 이런 얘기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그런 얘기는 근거가 없는 것들이다. 대통령이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을 충분히 해서 일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데 관심을 두고, 그 외 추측은 없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휴가, 휴가 뒤 행보를 전망하는 기사를 뭉뚱그려 ‘억측’, ‘근거가 없는 것’이란 날 선 표현을 동원하며 반박한 것이다.
휴가 중 대통령, 정국 구상 당연한데도 참모들 “억측”
윤 대통령은 임기 80일 만에 국정수행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한 ‘위기 상황’에서 휴가를 떠났다. 일주일짜리 ‘쉼’을 통해 어떤 변화된 메시지와 행보를 들고 나설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 내부에서도 “취임 100일(8월17일) 전에는 지지율 반전을 가져올 한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던 참이었다. 대통령실이 적극적으로 “푹 쉬는 중”이라고만 강조하는 것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등장한 ‘참모 쇄신론’을 잠재우려는 의도가 적지 않아 보인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여권 내에서 대통령실도 인적쇄신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는 지적에 “저희는 일단 먼저 당이 조속히 안정되기를 바라고 있다. 민생도 그렇고 여러 가지 해결할 일들이 많은데, 그런 일들을 같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대통령실보다 여당의 변화가 먼저’라는 답변에 추가 질문이 이어지자 “(쇄신론과 관련한) 입장을 낼 만한 것이 없다”며 “어떤 방식으로 대통령실에서 ‘무엇을 하느냐’하는 것은 결국 대통령이 결정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시사저널>이 김대기 비서실장과 일부 수석비서관이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혔다고 보도하자, 대통령실은 보도 17분 만에 “김 실장과 일부 수석비서관이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혔다는 일부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신속히 반박하기도 했다.
‘저도의 추억’ 같은 사진 한장 없는 윤 대통령의 첫 휴가
역대 대통령들은 휴가 일정과 행보를 통해 메시지를 보여줬다. 지역 방문을 통한 경제 활성화 노력은 물론이고, 인간적인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 휴가지 사진 ‘한 컷’을 활용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첫 휴가를 경남 거제 인근 저도에서 보내며 모래사장에 ‘저도의 추억’이란 글씨를 적고 있는 사진을 에스엔에스(SNS)에 공개했다. 그는 “35여년 지난 오랜 세월 속에 늘 저도의 추억이 가슴 한 켠에 남아있었는데 부모님과 함께했던 추억의 이곳에 오게 되어서 그리움이 밀려온다”고 적었다.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를 소환하며 보수층의 향수를 자극하는 효과가 적지 않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여름 첫 휴가를 강원도 평창에서 시작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을 200일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현장 상황을 점검하고, 올림픽 홍보 효과도 노린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도 휴가 때마다 경호가 가능하고 시민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는 경남 진해 군 휴양소, 대전 군 시설 등을 찾았고, 외교·안보 관련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챙기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윤 대통령이 막판까지 저도 등 휴양지 방문과 지역 일정을 타진하다 계획을 접고 서울 서초동 자택에 머물기로 한 것은, 대통령이 움직이면 시민들 불편이 가중되고 엄중한 경제 상황에서 한가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는 대통령실 안팎의 우려를 고려한 결정이라고 한다. 휴가 직전 포착된 ‘내부 총질 당 대표’ 메시지로 당이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되는 등 혼돈에 빠져든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소나기를 피하는’ 휴가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적어도 윤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화법에서 비롯되는 ‘발언 리스크’는 사라졌다.
대통령이 오랜만에 머리를 식히며 향후 메시지와 정국 구상의 밑그림을 그리는 건 당연하다. 대통령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참모들이 극구 부정하는 이유는 뭘까. 그들은 왜 대통령의 숙고와 결단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 휴가 둘째 날인 2일에도 ‘대통령의 휴가’와 관련한 질문에 “전해 듣기로는 댁에서 쉬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이후의 일정은 여러분께 알려드릴 만한 그런 내용은 아직 없다”고 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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