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빵' 전윤환 "코인 투자로 마이너스 80%..나이면서 우리의 이야기"

2022. 8. 2.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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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자연빵' 전윤환 연출가
8월 4~7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전 재산 털어넣은 코인 투자기
무대에서 빵 굽고 비트코인하고
"제대로 된 사다리 없는 청년세대,
그들의 선택과 이유 함께 고민해야"
연출가 전윤환은 연극 ‘자연빵’을 통해 ‘가상화폐(코인) 투자기’를 다룬다. 그는 이 작품의 제작을 위해 10여년 연극을 하며 번 전 재산을 코인에 투자했다. 지금은 마이너스 80%를 기록 중이다. 무대에선 티켓 수익금을 실시간으로 코인에 투자하고, 관객과 끝을 모르고 하락하는 코인 그래프를 공유한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처음엔 100만 원으로 시작했는데, 그러다 구렁텅이에 빠진 거예요. (웃음) 일주일이 지나자 200만 원이 됐고, 100만 원을 더 넣어 400만 원이 됐어요. 한 달도 되지 않아 900만 원이 되더라고요.”

1년에 작품 7~8편, 촉망받던 젊은 연출가는 난데없이 강화도로 떠났다. 그때가 2018년이었다. “창작자로서의 끊임없는 자기증명”에 신물났던 시기였다고 한다. “경쟁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스템 밖으로 도망간 곳”은 강화도였다. “도시와 자본과의 거리두기를 하고 싶었어요.” 강화도에서의 생활은 너그러웠다. 친구들과 텃밭을 가꾸고, 지역 예술인으로의 삶을 살아가는 듯했다. 그런 전윤환 연출가에게 코로나19 시대의 ‘코인 광풍’이 찾아 들었다.

“연극하는 제 또래 중에 비트코인이나 주식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주변에 주식을 하는 젊은 연극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더라고요. 이게 연극계까지 넘어온 거라면 지금의 청년 세대 대부분이 하고 있겠다 싶었어요.”

연극 ‘자연빵’은 연출가 전윤환의 ‘가상화폐(코인) 투자기’를 담았다. 강화도에서 서울 한복판인 광화문까지 약 3시간. 긴 시간 여행하듯 도시로 나온 전윤환 연출가를 만났다. 그는 “10여년간 연극으로 번 돈을 모두 투자해 반토막이 나는 데에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마이너스 50%를 향할 땐, 너무도 괴로웠다고 한다. “그 다음부턴 마음을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마이너스 80%예요. 괜찮습니다. 그래도 공연은 하고 있잖아요. (웃음)”

가상화폐 투자기를 다룬 연극 ‘자연빵’의 전윤환 연출가는 “청년들이 제대로 된 사다리 없는 현실에서 왜 이런 허무맹랑한 가상화폐에 기댈 수 밖에 없었는지, 우리 사회가 함께 이야기를 나눠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세종문화회관, 앤드씨어터 제공]

지난 한 해 ‘영끌’이라는 단어가 들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청년 세대의 주식과 코인 열풍, 부동사 투자 열기는 사회적 이슈가 됐다. 그 무렵 신촌극장에서 초연해 뜨거운 반향을 불러온 ‘자연빵’(8월 4~7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은 연출가 전윤환의 이야기이면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30 세대의 자화상이다.

“리서치를 해보고 싶어 투자를 했는데, 청년 세대들이 대출을 받으며 기대를 걸듯이 저 역시 그렇게 돼버린 거예요. 우리가 사는 한국엔 제대로 된 사다리가 없는데, 코인이 어쩌면 나를 구해줄 동아줄이라고 믿었던 것 같아요.”

1시간 10분 짜리 연극은 아찔하다. 무대에선 티켓 수익금을 실시간으로 코인에 투자하고, 시시각각 날뛰는 코인 그래프를 띄워두며 관객과 허망함(?)을 공유한다. 가상화폐는 여전히 하락장이기 때문이다.

전윤환은 “텃밭을 가꾸는 것과 비트코인에 투자라는 것은 극과 극의 삶”이라며 “그런 괴리가 왜 일어나는지, 그 내적 갈등이 왜 생기는지, 섬에까지 가서 왜 자본을 쫓게 되는지를 공연 안에서 자전적으로 풀어간다”고 말했다.

“작년과 올해 상황은 또 달라졌어요. 코인 시장은 여전히 하락세고, 금리는 오르고 있고요. 희망을 걸고 대출까지 받은 청년들은 이자를 갚기 위해 삶을 다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됐어요. 스스로의 선택이었지만 청년들이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제대로 된 사다리 없는 불평등한 사회 안에서 허무맹랑한 가상화폐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우리 사회가 함께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전윤환의 작품엔 언제나 그의 현재가 담긴다. 2008년 앤드씨어터를 결성해 한국 사회의 단면을 담아낸 무대를 선보였고, 2015년부터 자신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연극으로 풀어갔다. ‘자연빵’은 2018년 무대에 오른 ‘전윤환의 전윤환-자의식 과잉’의 후속편 격이다. “경쟁으로 소모된 젊은 아티스트의 삶”을 돌아본 이 작품 이후 그는 강화도로 향했다. ‘자연빵’은 강화도에서 태어난 작품이다. ‘당사자성’이 세계적 화두로 떠오른 만큼,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은 특별한 힘을 가진다. “나의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고, 나 자신을 대상화하기에 자기 해학적이고 모순된 모습”을 과감하게 그릴 수 있다. 그 안에서 “공감의 힘”도 나온다.

