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 바다, 붉은 꽃잎.. 울진 산불 까만 상처 보듬다 [자박자박 소읍탐방]
“오밤중에 강아지만 안고 (약 10㎞ 떨어진) 도화동산으로 도망갔는데, 40분도 안 돼 불이 거기까지 번지더라고요. 다시 (10㎞가량 떨어진) 삼척 호산에 있는 지인 집으로 피신했는데 거기도 사이렌이 울리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울진 북면 소재지인 부구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올봄 대형 산불이 난 울진은 전쟁터나 마찬가지였다고 회고했다. 3월 4일 발화해 서울시 면적의 3분의 1을 태운 울진·삼척 산불은 213시간, 역대 최장 기록을 세우며 9일 만에 진화됐다. 주택 319채를 비롯해 600여 시설이 불에 탔고, 337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4개월 지났지만 청정 계곡엔 아직도 잿물이...
불이 난 지 4개월 넘게 흘렀지만 화마의 상처는 상상했던 것보다 깊게 남아 있었다. 푸르름이 절정이어야 할 높은 산줄기뿐만 아니라, 마을 뒷산과 해변 언덕에서도 검게 타버린 숲, 검댕으로 변한 나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목전에 둔 지난달 28~29일 울진에서도 산불 피해가 컸던 북면을 다녀왔다. 울진의 다른 지역에 비하면 관광지로 덜 알려졌지만 수려한 산림과 계곡, 작지만 아름다운 해변을 간직한 곳이다.
덕구온천이 대표적이다.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에 특히 좋은 곳이지만, 여름에도 응봉산 자락으로 흘러내리는 계곡이 시원하다. 덕구온천은 국내 유일의 자연 용출 온천이다. 산중턱에서 솟는 43도의 온천수를 파이프를 통해 온천지구 숙소와 스파로 보내 이용한다. 온천수가 솟아나는 원탕까지 계곡을 따라 등산로가 나 있지만 이번 산불로 훼손돼 현재는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덕구온천과 능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울진군에서 운영하는 구수곡자연휴양림이 있다. 20여 채의 숲속 숙소와 야영장을 갖췄다. 구수곡은 용문터골·제단골·점터골·작은구소골 등 아홉 골짜기의 물이 합쳐져 흐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5㎞에 이르는 순한 등산로에 18개 소(沼)와 10개의 폭포가 있어 사시사철 아름다운 계곡이다. 그러나 구수곡의 참모습도 당분간은 보기 힘들게 됐다. 골짜기 일대가 피해를 입어 현재 탐방로를 보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숙박시설은 그대로 운영하고 있지만, 휴양림의 물놀이장도 폐쇄된 상태다. 상류에서 화재 부유물이 계속해서 떠내려오기 때문에 당분간은 계곡물을 가두지 않고 그대로 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구수곡휴양림에서 남쪽으로 조금 더 가면 두천1리 마을에 보부상주막촌이 있다. 높은 산에 가로막힌 첩첩산중에 보부상 쉼터가 생긴 이유가 있다. 이곳은 울진이 자랑하는 금강소나무숲길 1구간(보부상길) 출발지점이다. 옛날 보부상들이 봉화 영주 안동 등 내륙으로 행상을 할 때 넘나들던 고갯길인 십이령(열두고개) 초입에 위치한다.
숲길이 시작되는 곳에 울진내성행상불망비가 세워져 있다. 1890년경 울진에서 봉화 춘양장까지 왕래하던 행상(선질꾼)들이 그들의 안전한 상행위를 도와 준 접장 정한조와 반수(수석) 권재만의 은공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선질꾼들은 울진장 죽변장 흥부장에서 주로 소금과 미역 등 해산물을 사서 쪽지게에 지고 십이령을 넘었고, 봉화와 주변 시장에서 곡식 의류 잡화 등과 물물교환해서 되돌아왔다. 보기 드물게 철로 만든 2기의 불망비는 현재 비각 안에 보호되고 있다. 하얀 모래가 눈부시던 비각 앞 개울은 아직도 잿빛을 띠고 있다.
울진 북면과 금강송면 깊은 산줄기에 개설된 7개 구간 금강소나무숲길은 대부분 산림유전자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따라서 1일 탐방 인원을 제한하고 예약제로 운영한다. 숲길 탐방 정보 사이트인 ‘숲나들e(foresttrip.go.kr)’에서 예약하면 상세한 해설과 함께 울진의 금강소나무숲을 접할 수 있다.
보부상주막촌 마당에 ‘너와집 한 채’ 시비가 세워져 있다. 울진 출신 김명인 시인의 작품이다. “길이 있다면 /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로 시작해, “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 / 따라오는 등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로 마무리된다. 경상북도가 아니라 강원남도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두천리와 울진 북면이 어떤 곳인지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울진군은 1962년 12월 12일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편입됐다.
