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나의 배부른 암흑기

이영기 ETRI 지능형센서연구실 책임연구원 2022. 8. 2.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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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연구원에 입사한 20여 년 전, 늦가을이 선명하게 생각난다.

아마 대부분의 출연연 입사 5년차쯤 되면 필자와 같은 고민이 많을 것이다.

입사 후 10년이 넘기 시작하니 비로소 연구했던 테마들에 대한 결과가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20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필자는 참 운이 좋은 연구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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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기 ETRI 박사

필자가 연구원에 입사한 20여 년 전, 늦가을이 선명하게 생각난다. 정부출연연구원이 어떤 곳인지 그리고 기업과 어떻게 다른지도 파악이 전혀 안 된 상황이라 첫 출근날 점심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머릿속이 복잡하고 심란했다.

어느덧 입사 5년차가 됐지만, 연구과제 목표에 맞춰 실험하고, 데이터 정리하며 논문 쓰고, 특허 출원하면서 결과를 꼬박꼬박 기한 내 보고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보내면서 조금씩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이런 연구원의 삶이 나에게 맞는 건가?."

아마 대부분의 출연연 입사 5년차쯤 되면 필자와 같은 고민이 많을 것이다. 필자도 대학이나 타 기관으로의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무한반복 될 것 같은 지금의 연구소에서의 삶에 반해 나보다 빨리 기술상용화에 기여하고 학문적으로 성장하는 동기들을 보면서 나는 왜 이리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는지? 왜 자꾸 수동적이 되고 가라앉는지? 라는 후회와 함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참 배부른 암흑기란 생각이 들었다.

입사 후 10년이 넘기 시작하니 비로소 연구했던 테마들에 대한 결과가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입사 5년차때는 그렇게 막연하고 연구하면 할수록 확인해봐야 할 것도 많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주제들에 대해 조금씩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무엇이 근본적 문제인지에 대한 문제 정의를 그제서야 비로소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이후 10년간, 그 이전 10년의 연구경험을 바탕으로 비로소 연구성과들을 조금씩 내기 시작했다. 과제도 수주하게 되고 기술이전이나 특허 매각도 경험하였으며, 무엇보다 기업이나 타 기관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조금씩 확대되었다.

물론,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에 따라 조직 변화에 부침도 있었다. 정부의 R&D 기조에 따라 연구비가 줄어들기도 했고 이로인해 팀원들이 이직이나 연구주제를 바꾸며 소속팀까지 변경되는 일도 있었다. 그러다가 대형 과제를 수주할 수 있는 기회도 찾아왔다. 이것이 새옹지마(塞翁之馬)인가 싶다. 20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필자는 참 운이 좋은 연구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연구원에 입사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같은 테마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으니 말이다. 올해로 연구원에 입사한 지 햇수로 22년이 되었다. 이제는 나보다는 팀 동료를 먼저 생각하려 노력한다. 동료들이 함께하기에 과제가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고 믿고있다.

최근 MZ세대와 충돌하는 '꼰대문화'에 대한 말이 많다. 필자는 그 경계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맘은 MZ세대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꼰대가 되기도 한다. 주변에서 젊은 친구들과 일하는 게 힘들다고 말하는 분도 있다. 일부 공감하지만, 가끔 내가 그 나이 때 어땠는지를 떠올려본다. 그 시절의 나도 지금의 젊은 연구자들과 똑같은 고민들을 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론 늘 과제책임자나 보직자의 처리에 불만이 있었고 열심히 노력하는데 조직은 공평하지도 않고 또 나를 존중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때가 공교롭게도 나의 배부른 암흑기와 일치한다. 그래서 남 탓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세대의 변화를 꼬집을 필요도 없고, 내가 그 당시 어땠는지 돌이켜보면 조금은 이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역지사지(易地思之)라 새삼 생각해 본다. 나도 이젠 꼰대로 보이려나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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