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SK하이닉스, 미국으로 반도체 생산 거점 이원화하는 까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최근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잇따라 내놓자, 일각에선 국내 투자에는 인색하다는 비판까지 뒤따른다. 국내에 집중해오던 두 업체의 생산 거점을 미국까지 이원화하는 이유는 뭘까. 여기에는 현지 당국의 보조금이나 세제혜택은 물론 ‘한·미 기술동맹’ 참여 등 복잡한 계산이 깔려 있다.
삼성전자는 2024년 가동을 목표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는다.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기존의 파운드리 공장이 14나노(nm, 1나노는 10억분의 1m) 공정이 주력이라면, 이곳에서는 보다 최첨단 공정이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최근 텍사스주에 향후 20년 동안 11개의 생산공장을 새로 짓겠다는 장기 투자방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해외 투자를 늘리면, 그만큼 국내 투자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SK하이닉스는 미국에 첨단 패키징 제조시설을 짓기로 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화상 면담에서 미국에 220억 달러 투자를 약속하고 150억 달러는 반도체 연구·개발(R&D) 협력과 메모리 반도체 첨단 패키징 제조시설 등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패키징은 반도체 칩을 패키지 안에 포장하는 반도체 후공정으로, 많은 칩을 하나의 패키지 안에 쌓는 적층 기술이 반도체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주요 기술로 주목받는다. 그동안 SK하이닉스의 패키징 공정은 경기 이천 공장과 중국 충칭 공장에서 담당했지만, 적층 작업 등 첨단 패키징은 이천에서만 진행됐다. 앞으로는 미국에서도 이천과 같은 설비가 만들어지게 된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이원화 전략이 ‘K반도체’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 파운드리는 수요업체인 팹리스와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국에 생산설비를 두는 것이 일감 수주에 보탬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국내 파운드리 기업의 해외 진출에 대해 “미래 핵심 수요산업을 주도하는 미국과 유럽 내 주요 기업들과의 네트워크라는 무형 인프라를 확충할 수 있다”며 “성공할 경우 대만 TSMC와 서방 수요 기업간 장기 계약관계, 즉 파운드리 산업 고유의 진입장벽을 상당부분 낮출 수 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의 패키징 공장 투자 역시 적층 기술 등 원천 기술 확보에 유리할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원천 기술이 있는 미국 기업과 대학 등과 협업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최근 미 상·하원을 통과한 ‘반도체 및 과학법’ 역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 투자를 늘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법은 반도체 공장 신증설, 장비현대화, 연구개발 등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반도체 설비 건설 및 장비 등에 대해 25% 세액공제를 해준다.
다만 ‘반도체 및 과학법’은 중국을 포함한 ‘우려 국가’에 향후 10년간 첨단 반도체 시설을 짓거나 기존 시설에 추가로 투자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시안과 우시 등에서 낸드플래시와 D램을 생산하고 있다. 향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을 대상으로 설비투자를 진행하는 경우 ‘반도체 및 과학법’에 의해 제한될 소지가 높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중국에 투자할 경우 어떤 제재가 있을지 구체적인 내용 등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며 “인텔과 마이크론 같은 중국에 공장을 갖고 있는 미국 기업들이 어떻게 나오는지를 봐야한다. 미국 기업들의 대응 방식에서 힌트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국 투자로 국내 투자가 위축된다는 지적에 대해 “현재 1~3라인이 있는 평택 공장은 1개 라인에 쓰는 투자금이 미국 테일러 공장 투자금을 상회하는 데다, 앞으로 4~6라인을 지을 공간도 마련돼 있다”면서 “국내에 상당한 설비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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