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105] 제주 구좌 돗죽

김준 전남대 학술연구교수 2022. 8. 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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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돗죽/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제주의 여름은 해녀의 계절이다. 이 시기 소라 채취가 금지되지만, 제주에서 ‘구살’로 불리는 성게는 제철이다. 돌담을 쌓아 만든 불턱 너머 푸른 바다에 해녀의 테왁들이 연꽃처럼 활짝 피었다. 테왁은 제주 방언으로 해녀가 물질을 할 때, 가슴에 받쳐 몸이 뜨게 하는 공 모양의 기구를 뜻한다. 김녕리, 월정리, 행원리, 평대리, 세화리 등 제주 구좌읍 해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구좌읍은 해녀 수도 많고 활동도 활발하다. 일제강점기 해녀 항일운동의 중심지이며, 해녀의 일상생활과 제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해녀박물관도 있다. 이곳은 예로부터 흑돼지를 제물로 잡아 풍어와 안녕을 기원하는 ‘돗제’를 지냈다. 돗제는 돼지를 뜻하는 제주어 ‘돗(豚)’과 제사가 합쳐진 말이다. 제주에서 흑돼지는 특별한 가축이다. 신에게 제물로 올렸다. 이 지역 마을 신의 내력을 풀어낸 ‘본풀이’에는 신들이 돼지고기를 요구하기도 하고, 임산부가 영양 보충으로 돼지고기를 찾았다는 내용이 있다.

돗죽은 흑돼지를 삶은 후 쌀과 모자반을 넣고 끓여 신에게 올리고, 주민들과 나누어 먹었던 음식이다. 몸죽이라고도 한다. 돗죽을 끓일 때 넣은 모자반은 돼지고기와 천생연분이다. 제주말로 모자반은 몸, 몰, 몰망이라 한다. 미역과 톳은 팔아서 돈을 벌게 하지만, 모자반은 밭에 거름으로 쓰거나 메밀가루를 넣어 국을 끓여 허기진 배를 채웠다.

흑돼지는 농사에 필요한 거름을 만들고, 음식물이나 변을 처리하는 역할도 했다. 제주의 생태 환경 측면에서는 꼭 필요한 가축이었다. 하지만 돗제를 미신이라 배척하고, 새마을운동이 본격화하면서 ‘돗통시’(돼지우리의 제주 방언)도 사라져갔다. 돗죽의 맛도 기억도 잊혔다. 다행스럽게 구좌읍 평대마을에는 돗죽을 복원한 식당이 있다. 식당 주인은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돗제를 지냈던 제당도 복원했다. 돗제를 지내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음식을 나누었다. 부조는 못해도 음식은 먹어주는 것이 제주 전통이었다. 돼지 한 마리로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기는 어려웠지만, 돗죽은 공평하게 먹을 수 있는 공동체 음식이었다. 어린 시절 기억과 아련한 입맛에 의지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복원했다고 한다. 돼지고기와 숙성한 모자반을 이용해 돗죽을 만든다. 그래서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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