“자신이 자기 이야기를 할 때 생기는 에너지가 있더라고요. 허구가 아닌 실재가 무대에 올라올 때 관객들이 느끼는 생경한 감각이 있거든요. 무대 위의 이야기들이 다 허구라고 생각하고 들어가는데, 갑자기 실재가 범람하는 무대를 바라볼 때,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하게 되는 호기심이 발동해요. 중요한 것은 발화자가 본인일 때, 생기는 큰 에너지예요. 그게 바로 당사자성이겠죠. 그 힘을 믿기 때문에 이런 작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연출가 전윤환은 연극 ‘자연빵’을 통해 ‘가상화폐(코인) 투자기’를 다룬다. 그는 이 작품의 제작을 위해 10여년 연극을 하며 번 전 재산을 코인에 투자했다. 지금은 마이너스 80%를 기록 중이다. 무대에선 티켓 수익금을 실시간으로 코인에 투자하고, 관객과 쉴새없이 하락하는 코인 그래프를 공유한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그의 연극 제작과정은 ‘경험의 산물’이다. 전 재산을 털어넣은 코인 투자 역시 ‘리서치의 연장’이었다. “리서치와 공부를 통해 체화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를 통해 ‘나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삶에서 건져 올린 주제에 대해 어떻게 수행성을 가져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어요. 리서치를 통해 사람들이 어떤 사회적 질문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것이 내 이야기로 머물지 않고 사회의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고민을 하고 있어요. 개인의 특수성이 어떻게 하면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거죠.”

물론 그 과정에서 ‘자연빵’처럼 예측 못한 상황도 맞는다. “사실 그건 수행성을 포로로 두고 사리사욕을 취하기 위한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웃음)”

‘자연빵’ 무대에서 전윤환 연출가는 ‘멀티테이너’다. 그는 연극 내내 하는 일이 많다. 무대에 오르는 배우이자 연출가이며, 음악감독이고 영상감독이다. 심지어 무대에선 오븐기를 올려놓고 빵도 굽는다.

“이 작품에서 ‘빵’이라는 오브제가 가진 의미들이 있어요. ‘예술이 중요하냐, 빵이 중요하냐’는 의미도 있고요. 빵은 자본을 상징하는데, 그런데 무대에선 관객들을 더 강력하게 지배하는 것은 예술보다는 빵이 주는 냄새더라고요. (웃음) 예술보다 빵이 주는 식욕의 감각이 훨씬 크기에 관객들은 개인의 싸움을 하는 거예요.” 전윤환은 직접 구운 빵을 “우걱우걱 씹으며 코인에 투자”한다. “빵은 저 혼자 먹어요.(웃음)”

연극 ‘자연빵’. [세종문화회관, 앤드씨어터 제공]

무대 위에서 빵을 굽는 것은 그의 ‘로망’이었다. 공연 시작 전 빵을 굽고 관객과 나눠먹는 미국의 대안 연극 집단인 ‘빵과 인형극단’과 같은 단체를 만드는 것이 전윤환의 바람 중 하나였다.

“그런 예술과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비트코인에 투자했다가 폭락해 혼자 무대 위에 있는 한 청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혼자 빵을 먹고 막걸리를 마시는 처지의 저 사람의 이상과 현재가 대비되는 장면이기도 해요.”

전윤환의 연극은, 개인이면서 우리이고, 특수하면서 보편적인 이야기를 끊임없이 오간다. 그는 “연극이라는 매체를 통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찰하고 수행하는 것 같다”며 “연극은 내게 다른 입장이 되어보기, 혹은 나를 더 정면으로 응시해보기의 과정”이라고 했다. 전윤환의 연극 안엔 청년 예술가의 불안한 삶과 성장이 담겼고, 그의 시대 인식과 가치관이 담겼다.

“강화도에서 텃밭을 가꾸며 알게 된 것은 농사의 관건은 잡초 죽이기에 있다는 점이었어요. 한정된 땅에서 나오는 좋은 영양분을 내가 키우려는 작물에게만 줘야 하니까요. 그런데 이 논리가 우리가 만든 세상의 논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술세계도 마찬가지고요. 경쟁에 뒤쳐져 강화도로 갔는데, 그 잡초가 상품이 되지 못한 나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슬픔을 가지면서도 아이러니하게 비트코인에 모든 돈을 투자하는 이 심리는 과연 뭔가, 그런 고민도 하게 되더라고요. (웃음)”

현시대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다분히 절망적이다. 지난 5월 관객과 만난 ‘기후비상사태:리허설’ 이후 그는 “기후위기는 인류가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리라 생각”하고 있고, “가상화폐나 주식 시장의 회복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풀어가는 방식엔 전윤환만의 유머가 있어 웃음과 슬픔이 공존한다.

“그럼에도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야 하지 않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해요. 그런데 전 가짜 희망을 이야기하는 작업에 마음이 어려워지더라고요. 오히려 희망 없음을 이야기하는 작업이 훨씬 더 현실적으로 느껴져요. 어쩌면 이 작업도 굉장히 절망적이에요. 하지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중요한 질문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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