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시의 대만 방문, 왜 "최악의 타이밍"일까

이본영 2022. 8. 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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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충돌]시진핑 이례적 3연임 눈앞 '민감한 시기'
바이든도 중간선거 앞이라 강경해질 수도
"우크라 전쟁 중 최악 타이밍" 비판도
중국군 무력시위 강화 우발충돌 가능성↑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2일 아자르 아지잔 하룬 말레이시아 의회 의장을 만나고 있다. 쿠알라룸푸르/로이터 연합뉴스

“타이밍이 이보다 나쁠 수는 없다.”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가능성에 대해 1일 이렇게 평가하며 “그야말로 무모하다”고 비판했다. 미국과 유럽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러시아를 직접 지원하지도 않는 중국을 왜 자극하냐는 얘기다.

타이밍이 나쁜 이유는 이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0월에 열릴 제20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두 차례 집권으로 끝난 전임자들의 전통을 깨고 3연임 확정을 노린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입장에 있는 그에게는 경제 상황도 불안하다. 코로나 봉쇄 등의 탓에 2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0.4%에 그쳤다.

시 주석은 또 ‘대만 통일’을 ‘중화민족 부흥’을 위한 하나의 목표로 삼아왔다. 그런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취임 후 세 차례나 중국의 대만 침공 때 직접 군사 개입을 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백악관은 그때마다 말을 거둬들이기는 했지만 대만 방어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접은 듯한 발언은 중국을 더 민감하게 만들었다. 니컬러스 번스 중국 주재 미국대사는 이런 분위기에 대해 미-중이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기 시작한 1972년 이래 양국 관계가 “최저점”에 이르렀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 주석이 지난주 바이든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대만 문제로 “불장난하면 반드시 불에 타 죽는다”고 했다는 중국 외교부의 발표도 이런 분위기를 대변한다. 3연임을 앞둔 시 주석이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은데, 이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펠로시 의장은 1991년 베이징 방문 때 동료 의원들과 함께 톈안먼광장에서 “중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라고 영문과 한자로 쓴 펼침막을 꺼낸 전력도 있다. 중국 정부가 반역자로 취급하는 달라이 라마를 만나고, 티베트인들이 사는 시짱자치구 수도 라싸를 방문한 적도 있다.

데이비드 색스 미국외교협회 연구원은 <포린 어페어스> 기고에서 “과거 위기 때 중국은 미국과의 건설적 관계 유지에 가장 중요한 이해를 갖고 있었다”고 했다. 1995~96년 3차 대만해협 위기, 1999년 미군의 유고슬라비아 중국대사관 오폭, 2001년 중국 전투기와 미국 정찰기 충돌이 그런 경우였다. 하지만 그는 “관계가 급락한 지금 시 주석으로서는 유지할 게 별로 남아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기정사실화에 중국 쪽 반응도 더 격해졌다. 중국군은 남중국해에서 2일부터 6일까지 훈련할 것이라며 선박 진입 금지를 통보했다. 중국군은 지난달 31일 극초음속 미사일 둥펑(DF)-17로 추정되는 발사체가 이동식발사차량(TEL)에서 발사되는 모습을 담은 영상도 공개했다. 둥펑-17의 시험발사 장면 공개는 이번이 처음이다.

앞으로 중국이 얼마나 강경하게 나올지를 두고 여러 전망이 나온다. 대규모 군사훈련에 나설 수 있고,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투입하는 군용기를 늘릴 수도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중국군은 지난해 11월 미국 의원들이 대만을 방문한 직후 군용기 27대를 대만 방공식별구역으로 들여보냈다. 1996년 3차 대만해협 위기 때처럼 대만해협에 미사일을 쏘는 강경한 대응을 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대만해협을 국제 수로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한 중국이 해협 봉쇄를 거론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마저 제기된다.

하지만 시 주석이 대형 정치 행사를 앞두고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가려고는 하지 않을 공산이 커 보인다. 미-중 정상은 대면 회담도 추진하기로 한 상태다. 그러나 대만 주변에 군용기와 함정을 대규모로 투입할 경우 이에 대응하는 대만군이나 미군과의 우발적 충돌 가능성은 높아지게 된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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