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품격에 관하여

국제신문 2022. 8. 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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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이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인생을 통틀어 가장 궁극적인 물음이다. 시대를 초월하여 지성들은 끊임없이 여기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고, 문학과 예술은 설득력 있는 재현방법을 강구하고 있지만, 삶의 목적이 외적 성공이 아니라 겸손과 절제를 바탕으로 한 내적 성숙에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람은 스스로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식하고 다양한 미덕으로 내면을 채우고 품격을 갖추어 더 안정되고 격이 있는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사람의 품성과 인격을 뜻하는 ‘품격(diginity)’은 지식과 사회경제적 지위보다는 절제 포용 배려 등을 갖춘 도덕적 품성의 소유에 더 밀접하다. 영국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에 의하면 인간은 인간고유의 ‘품위감(a sense of dignity)’이 있기 때문에 결코 단순히 쾌락에 의해서만 지배되지 않으며, 품격을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는 자기발전과 타인에 대한 배려이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한 인간으로서 작가의 영혼이 스며든 미술작품도 품격을 지닌다. 미술에서의 품격은 작품의 진정한 가치나 그 작품이 지니는 위엄을 의미한다. 작가는 창작한 작품에 품격을 부여하고 관객은 그 품격을 공유한다. 인간의 품격과 마찬가지로 미술의 품격도 세상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에서 나온다. 비 온 후 인왕산 풍경을 그린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 ‘인왕제색도’는 자연과의 실제적인 교감으로 이미지를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작가의 정신까지 제대로 담아낸 ‘실경산수’의 품격을 보여 주고 있다. 죽마고우인 시인 이병연의 병세가 깊어지자 그의 쾌유를 빌며 그린 이 그림은 그의 절실함을 담아 그림의 품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세계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는 천재성으로 그가 창작한 모든 예술작품을 황금으로 만들었지만 자신의 천재성과 부에 매몰되어 매너리즘에 빠진 바람에 인간의 본성과 자연의 섭리를 간과한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유지 못한 삶으로 안타까움을 준다.

미술작품은 형태 색채 재료 기술 등에 의하여 만들어진 작가의 ‘정신적 철학적’ 산물이다. 따라서 작품을 구성하는 색과 이미지 등 물리적인 요소가 주는 감각적인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이를 매개로 관람자의 영혼에 깊은 감동을 준다. 감상자의 자유롭고 섬세한 영혼은 미술작품과 교감하여 작품이 드러내는 품격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여 인간으로서 더 성숙한 삶을 살아가게 한다.

우리가 바쁜 일상에서 시간을 내어 미술작품을 굳이 감상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적 성찰을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작업하는 작가는 없다. 작가들의 삶에 대한 치열하고 지난한 성찰과정이 결과적으로 작품에 고스란히 남았을 뿐이다. 작가들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올바른 삶의 척도가 되는 배려와 정의 등 다양한 미덕을 무기 삼아 침묵의 전투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인간과 삶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치열한 현장만이 존재할 뿐이다. 자신의 존재에 여전히 물음을 던지고 탐구하는 품격을 갖춘 작가들은 말이 없다. 단지 그들의 작품 앞에서 또 다시 침묵하는 관람자를 맞이할 뿐이다.


일생 영원을 향한 인간의 본성을 화폭에 풀어낸 마크 로스코는 자신이 경험한 고뇌 우울 비극 운명 사색 등 모든 감정을 색면 추상회화로 표현했다. 커다란 캔버스에 넓게 채운 두세 개의 면들과 단순하면서도 거침없는 단색조의 색채는 심리적 감응을 불러일으켜 전율하리만치 숭고한 슬픔과 기쁨의 감정을 불러낸다. 작품 앞에서 관람자가 그의 감정을 공유하는 순간 자신의 그림은 살아 숨쉬기 시작한다고 말한 그는 자신의 그림을 매개로 관람자가 무언가를 체험하고 공감할 수 있기를 바라며, 더더욱 자신의 그림 세계에 빠져들었다. 4년 전 스위스 취리히 ‘쿤스트하우스’에서 만난 로스코의 작품 ‘White, Blacks, Grays on Maroon’(1963) 앞에서 작가의 삶과 작품의 품격에 압도된 나머지 너무나 초라하고 무한히 겸손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모든 사람이 나의 경험처럼 제2, 제3의 마크 로스코를 만나 그들의 품격을 만들어 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배미애 갤러리이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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