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82] 시심(詩心)을 가진 수학자

차현진 한국은행 자문역 2022. 8. 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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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필즈상을 받은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의 허준이 교수는 한국에서 자랐다. 그래서 그가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큰 상을 받은 것이 우리에게도 기쁨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한때 시인이 되기를 꿈꿨다는 것이다. 자랄 때는 기형도의 시집에 심취했고, 지금은 아일랜드 시인 데이비드 화이트의 작품을 사랑한다. 오직 종이와 펜만 의존해서 상상을 펼친다는 점에서 수학과 시는 통한다는 것이 허 교수의 생각이다.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수학자가 또 있다. 19세기 러시아 수학자 소피야 코발렙스카야는 “시인의 영혼이 없으면 수학자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녀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학업을 위해서 위장 결혼까지 감행하며 독일로 탈출했다. 그러나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대학교가 입학을 거부하는 바람에 여기저기 떠돌면서 강의실 밖에서 수업을 엿듣거나 따로 개인 교습을 받았다.

천신만고 끝에 유럽 최초의 여성 수학 박사가 되었다. 하지만 가르칠 곳이 없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무보수 시간강사직마저 거절당했다. 작은 가게에서 허드렛일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생활고에 쫓기던 그녀가 6년 만에 다시 펜을 잡고 논문을 썼다. 스톡홀름대학교가 그 논문의 시적(詩的)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교수로 초빙하면서 그녀에게 새 인생이 열렸다. 프랑스에서 발표한 논문은 너무나 경이로워서 프랑스 학술원이 상금을 올려줄 정도였다. 그러나 그 영광은 잠깐이었다. 남편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녀는 급성폐렴에 걸려 41세로 요절했다. 열두 살짜리 딸을 남기고.

그녀는 편미분방정식의 세계를 열었다. 그녀가 남긴 ‘코시-코발렙스카야 정리’는 시처럼 아름답고, 시처럼 널리 읽힌다. 물리학, 공학을 넘어 경제학에서도 쓰인다. 파생 금융 거래의 기초가 되는 블랙-숄스 방정식도 거기서 출발한다. 시심을 가진 허준이 교수는 더 위대한 업적, 아니 시를 오래오래 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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