검게 탄 산자락에 붉은 꽃잎, 쪽빛 바다
울진 가장 북쪽 해안가에 고포마을이 있다. 산골짜기 따라 난 좁은 골목길을 중심으로 마을이 정확하게 강원도와 경상북도로 나뉜다. 남쪽은 울진 북면 나곡리, 북쪽은 삼척 원덕읍 월촌리다.
마을 중간에 오래된 향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조선 선조 12년(1592) 박씨 부부가 마을을 개척했다는 유래가 적혀 있다. 행정구역상 2개 도에 걸쳐있지만 본래부터 한 마을이라는 의미다. 삼척 고포마을 주택은 부드러운 곡선 담장에 하얀 페인트로 장식돼 있고, 울진 고포마을 집들은 미역과 대게 문양의 철재 울타리로 둘러져 있다.
울진 삼척을 가리지 않고 공통점이 있다. 집집마다 ‘돌미역 팝니다’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고포 돌미역은 오래전부터 임금님에게 진상할 정도로 유명하다. 앞바다가 맑고 수심이 얕아 미역이 자랄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덕이다.
마을 앞에 초등학교 운동장만 한 작은 해변이 있다. 고운 모래사장은 바다에 가까울수록 알갱이가 굵어진다. 동해에서 보기 드문 조약돌 해변이다. 콩만 한 돌들이 파도에 쓸릴 때마다 햇살에 반짝거린다. 해변이 워낙 작아 한여름에도 피서객이 거의 없는 편이다. 마을에서 민박하는 여행객이 전용 해변으로 이용하는 수준이다.
해변을 제외하면 주변 해안가에는 여전히 철재 담장이 높이 세워져 있고, 그 위에 날카로운 철망이 올려져 있다. 고포마을은 1968년 무장공비가 상륙했던 곳이다. 이른바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다. 마을 뒤편 도로변 삼척과의 경계지점에 당시의 상황을 알리는 ‘자유수호의 탑’이 세워져 있다. 2개월에 걸친 소탕작전과 게릴라전으로 120명의 무장공비 중 7명이 생포되고 113명이 사살됐다. 우리 측도 민간인을 포함해 40명 이상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다.
바로 옆에는 ‘도화동산’이라는 공원이 조성돼 있다. 도화는 복숭아꽃이 아니라 '경상북도의 상징 꽃(道花)'이라는 의미다. 도로변 봉긋한 언덕에 배롱나무를 빼곡하게 심었다. 배롱나무는 일명 백일홍 나무라고도 부른다. 봄 늦게까지 죽은 듯이 매끈하다가 뒤늦게 잎이 돋고 꽃이 피어 100일 가까이 붉은 꽃술을 달고 있는 나무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에 화사한 색상이 단연 눈길을 끄는 꽃이다. 반질반질한 가지에 고슬고슬하게 풀어진 자태가 곱기도 하다.
도화동산 역시 22년 전 울진 산불 피해의 상흔이다. 공원 입구 비석에는 ‘2000년 4월 12일 강원도에서 울진군으로 (산불이) 넘어 오자 민관군이 합심하여 22시간 만인 4월 13일 11시에 진화하고, 피해지인 이곳에 도화동산을 조성하다’라고 적혀 있다. 이처럼 아픈 사연을 간직한 도화동산은 올해 다시 한번 화마에 휩싸였다. 불에 탄 나무들이 주변 산자락에 거무튀튀하게 그대로 말라있고, 공원의 목재 계단도 일부 훼손됐다. 최악의 산불이라는 달갑지 않은 기록을 22년 만에 또 갱신했으니 주민들의 심정이 오죽할까. 다행히 화마를 피한 배롱나무는 붉은 꽃잎으로 숯 검댕이된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다.
도화동산에서 다시 바닷가로 내려오면 나곡해변이 있다. 해안선 길이가 250m에 불과한 작은 해변이다. 이 마을 뒷산에도 산불의 생채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데, 바다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에메랄드 빛이 눈부시다. 절정의 여름휴가가 시작된 지난달 29일 오후, 승객을 태운 레저용 보트가 쪽빛 바다에 8자 포말을 그리며 질주하고, 가족 여행객이 바닷물에 몸을 담근 채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해변의 규모를 감안해도 한산한 편이었다.
인근 나곡바다낚시공원 옆에는 예쁜 집이 한 채 있었다. 2016년 방영된 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 세트로 지은 집이다. 넓고 아늑한 창으로 들어오는 바다 전망이 뛰어나 울진의 사진 명소로 뜨던 참이었는데, 이번 산불로 뼈대만 남기고 전소되고 말았다.
산불이 발생할 무렵 덕구온천 부근에 황토펜션을 개관한 주민은 장사도 못해보고 다 태우는 게 아닌가 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했다. “밤이 되면 불이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하면서 바람 방향이 보여요. 뭐가 터지는지 펑펑 소리까지 들려 가슴을 조여오는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아니 그래서 오히려 울진으로 많이 여행을 와 줄 것을 당부했다. “미안해서 그런 곳에 어떻게 놀러 가나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울진 여행이 속까지 새카맣게 타버린 주민들을 위로하는 방법이다.
울진=글·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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