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火傷으로 절망한 순간 코끝에 와닿은 향.. 그 위로를 느끼길"
시집 ‘너의 초록으로, 다시’(더블북)를 감싼 래핑(포장)을 뜯으면 은은한 향이 느껴진다. 풀, 나무 비슷한 냄새, 꽃내음…. 향기 작가 한서형(46)이 천연 에센셜 오일 9가지를 섞어 만든 향이다. 책 맨 앞의 노란색 면지에 입힌 향이 책장을 넘기는 내내 코끝을 찌른다. 한서형과 출판사가 나태주의 시 중에서 200여 편을 골라 싣고, 그에 맞는 향기를 개발해 담은 시집이다. 향기를 접목해 시를 느낄 수 있게 만든 새로운 시도다.
작년 5월 나태주 시인과 한서형의 첫 만남에서 두 사람의 바람이 맞닿았다. 나태주가 “오랫동안 향기나는 시집을 내는 게 꿈이었다”라고 말한 것이 발단이 됐다. 한서형도 “향기를 담은 책을 언젠가 내고 싶은 꿈이 있었고, 시인과 뜻이 맞아 작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한서형은 국내 1호 향기 작가다. 천연 재료에서 직접 향기 원료를 추출하고, 공예품이나 그림 등 예술의 형태와 연결한다. 향기는 식물에서 추출한다. 이번엔 뿌리에서 추출한 안젤리카, 열매 껍질에서 나오는 베르가모트, 나뭇진에서 추출한 갈바넘, 페루 발삼 등의 향기를 담았다.
한서형은 7년 전 ‘화상(火傷)’을 입었다. 방향제를 만드는 작업을 하던 중 녹은 밀랍이 쏟아져, 양 팔과 다리에 3도 화상을 입고 손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당시 병실에서 너무 아파 잠 못 들 때, ‘죽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어요. 그때 문득 향이 코끝에 와 닿으면서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받았죠.” 상처 부위 감염 우려로 장갑 등을 낀 채로 지내야 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는 “아팠던 당시 향기가 말없이 제 손을 잡아줬던 것처럼 이 향기가 ‘언제 펼쳐도 내 마음 알아줄 것 같은’ 친구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 책에 실린 향기들은 작년 중순 치료를 어느 정도 마치고 만들어낸 첫 향기다. 반년 넘게 50~60여 개의 천연 에센셜 오일 중 9개를 고르고, 종이에 테스트하는 과정을 거쳤다. 향기와 함께 ‘풀꽃’을 비롯한 나태주의 시 중 ‘희망과 위로’라는 주제에 맞는 것들을 골라 실었다. 하나의 향으로만 느껴지지 않게 하는 것도 작가의 의도. 그는 “시가 많은 의미를 함축해서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되듯, 예컨대 ‘풀꽃’이라는 작품을 떠올리며 만든 향기라도 독자들마다 상황에 비춰 다르게 느껴질 것”이라고 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향기를 책에 담는 건 제작 비용 상승 등 부담이 크기 때문에 상당히 드문 사례”라며 “시각, 촉각뿐 아니라 후각으로도 책을 즐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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