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위기에 발목 잡힌 유럽의 녹색 전환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전환에 목소리를 높여온 유럽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위기에 직면하자 화석 연료 의존도를 다시 높이고 있다. 심화되는 에너지 위기와 폭염, 공급망 혼란, 경기침체 등 악재가 겹치며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려던 유럽의 장기 계획이 지연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유럽 행 가스공급 감축으로 올해 유럽의 천연가스 도매가격이 두 배 이상 치솟았으며 이로 인해 가정과 기업의 연료비 부담이 가중되고 경기침체 우려도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에너지 위기는 유럽 내 기후대응 퇴행을 부추기고 있다. 최근까지 탄소 감축에 앞장섰던 주요국들이 코앞에 닥친 에너지 대란에 대응하기 위해 화석 연료를 포함한 공급 솔루션 찾기에 나선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글로벌 기후 의제를 이끌어 온 독일이 역행에 선두에 섰다. 가디언에 따르면 독일 니더작센주에 있는 체코 에너지 회사 소유의 석탄 발전소는 최근 내년 4월까지 가동할 수 있는 긴급 허가를 받았다. 에너지 수급에 비상이 걸리자 한동안 사용을 중단했던 화력 발전소를 재가동하기로 한 것이다. 독일에서는 당초 올해 말까지 가동을 아예 중단하기로 했던 원자력 발전소 3곳의 운영을 연장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전력난 위기에 내몰린 프랑스는 가동을 중단했던 석탄발전소를 다시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이탈리아, 영국, 그리스 등도 석탄 발전 재개를 준비하거나 석탄 발전 생산과 채굴량을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 전역을 덮친 폭염도 악재가 됐다. 장기화된 가뭄으로 수력 발전 생산량이 줄어들고 유럽의 주요 운송 루트 역할을 하는 라인강의 수위가 낮아지며 주요 상품 공급과 가격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시장 관계자들은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유럽의 친환경 전환 계획이 뒷걸음칠 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에너지 대기업 슈나이더 일렉트릭은 스페인, 네덜란드, 북유럽과 같은 국가에서 재생 에너지 프로젝트가 최대 1년 지연되고 있으며, 미국 또한 비용 상승과 재생 에너지 공급망 문제로 관련 프로젝트 속도가 늦춰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친환경 에너지 지지자들 중에는 현재의 에너지 위기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부족과 높은 연료 가격이 소비자들의 소비 습관을 바꾸고 친환경 재생 에너지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등 길게 보면 유럽의 녹색 전환을 가속화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높아진 화석연료 의존에서 벗어나려면 훨씬 더 많은 비용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반박이 제기된다.
유럽의 기후정책 후퇴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주요 7개국(G7) 정상들은 지난 6월말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공급난에 대처하기 위해 천연가스 프로젝트에 대한 공공 자금조달을 일부 허용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화석연료에 대한 공공투자를 막기로 한 기존 약속을 뒤집은 것으로, 주요 기후대응국들의 이같은 결정이 글로벌 기후대응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주목된다. 유럽연합(EU) 의회도 지난 7월6일 원자력 발전과 천연가스를 친환경 투자 기준인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블룸버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기후 행동에 얼마나 제동을 걸고 있는지 이번 결정을 통해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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