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원화 약세 부추긴다?..그 오해와 진실
[파이낸셜뉴스] 900조를 굴리는 국내 자본시장의 큰 손, 국민연금은 그 역할을 향한 잣대가 늘 엄격하다. 국민의 연금을 투자 원천으로 삼는 기관이여서다. 더욱이 금리 인상에 따른 주식시장 부진이 겹치며 투자자들이 날 서 있는 상황에선 한 걸음 한 걸음이 감시의 대상이 된다. 최근 달러·원 환율 상승이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 유동성 회수에 따라 안전자산인 달러가 강세를 보인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해외투자를 하는 과정에서 단행된 달러 환전이 원화 약세를 부추겼단 지적이 나오며 비판의 대상이 됐다. 환 헤지도 하지 않아 향후 수익률 저조에 대한 비판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 논쟁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짚어본다.
2일 서울외환중개에 따르면 달러·원 환율은 지난 7월 8일부터 27일까지 13거래일 연속 1300원대를 유지했다. 특히 지난달 15일(1326.1원) 기록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4월 29일(1330.7원)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였다. 7월 마지막 이틀 간 숨고르기를 거쳤으나 8월 시작과 함께 1300원대에 재진입 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6월에 이어 7월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p)을 밟으며 안전자산을 향한 수요가 쏠린 영향으로 풀이됐다. 다른 안전자산인 금이나 엔화도 결국 인플레이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으나, 최선호인 달러 값은 빛을 발한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에게 호재라고 보기 힘들다. 강달러는 원화 약세를 뜻한다. 수출 시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수익을 올릴 수 있으나, 수입 기업에는 쥐약이다. 1000원 주고 살 수 있었던 1달러어치 물건을 이제 1300원을 줘야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다은 대신증권 연구원은 “강달러, 선진국 금리 인상, 글로벌 수요 둔화 조짐, 인플레이션 등은 신흥국 경기 모멘텀을 떨어뜨리고 있다“며 ”이 같은 대내외적 펀더멘털 약세가 반영돼 한국 CDS(신용부도스왑) 프리미엄(높을수록 부도위험이 높다는 뜻)은 최근 50bp를 웃돌았고, 국가신인도에 악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나 하반기 원화 약세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고환율은 외국인 자금 이탈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한미 금리 역전이 이뤄진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외국인들은 자국 화폐를 원화로 바꿔 국내 자산에 투자하는데, 원화 가치가 떨어질 경우 환차손을 입기 때문이다.
원달러환율 상승 배경을 놓고 여러가지 이유가 나오고 있지만 국민연금의 해외투자도 영향을 주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민연금이 해외투자 시 쓰이는 달러를 외환시장에서 현물로 매입(환전)하면서 달러 강세에 불을 붙였다는 게 해당 주장의 골자다.
실제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원화 가치 하락의 원인으로 국민연금의 대규모 해외투자를 지목하기도 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올해 들어 지난 5월까지 해외자산(주식, 채권)을 100억달러(약13조2000억원) 규모로 순매수했다. 올해 전체로는 지난해 대비 40억달러 늘어난 320억달러를 환전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해외투자가 원화 약세를 이끌지는 않았다는 입장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원·달러 현물환 일평균 거래 규모에서 연기금 차지 비중은 1%대에 불과해 원화 약세 원인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며 “원화뿐 아니라 해외 주요국 통화 역시 미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민연금에 따르면 지난 6월말 기준 연초 대비 주요 통화의 달러 대비 가치변화율을 따져보면 일본 엔화가 15.2% 하락률을 기록하며 선두에 섰다. 스웨덴 크로나(-11.5%), 영국 파운드(-10.0%) 등이 뒤를 이었고 한국은 -8.4% 수준이었다.
다만 시장에선 연기금 해외투자 영향이 없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국민연금 주장처럼 연기금 해외투자에 따라 일일 환율이 좌지우지 되는 것은 아니나, 해외투자 규모를 늘려 달러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는 이론적·실제적으로 환율을 밀어 올리는 데 일조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 실장은 “외환시장에서 조달한 달러가 해외로 나갔으니 당연히 수급만 놓고 보더라도 원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며 “국민연금의 하루 거래량이 환시장에 단기적 충격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환율을 끌어올리는 복합요인 중 하나라는 사실은 이론적으로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 방식을 놓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환 전략을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가 화두다. 국민연금은 2018년 이후 모든 해외 자산에 대해 ‘환 노출’을 유지하고 있다. 장기적으론 환 헤지를 하지 않는 방식이 우수한 수익률을 가져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환 헤지 전략을 순차적 혹은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단 반론도 있다. 환율이 언제까지고 오르진 않는다는 게 근거다. 특히 최근에는 인플레이션을 잠재우기 위해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역환율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환 변동성이 갈수록 커질 수 있단 전망도 다수 나온다.
올해 부진한 수익률도 문제로 꼽힌다. 지난 5월말 기준 국민연금 누적 수익률은 -4.73%로 공시됐다. 전월 대비 0.94%p 떨어진 수치다. 5월까지 손실 규모는 44조원 이상으로, 지난해 지급 연금 급여 총액(29조1000억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럼에도 국민연금 방침에는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실제 국민연금 관계자는 “환 헤지를 하지 않는 정책은 기금 전체 수익성 및 안정성 제고를 위해 도입한 제도”라며 “올해 환율 상승으로 인한 해외자산의 원화 환산이익은 기금 수익률 방어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고 짚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지난 2010년부터 2021년까지 환 효과를 분석한 결과 환 헤지에 따른 위험감소 및 수익률 개선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며 2030년대 초까지는 현 정책을 유지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환 헤지 비용이 막대한 점도 이 주장에 힘을 싣는다. 해외자산이 300조가 넘는 만큼 이를 전부 선물환거래 등을 통해 환 헤지하는 데는 그만큼 큰 자금이 투입된다. 이 규모 물량을 받아줄 만한 금융사를 찾는 일도 쉽지 않다.
남 실장은 “국민연금이 매 상황마다 환 헤지 포지션을 달리 잡기에는 외환 위험노출액(익스포져) 규모가 매우 크다”며 “더욱이 전술적으로 환 헤지 여력 5%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 안에서 대응력을 키우는 방안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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