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민의힘 '비상 상황', 국민 눈에는 '꼼수'로 보인다

박지영 기자 2022. 8. 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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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경제정책부 기자

윤석열 정부 출범 84일,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완전한 혼란에 휩싸였다. 당대표가 당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되고 ‘당원권 정지 6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는 초유의 사태에 이어 이제는 ‘비상대책위원회 전환’을 두고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일 국민의힘은 의원총회를 열고 현재의 당 상황을 비상 상황으로 규정하며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는 방향으로 총의를 모았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참석한 89인의 의원 중 1명을 제외하고는, 88인의 대다수 의원들이 현재가 비상 상황이라는데 동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다수 의원들이 동의했다는 설명이 무색하게, 아직까지 당내에서 불협화음이 시끄럽게 들린다. 당내 상황도 이런데 ‘비상 상황’이라는 주장은 국민적인 공감을 얻기에는 더 요원해보인다.

국민의힘의 다급함에도 불협화음이 나오는 이유에는, 당헌·당규상 비대위 전환을 주장하기에 미흡한 점들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현재 비대위 전환의 요건 자체가 성립되는지가 쟁점이다.

국민의힘 당헌·당규 제96조 1항에 따르면 ‘당 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원회의의 기능이 상실되는 등 당에 비상 상황이 발생한 경우, 안정적인 당 운영과 비상 상황의 해소를 위하여 비상대책위원회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당원권 정지 6개월’ 중징계로 현재 ‘사고’ 상태이기 때문에 궐위가 아니다. 따라서 비대위로 전환할 수 있는 첫 번째 요건에는 성립하지 않는다.

당은 ‘최고위의 기능 상실’로 현재가 비상 상황이라고 해석한다. 배현진·조수진·윤영석 등 3인의 최고위원이 사퇴하며 최고위 재적 인원 과반인 4명 이상이 사퇴해 ‘최고위의 기능 상실’이라는 부분을 공략한 것이다.

현재 국민의힘 지도부는 9명 중 4명이 남았다.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고 ‘사고’ 상태인 이 대표를 제외하고, 권성동 원내대표, 성일종 정책위의장, 정미경 최고위원, 김용태 청년최고위원 등 4명이다. 김재원 전 최고위원은 6·1 지방선거에 출마하면서 사퇴했다.

하지만 최고위 기능 상실 부분도 해석이 갈릴 여지가 있다. 최고위원 9인 중 ‘총사퇴’와 ‘최고위 재적 인원 과반인 4명 이상 사퇴’ 등 요건을 놓고 유권해석이 갈리는 중인 것이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최고위원 과반이 사라진다고 해서 기능이 상실된다는 전례가 없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 이준석 대표가 물러난 상태가 아닌데 당대표를 선출하는 게 목적인 비대위로 전환하는 것도 논란이 된다. 당헌·당규 제96조 6항에 따르면 ‘비상대책위원회는 그 설치의 원인이 된 비상 상황이 종료된 후 소집된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와 최고위원이 선출될 때까지 존속한다’고 돼있다.

문제는 현재 이준석 대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새 당대표를 선출한다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대표가 받은 징계는 ‘당원권 정지 6개월’인데 이는 이 대표가 6개월 뒤에 당대표로 복귀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비대위 체제로 전환해 새 당대표를 뽑으면 이는 우회적인 제명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당내에서도 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미경 최고위원은 KBS라디오에 출연해 이에 대해 “법원에서 이는 윤리위의 결정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어 문제가 있다”며 “결과적으로는 다 법적 대상이 되기 때문에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 역시 “이준석 대표가 가처분이라도 신청한다면 이번에는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여지는데 왜 무리한 바보짓을 해서 당을 혼란으로 몰고 가는지 안타깝다”고 했다.

한 중진 의원은 비대위 체제로 전환하더라도 이는 이 대표의 복귀를 전제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하면 1월 9일에 복귀할 수 있다는 걸 전제로 비대위를 해야 한다”며 “그걸 봉쇄할 수도 없고 봉쇄하게 되면 나중에 법적으로도 문제가 된다”고 했다. 이어 “일부에서 (이준석 대표 쳐내기) 의도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건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세 번째로, 비대위로 전환하더라도 비대위원장을 임명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 현재 없다는 점도 쟁점이다. 당헌·당규 제96조 3항에 따르면 비대위원장을 선출하기 위해서는 전국위원회와 상임전국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당대표 또는 대표 권한대행이 임명해야 한다.

문제는 위원장을 임명할 당대표는 사고 상태로 자리를 비웠고, 권한대행도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대표 직무대행인 권성동 원내대표가 위원장을 임명할 수 있도록 전국위에서 당헌·당규를 개정하는 안을 의결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그러나 직무대행 사퇴 의사를 밝힌 권 원내대표에게 비대위원장 선임 권한을 주기 위해 당헌·당규를 엿가락처럼 바꾼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애초에 이 모든 일의 시작이 현직 당대표의 ‘당원권 정지 6개월’ 중징계라는 초유의 사태에서 비롯한 만큼, 모든 요건이 당헌·당규에 딱 맞아 떨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해석과 개정이 필요하다면 의견을 수렴해서 상황에 맞게 적용할 필요도 있다. 작금의 국민의힘 내홍 사태에 대해 ‘당헌·당규에 어긋난다’는 지적은 무수하게 많지만, ‘당헌·당규에 합당하다’는 해석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점도 새겨봐야 한다. ‘비상 상황’이라고 연일 외치는 다급함에 비해 그 이유와 과정이 옹색해보이는 이유다.

최고위원들의 연이은 사퇴를 과연 국민들이 ‘선당후사’의 모습으로 볼지, 비상 상황을 만들기 위한 사퇴라고 볼지는 진정성에 달려있을 것이다. 지금의 작태가 대통령부터 당 지도부까지 법을 다루는 검사 출신이 즐비한, 율사(律士) 출신이 지배한 국민의힘식 ‘공정과 상식’인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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