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의 '강제동원 피해자 패싱'에..전범기업 배상 민관협의 파국

정인환 2022. 8. 2. 21:3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외교부가 피해자 쪽과 사전 협의도 없이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 마련을 위해 지난달 출범한 민관협의회의 '반쪽' 운영이 불가피해졌다.

2일 강제동원 피해자 및 지원단체 쪽 설명을 종합하면, 외교부는 지난달 26일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노역 피해자 양금덕·김성주 할머니에 대한 상표권·특허권 특별현금화(매각) 명령 사건을 심리 중인 대법원 민사2부와 3부에 해법 마련을 위해 다각도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의견서를 각각 제출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외교부, 대법에 "외교 노력" 의견서 제출뒤 피해자 사후통보
사실상 현금화 집행 유보 요청..피해자들 민관협의 불참 가닥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가 2일 오후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 동원 피해배상 강제집행 방해를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교부가 피해자 쪽과 사전 협의도 없이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법 마련을 위해 지난달 출범한 민관협의회의 ‘반쪽’ 운영이 불가피해졌다. 당장 원고인단이 ‘소송 방해 행위’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선데다, 그간 민관협의회에 참석해온 지원단체 쪽도 불참을 선언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탓이다. 섣불리 성과에 집착해 정부가 또다시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을 저버리는 우를 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강제동원 피해자 및 지원단체 쪽 설명을 종합하면, 외교부는 지난달 26일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노역 피해자 양금덕·김성주 할머니에 대한 상표권·특허권 특별현금화(매각) 명령 사건을 심리 중인 대법원 민사2부와 3부에 해법 마련을 위해 다각도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의견서를 각각 제출했다. 사실상 최종 판단을 미뤄달라는 얘기다. 피해자 쪽엔 아무런 사전 설명이 없었다. 이어 외교부 당국자가 지난달 28일 광주를 방문해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쪽과 피해자 소송 대리인단을 만나, 의견서 제출 사실을 밝혔다.

피해자 지원단체 관계자는 “외교부 쪽은 이날 ‘(2018년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일본 정부가 2019년 수출규제 조치를 했는데, 이번에 현금화가 이뤄지면 또 보복 조치를 할 것 같다’며 설득했다”고 전했다. 이에 소송 대리인단은 “이번 일은 소송 방해에 준하는 엄중한 문제”라며 강력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가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한 근거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공익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선 민사사건에도 의견을 낼 수 있도록 규정한 민사소송규칙 제134조의2다. 해당 조항은 박근혜 정부 때 사법농단 논란의 핵심이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주도로 만든 것으로, 규칙 개정 당시부터 ‘강제동원 맞춤형’이란 비판이 나온 바 있다.

실제 외교부는 2016년 11월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과 관련해 “(가해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면) 한-일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것” 등의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한 바 있다.

앞서 피해자 대리인단 쪽은 지난달 4일 민관협의회 1차 회의에 앞서 일본 가해기업과 피해자 간 직접 협상을 성사시키기 위한 외교적 보호 노력을 다한다면, 협상 기간 중 현금화 절차를 늦출 수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 사실상 외교부에 ‘퇴로’를 열어준 셈이다. 그럼에도 외교부가 협의회 차원의 사전 논의도 없이 불쑥 의견서를 제출한 것은 대법원 판결을 늦추는 것이 현금화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판단한 탓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쪽 입장을 배제하면서 ‘중재자’로서의 신뢰성을 스스로 갉아먹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관협의회는 두차례 회의 만에 사실상 파국을 맞았다. 그간 협의회에 참석해온 피해자 지원단체 관계자는 “사법농단 사태 때 낸 의견서에 대해서도 끝까지 반성하지 않았던 외교부가 약 6년 만에 똑같은 우를 범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