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종군기자의 전범이 된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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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1899~1961)가 그리스-터키 전쟁과 스페인 내전, 2차 세계대전 종군기자로 쓴 글에는 전장의 풍경에 필자의 그림자가 과하게 드리워져 있다.
그의 글에도 이념적 지향이, 비평의 의지로 충혈된 대목이 적지 않다.
그는 군 보도자료가 공개한 전황을 전장의 간략한 스케치와 병사 멘트에 버무린 일반적인 기사들과 달리, 평범한 군인의 1인칭 시점을 고수하며 전투 디테일과 전황을 실감나게 전달, 시민과 병사들로부터 큰 환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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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1899~1961)가 그리스-터키 전쟁과 스페인 내전, 2차 세계대전 종군기자로 쓴 글에는 전장의 풍경에 필자의 그림자가 과하게 드리워져 있다. 그는 노벨문학상은 탔지만 퓰리처상은 타지 못했다. 언론인 겸 작가 조지 오웰은 스페인 내전의 전사로 참전했고, ‘카탈로니아 찬가’라는 르포문학의 걸작을 남겼다. 그의 글에도 이념적 지향이, 비평의 의지로 충혈된 대목이 적지 않다.
종군기자의 전범이라면, 2차 세계대전 미국인 종군기자 어니 파일(본명: 어니스트 테일러 파일·Ernest Taylor Pyle·1900.8.3~1945.4.18)을 꼽을 수 있다. 그는 군 보도자료가 공개한 전황을 전장의 간략한 스케치와 병사 멘트에 버무린 일반적인 기사들과 달리, 평범한 군인의 1인칭 시점을 고수하며 전투 디테일과 전황을 실감나게 전달, 시민과 병사들로부터 큰 환대를 받았다.
1919년 인디애나주립대 재학 시절부터 이런저런 매체에 글을 쓴 그는 1923년 지역 언론사에 주급 25달러를 받고 취업했으며, 1935년 전국 뉴스 통신사 ‘스크립스 하워드 신디케이트’ 기자가 됐다. 서민의 관점과 이해에 밀착된 그의 기사와 칼럼은 여행기사와 항공기사 시리즈 등을 통해, 그의 기사를 전재한 수많은 일간지와 주간지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전장에서도 그 관점을 유지했다. 노르망디상륙작전 D데이 상황을 그는 이렇게 전했다. “일 년 중 가장 분주한 날, 뉴욕 중심부 거리를 상상해보라… 그 북새통 같은 장면을 수평선까지, 아니 그 너머로 무한히 확장해보라. 오마하 앞바다에 뜬 함대의 규모와 번다함이 그보다 12배는 더했다.” 그는 1944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는 1945년 4월 태평양전쟁 이오지마전투 직후 일본군 패잔병의 기관총에 숨졌고, 미 육군 제77보병사단은 “여기서 친구를 잃었다”는 비문의 비석을 현장에 세웠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 전쟁에 참전한 미국 전사들의 마음을 그보다 더 잘 대변해준 사람은 없었다”고 애도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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