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참극으로 끝난 맞선..'라이온킹 로맨스' 따위는 현실에 없다
종 번식 위한 인위적 만남서 발생한 비극
라이온킹 같은 '달달한 장면'없고 실제로는 살벌하고 격렬해
만화영화 ‘라이온킹’에서 어른이 돼서 우연하게 만난 주인공 숫사자 심바와 암사자 날라의 오아시스 데이트장면은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막론하고, 성인영화와 청소년관람불가를 통틀어서 가장 진한 러브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암수가 서로를 진득하게 바라보는 눈빛부터, 혓바닥으로 얼굴을 할짝이는 수위 높은 묘사, 어린시절 소꿉놀이하듯 몸을 부둥키다가 강렬한 느낌에 파르르 떨려하며 결국은 본능에 몸을 맡기는 뒹굴며 ‘안봐도 뻔한’ 다음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 세부적인 내러티브까지. 이만큼 농염한 성애장면도 다시 나오긴 어려울 겁니다. 이렇게 사바나에서 수많은 암수사자들이 야음을 틈타 하룻밤에도 수십만채의 만리장성을 쌓으며 숱하게 2세를 생산할 것이라 상상하기 쉽지요.
현실에서도 당당한 사바나의 제왕인 사자들은 이렇게 라이온킹 장면처럼 낭만적이면서도 진득하게 짝을 지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을 뿐더러, 더욱 비참하고 잔혹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 최근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벌어졌습니다. 동물원과 지역사회의 교감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의 동물원에서는 화제의 출산 같은 기쁜 소식 뿐 아니라 궃은 소식들도 상세하게 전하곤 합니다. 그 중에는 늙거나 병들어 세상을 떠나는 소식뿐 아니라 돌발적인 사고로 창졸간에 목숨을 잃은 동물에 대한 이야기도 종종 공개되는데요. 워싱턴 DC 스미스소니언 동물원에서는 여우가 홍학우리를 파고들어가 피의 살육전을 벌인 소식이 있었죠. 이번 스토리의 주인공은 새로운 반려자와의 허니문을 꿈꾸며 맞선 자리에 나갔다 그만 불귀의 객이 되고 만 불운의 ‘라이온퀸’입니다. 사건은 18일(현지 시각) 일어났어요. 올해 스물두살로 사자치곤 중년의 나이지만, 여전히 건강미를 과시하던 암사자 ‘아킬리’가 새신랑을 맞는 자리였습니다.
2005년 콜로라도주 콜로라도스프링스의 샤이엔 마운틴 동물원에서 태어난 그녀는 사람으로 치면 꽃다운 이팔청춘의 나이이던 두 살에 이 동물원에 왔습니다. 신랑은 갈기가 성성하게 휘날리는 숫사자 ‘크완자’였어요. 한 살 위 연상의 ‘오빠’인 크완자는 텍사스 와코에 있는 캐머런 파크 동물원에서 태어나 역시 두 살에 먼저 이곳, 앨라배마 버밍엄 동물원에 자리잡았습니다. 이제 막 어른의 티를 갖추기 시작한 선남선녀 커플의 러브스토리는 동물원과 지역사회의 관심사였습니다. 둘 사이의 만남은 어느정도 밀당이야 있었겠지만, 나름 순탄했던 것으로 보여요. 서로를 파트너로 인정한 커플은 2011년 다섯마리의 자녀를 생산하며 평온한 사자가족의 행복한 일상을 과시합니다. 그 행복은 그러나 10년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집고양이를 비롯해서 고양잇과에서 자주 발현하는 악성 종양에 걸렸던 크완자는 동물원 측의 갖은 처방에도 큰 차도를 보이지 못하고 결국 2021년 12월 눈을 감았습니다.
반려자를 보내고 혼자가 된 아킬리는 그러나 새로운 삶을 찾게 됩니다. 아주 청청한 나이는 아니지만, 신체적으로도 건강했던 이 암사자에게 ‘종 보전’의 특별 임무가 부여됐어요. 최대한 유전적 다양성을 추구하며 많은 사자를 번식시키는 종 생존 프로젝트에 따라 아킬리는 두번째 배우자를 소개받습니다. 놈이 바로 조시라는 이름의 숫사자였습니다. 크완자와도 금슬 좋은 부부애를 과시하며 건강한 새끼를 출산했던 것처럼 사자도 본능을 즐기고 동물원으로서도 종 보전이라는 본연에 충실하게 되는 ‘일석이조’를 기대하며, 지난 18일 암사자 아킬리와 수사자 조시의 첫 대면식이 있었습니다. 맞선, 또는 소개팅에 해당하는 자리였죠. 아마도 라이온킹 심바와 날라처럼 상대방의 매력에 한껏 달아오르는 본능으로 핑크빛 향기가 솔솔 풍길 것으로 동물원 사람들은 기대했을 것입니다. 이 기대가 절망과 비탄으로 바뀌는데는 불과 몇 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심바와 날라의 만남일줄 알았던 두 사자의 회합은 알고보니 스카와 심바의 대결이었습니다. 순식간에 조시는 아킬리를 물어뜯었습니다. 화들짝 놀란 동물원 스태프들이 황급히 개입해서 둘은 떼어놓고, 아킬리를 응급실로 이송했습니다. 그러나 응급조치에도 불구하고 몸 곳곳은 깊은 상처로 패어있었습니다. 결국 새신랑을 맞으러 떠난 길은 황천길이 되고 말았습니다. 누구보다도 충격받은 사람들은 동물원 스태프들입이다. 이 비극적인 소식을 전하면서 “야생동물은 언제 돌발적인 행동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에 이에 대비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위험한 일”이라면서 사태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점이 있었음을 강변했습니다. 물론 충분히 이해할만한 상황이고, 이들을 비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종을 건강하게 번성시켜서 멸종위기에서 한발짝 더 멀리 떨어지겠다는 인간의 의지이자 동물원의 소명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번식 기능이 뛰어난 건강한 암사자를 사지로 내몰았다는 트라우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사자 뿐 아니라 많은 동물원들이 근친번식을 막고 유전적 다양성과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동물 교류를 실시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존의 혈육과 헤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파트너를 반강제적으로 맞이하게 되기도 하지요. 그런 과정에서 종종 이 같은 비극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야생에서 천적에 노출된 근본적 위험을 면제받는 대신 인간이 판단하고 마음먹은데 따라 살아가야 하는 숙명인 셈이지요. 모쪼록 황망하게 목숨을 잃은 암사자의 안식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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