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美 서열 3위 펠로시 대만 방문에 왜 이토록 예민한가

베이징=김남희 특파원 2022. 8. 2.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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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왼쪽) 미국 하원의장이 2022년 8월 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의회에서 아자르 아지잔 하룬 말레이시아 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보부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2일 밤 대만에 도착할 것이란 관측 속에, 중국은 발작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항공기 위치 추적 사이트 플라이트레이더24를 인용, 펠로시 의장이 말레이시아를 방문할 때 탔던 미 공군기가 이날 오후 3시 42분(현지 시각)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를 떠났다고 보도했다. 펠로시 의장이 이 공군기에 탔는지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이 공군기가 이날 밤 10시쯤 대만 타이베이 쑹산공항에 도착할 것이란 대만 언론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펠로시 의장은 3일 오전 대만 독립파인 차이잉원 대만 총통을 만나고 입법원(국회)을 방문할 것으로 전해졌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지난달 31일 공개된 동아시아 순방(싱가포르·말레이시아·한국·일본) 일정엔 포함되지 않았다. 펠로시 의장은 최근 몇 주간 이어진 대만 방문설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1일 첫 방문지인 싱가포르에 도착했다. 펠로시 의장이 중국의 군사 행동 위협과 경고를 무시하고 말레이시아와 한국 방문 사이에 대만을 들를 것이란 관측이 파다하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행이 임박했다는 관측 속에, 중국 군은 군사 대응 경고 수위를 높였다. 중국 인민해방군 동부전구는 중국 건군 95주년인 1일 밤 늦게 소셜미디어에 “만일의 사태에 완전히 준비가 돼 있으며, 명령이 내려지면 나가 싸우고, 침범하는 모든 적을 묻어버리고, 승리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올렸다. 지난달 30일 대만을 마주한 중국 동부 푸젠성 연안 섬에서 실탄 사격 훈련을 한 데 이어, 언제든 전투 태세가 돼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2일 오전엔 인민해방군 군용기가 대만해협 중간선에 근접 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군함도 1일부터 대만해협 중간선 주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간선은 대만해협 중간 지점의 공중 선으로, 이 선이 수십 년간 양측의 비공식 경계선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중국은 최근 몇 년간 대만해협에서 빈번하게 무력 시위를 벌이고 대만에 대한 주권을 강조하면서 2020년 9월 “소위 대만해협 중간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중국 군은 2일 자정부터 남중국해와 보하이해 일부 지역을 선박 통행 금지 구역으로 설정하고 군사 훈련에 들어갔다.

중국 외교부도 연일 미국을 향해 결연한 대응과 강력한 반제 조치를 취할 것이란 경고 메시지를 내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2일 왕이 외교부장(장관)이 ‘미국이 대만 문제에 있어 신의를 저버렸다’고 말한 내용의 발표문을 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여부를 두고 중국이 대변인이 아닌 부처 수장급 입장을 낸 것은 처음이다. 중국 외교부 발표문에 따르면, 왕 부장은 “‘하나의 중국’ 원칙은 중국 핵심 이익 중의 핵심이며, 넘어선 안 되는 레드라인이자 마지노선”이라며 “미국이 대만 문제에 있어 신의를 저버리고 멸시하는 것은 다만 미국의 국가 신용과 명예를 더 파탄나게 할 뿐”이라고 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펠로시 의장이 대만을 방문하면 미국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재차 경고했다. 미국이 중국의 주권 안보 이익을 훼손한 책임을 져야할 것이란 엄포다.

펠로시 의장이 순방을 시작한 전날에도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미 관계 파괴를 경고했다. 자오 대변인은 당시 브리핑에서 “중국은 최근 이미 여러 차례 미국 측에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반대한다는 엄중한 관심과 엄정 입장을 표명했으며, 엄중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며 “시 주석이 최근 바이든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불장난을 하면, 반드시 스스로 불 타 죽는다’고 말했듯, 중국 측이 전달한 강렬하고 분명한 메시지를 미국이 이미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은 중국 내정에 대한 거친 간섭이며, 중국 주권과 영토 완전성을 엄중히 훼손하고, 중·미 관계를 엄중히 파괴할 것”이라고 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은 1991년 중국 베이징 방문 중 동료 의원 두 명과 톈안먼광장을 기습 방문해 1989년 톈안먼광장 민주화 시위 당시 숨진 중국인을 추모하며 ‘중국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라고 적은 플래카드를 펼쳐 보였다. /펠로시 트위터

중국은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여부에 유독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펠로시 의장은 미국에서 대통령·부통령 다음 서열 3위 공직자다. 대통령 유고 시 승계 서열에선 부통령 바로 다음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등 이전에 대만을 방문했던 미국 정치인들과는 위상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미국 현직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은 빌 클린턴(민주당) 정부 때인 1997년 뉴트 깅리치(공화당) 당시 하원의장 방문 후 25년 만이다. 더구나 지금은 바이든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이 같은 당(민주당) 소속이기 때문에 중국이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펠로시 의장은 정치 활동 초기부터 중국의 인권 탄압 행위를 비판해 중국 정부를 자극했다. 펠로시 의장이 1987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하원의원으로 정치에 입문하고 나서 2년 후인 1989년 중국 베이징 톈안먼(천안문)광장에서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중국공산당은 민주화 시위를 유혈 진압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91년 펠로시 의장은 베이징 방문 중 다른 의원 두 명과 기습적으로 톈안먼광장을 찾아 중국어와 영어로 ‘중국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라고 적은 플래카드를 펼쳐 보였다.

대중 강경 태도는 펠로시 의장이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는 기반이 됐다. 펠로시 의장은 중국이 민감하게 여기는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건드렸다. 2007~2008년엔 티베트(시짱자치구)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만났고, 2017년 홍콩에서 민주화 시위가 처음 열렸을 때부터 민주화 운동가들을 지지했다. 올해 2월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땐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위구르족(무슬림 소수 민족) 인권 탄압을 이유로 바이든 대통령에게 정부 대표단을 보내지 않는 외교 보이콧을 요구하기도 했다. 올해 82세인 펠로시 의장은 오는 11월 치러지는 미국 중간 선거에서 하원의장직에서 물러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펠로시 의장이 30년이 넘는 정치 행보의 마무리로 대만 방문을 강행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시 주석이 11월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3연임 확정을 앞둔 것도 중국이 펠로시의 대만 방문을 극렬 저지하려 하는 이유로 꼽힌다. 최고 지도자로서 국가 영토를 수호하는 강인한 이미지를 더 공고히 하고 내부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가 읽힌다. 시 주석은 지난달 29일 바이든 대통령과의 통화 때도 대만 문제를 언급했다. 중국 외교부 발표문에 따르면, 시 주석은 “중국의 국가 주권과 영토 완전성을 결연히 수호하는 것은 14억여 중국 인민의 확고한 의지”라며 “불장난을 하면 반드시 스스로 불 타 죽는다(玩火自焚 완화자분)”고 했다. 시 주석은 대만 독립 시도를 부숴버리겠다고 수차례 경고했다. 2019년 1월엔 대만 통일을 위해 무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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