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정부 수사부터 겨눴다..서초동 '티타임' 부활의 딜레마

노현웅 2022. 8. 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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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들머리에 있는 검찰기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한겨레 프리즘] 노현웅 | 법조팀장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시절 폐지됐던 검찰의 ‘티타임’이 2년여 만에 부활했다. 한동훈 장관이 취임 초부터 약속한 대로 ‘형사사건의 공보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면서다. 중요 사건에 한해 검사장의 사전 승인을 받아 차장검사의 티타임을 진행하겠다는 내용이다.

법조기자들에게 티타임이란 국민적 관심이 쏠린 대형 사건에 대해 검찰 중간 간부급인 차장검사가 기자들과 만나 질의응답을 하는 비공식 브리핑을 뜻한다. ‘피의사실 공표’의 부담을 넘어서기 위해 브리핑이란 표현을 에두르는 것이다. 그래서 차 한잔 마시러 티타임에 참석하는 기자도 없고 실제 차가 제공되지도 않는다. 티타임 현장에서도 다향 그윽한 한담 대신, 정보를 하나라도 더 확인하려는 기자들과 수사 보안성 등을 이유로 정보 노출을 최소화하려는 검찰의 기싸움이 벌어지곤 한다.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직업의 소명으로 여기는 기자 입장에서 티타임 부활에 일말의 기대를 갖게 되는 게 사실이다. 티타임이 상시로 열릴 정도 사안이라면 대규모 권력형 비리 수사인 경우가 많다. 공적 영역의 부정부패에 관한 수사라면 국민적 관심과 보도 가치가 커질 수밖에 없다. 또 언론은 수사 과정에서 검찰권 행사에 편향성은 없는지, 권력의 외압이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감시견 노릇을 해야 하는데, 수사 진척조차 알 수 없는 ‘깜깜이 수사’에서 이런 역할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기대를 덮고도 남을 우려가 뒤따른다. 먼저 정보 비대칭성에 기반한 ‘여론몰이’ 가능성이다. 당장 지난달 28일 2년여 만에 부활한 첫 티타임부터 이런 우려는 현실화했다. 이날 티타임의 주제는 문재인 정부 정보당국 수장들을 겨눈 ‘북한 어민 북송 사건’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이었다. 티타임 직후 쏟아진 검찰발 기사 40여건은 대부분 “북한 어민 ‘강제 북송’이 위법하다”는 검찰의 법리 검토 결과를 앞세우고 있었다. 티타임 주제와 허용되는 정보 수준을 결국 검찰이 결정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티타임은 검찰 논리를 확대재생산하는 역할만 하기 쉽다.

정파성 시비는 이런 우려를 강화한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위시한 검찰 직할 체제가 완성됐고, 이어 전 정권 사정이 동시다발로 이뤄지고 있다. 하필 지금 티타임을 부활시키는 의도를 두고, 여론 재판을 위한 목적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에 대해 한 장관이 “지난 정부 수사에서는 과연 흘리기가 없었습니까?”라고 알리바이 삼는 것은 국민 절반의 신뢰를 포기하겠다는 태도와 다름없다. 더구나 한 장관 본인이 문재인 정부 초기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로 여론전을 능수능란하게 이끌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그 전 정권 탓조차 ‘유체이탈 화법’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물론 검찰만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검찰과 언론에는 공히 ‘논두렁 시계’라는 원죄가 있다. 검찰이 수사 대상을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마음 급한 언론이 보도의 기본을 무시하면서 발생한 비극이었다. 어쩌면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에 대한 신뢰가 결정적으로 붕괴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는지 모른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당시 티타임 내용을 받아치던 법조팀 막내 기자가 법조팀장 역할을 맡을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검찰과 언론을 향한 국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따갑기만 하다.

검찰과 언론은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서초동 티타임의 딜레마를 다시 눈앞에 둔 지금, ‘한겨레미디어 범죄수사 및 재판 취재보도 시행세칙’ 첫 조항을 다짐하듯 읽어본다. <한겨레>는 노 전 대통령 수사 직후 이 시행세칙을 제정했다. “사회정의 추구와 국민의 알권리 보장은 언론의 존재 이유이자 한겨레미디어의 핵심적 지향이다. 동시에 피해자는 물론 피의자, 피고인의 명예와 인권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보호돼야 한다. 취재보도 과정에서 이 가운데 어느 한쪽의 가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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