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향은 백도' '영양은 황도'인 이유 [강석기의 과학풍경]

한겨레 2022. 8. 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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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올해 처음으로 복숭아를 먹었다.

말랑말랑하게 잘 익은 백도로 한입 베어 물 때마다 달콤한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 복숭아에서 손가락으로 아까운 과즙이 흘러내렸다.

복숭아는 과육 색이 흰 백도와 주황색에 가깝게 노란 황도로 뚜렷하게 나뉜다.

예년 같으면 백도만 몇 차례 먹고 지나가겠지만 올해는 모처럼 황도와 천도복숭아도 맛보며 우연히 나타난 이런 변이체를 눈여겨보고 선별해 새 품종으로 만들어낸 옛 농부들의 지혜를 음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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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의 과학풍경]복숭아 게놈 2013년 모두 해독
백도의 유전자 돌연변이 생겨 황도 탄생
백도에서 황도가 나왔지만 드물게 황도에서 백도가 나오기도 한다. 황도 품종인 레드헤이븐의 주황색 과육은 CCD4 유전자쌍에 각각 반복서열(y1)과 전이인자(y2)가 끼어들어 가 기능을 잃어 카로티노이드가 분해되지 않고 쌓인 결과다(왼쪽). 레드헤이븐에서 우연히 발견한 백도(훗날 화이트레드헤이븐으로 명명)의 CCD4 유전자를 조사한 결과 전이인자가 빠져나가 정상(W1)으로 돌아와 카로티노이드가 분해된 것으로 밝혀졌다(오른쪽). ‘식물 분자생물학 리포터’ 제공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며칠 전 올해 처음으로 복숭아를 먹었다. 말랑말랑하게 잘 익은 백도로 한입 베어 물 때마다 달콤한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 복숭아에서 손가락으로 아까운 과즙이 흘러내렸다. 동양에서 이상향을 ‘무릉도원’, 즉 무릉에 있는 복숭아꽃이 활짝 핀 세계라고 표현했듯 복숭아야말로 맛과 향에서 이상적인 과일이 아닐까.

복숭아는 과육 색이 흰 백도와 주황색에 가깝게 노란 황도로 뚜렷하게 나뉜다. 백도와 황도는 맛과 향도 다르다. 백도는 꽃향기가 느껴지고 황도는 맛이 더 진한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할까.

2000년대 들어 게놈 시대가 열리면서 복숭아 게놈 역시 2013년 해독됐다. 그 결과 백도에서 유전자 하나에 돌연변이가 생겨 황도가 나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노란색에서 주황색 계열의 색소인 카로티노이드를 분해하는 효소인 CCD4 유전자가 고장 나 과육에 카로티노이드가 쌓인 게 황도다. 여러 황도 품종을 조사한 결과 CCD4 유전자 변이 세 가지가 밝혀졌는데 그 하나는 유전자 중간에 게놈의 기생충이라고 할 수 있는 디엔에이 조각인 전이인자가 끼어들어 간 경우다.

정상 CCD4 유전자를 지닌 백도에서는 카로티노이드의 분해 산물이 여러 단계를 거쳐 제비꽃 향이 나는 분자인 베타아이오논으로 바뀐다. 이처럼 꽃향기를 만드는 이유는 동물을 끌어들여 열매를 먹게 해 씨앗을 퍼뜨리기 위함이다. 작물 복숭아의 조상이라고 여겨지는 야생 복숭아가 다들 백도인 이유다. 황도는 꽃향기가 미미하지만 대신 카로티노이드가 풍부해 과육도 짙은 노란색이고 항산화 작용 등 건강에 이로운 효과가 더 크다. 필자처럼 향을 중요시해 백도를 고집하는 게 아니라면 황도가 낫다는 말이다.

영화 <기생충>을 보면 가정부를 쫓아내려고 복숭아털 알레르기를 이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 과피에서 떨어진 솜털이 몸에 묻거나 제대로 씻지 않은 복숭아를 껍질째 먹으면 피부가 벌겋게 되거나 입술이 부풀어 오른다. 복숭아털에 있는 단백질이 일부 사람들에게 항원으로 작용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결과다.

이런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게 껍질이 매끈한 천도복숭아다. 일반 복숭아와 천도복숭아의 관계를 알아본 결과 천도복숭아 게놈에는 복숭아털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 MYB25 유전자가 고장 나 있었다. 유전자에 게놈 기생충인 전이인자가 끼어들어 중간이 잘린 비정상 단백질이 만들어진 결과다.

요즘은 많은 과일을 사시사철 먹을 수 있지만 저장성이 떨어지는 복숭아는 여전히 계절과일로 남아 있다. 예년 같으면 백도만 몇 차례 먹고 지나가겠지만 올해는 모처럼 황도와 천도복숭아도 맛보며 우연히 나타난 이런 변이체를 눈여겨보고 선별해 새 품종으로 만들어낸 옛 농부들의 지혜를 음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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