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인숙 "지난 대선 이대남 호소 이유 무엇인지 답 찾지 못해"
민주당 반성과 혁신 토론회, 대선 당시 성평등 전략 부재 비판…"여성위원장, 주요 회의 참여 못해"
박지현 대선땐 영입 늦었고, 지선땐 리더십 어울리지 않아…"2030 여성지지 대선때 형성, 지선에서 해체"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지난 정권은 젠더 갈등이 불거질 때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한다. 누구 편을 드는 게 아니라 갈등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비전을 가지고 답변을 해야 할 문제다. 50대 이상 결정자들은 관심없는 이슈로 보거나 남성 일부 목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답은 하지 않는 현실을 반복해왔다. (대선 때) 2030 여성들이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했는데 이를 어떻게 감싸안고 갈 것인가 조직적인 고민이 있어야 한다. 성평등이 미래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득하는 과정을 당 안에서 설계해야 한다.”
권인숙 민주당 의원이 2일 국회에서 개최한 '민주당 반성과 혁신 연속토론회'에서 한 발언이다. 권 의원은 이날 발제에서 지난 정부가 성차별 이슈에 철학을 가지고 대응하지 않은 점과 이러한 전략부재가 대선에서도 이어진 점, 민주당 내 여성혐오 분위기와 박지현 전 공동선대위원장 영입 등에 대한 평가와 향후 민주당의 과제 등을 내놨다.
여성을 지운 대선, 여성을 지운 민주당
권 의원은 이번 대선을 '여성을 지웠던 대선'으로 요약했다. 이러한 평가는 국민의힘이 여성가족부 폐지 등을 주장하며 여성혐오 분위기를 조성하며 이대남(20대 남성) 지지를 끌어내려 한 전략 때문에 많이 나왔던 평가다.
그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젠더갈등을 어떻게 정치에 악용했는지 (보여준) 사례가 됐다”며 “그런데 (민주당은) 성평등 가치나 젠더갈등 극복 전략이 실종했고 가치와 비전이 없었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말했다.
오히려 민주당도 여성을 지우는데 한몫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권 의원에 따르면 민주당 대선 선대위에서 여성들을 대표하지 않고 주요 의사결정에서 배제했다. 지난해 12월 말까지 민주당 여성위원장이 어떤 회의단에도 들어가지 못했고, 여성위원회를 여성본부로 격상할 것을 반복 주장했지만 역시 거절당했다고 전했다. 후보 직속 성평등비전위원회 설치도 시도했지만 무산됐다고 했다.
권 의원은 “무산될 때 주요 결정자들에게 '성평등에 대해 거론하고 싶지 않다'거나 '성평등이 거론될수록 이대남이나 민주당 지지자들 반응이 좋지 않다'는 식의 반응, 정확하게 제시되지 않은 근거 속에서 불편함을 거듭 확인했다”고 말했다.
피할 수 없는 젠더, 전략 없는 민주당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해 11월 남성들이 많이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거나 홍준표 전 후보의 지지자가 올린 글(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적 내용의 글)을 이 후보의 SNS에 공유하는 등 이른바 '이대남'에게 어필하려 했다.
또한 이 후보는 지난해 12월 유튜브 채널 '씨리얼' 출연을 약속했다가 당내 반발 등을 이유로 출연을 취소했다. '씨리얼'이 '페미니즘 편향 방송'이라는 비판이었다.
안희정·오거돈·박원순 등 민주당 출신 광역단체장의 성폭력 사건 이후 적극적으로 젠더 이슈에 입장을 냈어야 하는 민주당이 소극적으로 대응했는데 이는 민주당에 우호적인 유튜브 채널들이 페미니즘에 비판 입장을 보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런 분위기에서 단지 소수자들 이슈를 자주 다뤘던 '씨리얼'마저 페미니즘 편향 방송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권 의원은 “실제 당시 지지율을 보면 변동이 없고, 젠더 관련 공약을 발표해도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라며 “선거분석가들의 의견도 그렇고 '이대남'은 (민주당을) 대체제로 선택할 수 없는 경로를 보이는데 1월 중순까지 계속 이대남에 호소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적절한 답을 찾지 못했다”라고 비판했다.
영입 늦었던 박지현, 지선 땐 위험한 카드
권 의원은 대선과 지방선거 각각에서 박지현 전 공동선대위원장(전 공동비대위원장)을 잘못 활용한 점도 지적했다. 권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박 전 위원장 영입 시도가 있었지만 1월 말에서야 여성위원회 행사로 민주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민의힘이 이대남에 지지를 호소하며 2030 여성들이 '지지할 곳이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가운데 다소 늦은 영입이었다는 뜻이다.
권 의원은 “박 전 위원장 영입과 윤석열 당시 후보의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발언 이후 (민주당에 대한) 뚜렷한 반응이 있었고 젊은 여성 지지율이 급격하게 올라갔다”며 “(이 후보가) 닷페이스에 출연하고 여성커뮤니티에 글을 게시하면서 큰 반향이 있었다”고 했다. 결국 국민의힘의 여성혐오 전략에 어설프게 편승한 것이 젊은 여성층 지지를 결집할 동력을 떨어뜨리고 시간을 낭비했다는 평가다.
박빙으로 패한 대선 이후 '이대녀' 어필에 한발 늦었다는 평가가 나왔고, 박 전 위원장에 대한 주목도가 올라갔다. 이에 박 전 위원장이 6·1 지방선거에도 역할을 맡았는데 권 의원은 이를 '실패한 젠더정치'로 규정했다. 그는 “대선은 의제 중심적이지만 지선은 개별 후보들의 역량이 중요한 선거여서 (박 전 위원장이) 우리당에 안착하고 리드하기에 어려운 조건이었다”라고 평가했다.
이는 대선과 지선의 차이를 간과한 채 대선 때 아쉬웠던 부분을 지선에 바로 대입해 만회해보려 한 결과다. 급기야 박 전 위원장과 '개딸(개혁의딸)'로 불리는 민주당 지지 2030 여성들이 분리됐다. 박 전 위원장에 대해서는 토사구팽이라는 평가도 나오지만 결국 즉흥적인 인사 영입으로 큰 선거를 치르는 것에 대한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성평등 이슈 분석과 적극적 대응 필요
권 의원은 “성평등 이슈에 대해 계속 피하거나 정서적 판단만을 해 나갈 수 없다”며 “대선에서 형성됐지만 지선에서 해체된 2030 여성의 지지를 어떻게 끌어갈 것인지, 우리당 밖에 믿고 의지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는 2030 여성들에 대한 비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도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대처가 절실하다”며 “선거전략과 미래비전으로서 당내 성평등 의제의 의미와 위치를 재점검하자”라고 주장했다.
쓴소리도 덧붙였다. 권 의원은 “씨리얼과 같이 소수자에 대해 우호적 프로그램이 공격받는 현실에서 대응하는 국회의원이 없었던 현실이 (민주당의) 현 주소”라고 했다.
권 의원은 같은당 정춘숙·남인숙 의원과 함께 고민한 내용이라며 몇 가지를 제안했다. 민주당 내 성평등 추진체계 강화, 젠더 총괄 전담 인력 확보 등과 함께 이번 지선과 같은 리스크가 큰 '파격적 선택'이 아닌 '합리적인 선택' 마련 등을 주장했다. 또한 민주연구원에서도 젠더정책연구를 담당하는 단위를 구성하고 여성리더십센터를 잘 가동해서 2030여성들이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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