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현의 창(窓)과 창(槍)]주니어와 투어프로의 차이..지지 않는 플레이와 이기는 플레이

고진현 2022. 8. 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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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고진현전문기자]주니어 시절 톱클래스였던 유망주들이 프로에서도 연착륙할 것이라는 기대는 어찌보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섞인 전망을 한국 선수에게 적용해보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주니어 무대에서 펄펄 날던 선수들이 정작 자신의 인생을 모두 걸어야 하는 프로 무대에서 잠재력을 폭발시키지 못한 채 쓸쓸히 사라지는 경우를 숱하게 목격했기 때문이다.

최근 테니스계는 흥분하고 있다. 남자 유망주 조세혁(14·남원거점스포츠클럽)이 지난달 열린 윔블던대회 14세부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신설된 14세부 윔블던대회 우승컵을 품에 안은 조세혁은 이후 영국, 프랑스, 독일을 차례로 돌며 연일 우승 소식을 전하고 있다. 오랜만에 등장한 ‘될성 부른 떡잎’이 바람대로 쑥쑥 자라 프로무대에서도 연착륙을 할 수 있을지 짐짓 궁금하다.

주니어와 프로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특히 테니스처럼 체력,기술,정신력 등 경기력을 구성하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함께 뒷받침돼야 하는 종목은 더욱 그렇다. 프로 테니스는 두꺼운 선수층에다 바늘구멍 같은 약점이라도 노출되면 생존하기 힘든 종목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니어와 투어 프로의 차이는 상상을 초월할 수밖에 없다. 주니어 시절 제 아무리 펄펄 날던 선수라도 프로 무대 성공을 장담하기 힘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한국 주니어 테니스 선수들이 투어 프로로 연착륙하기 힘든 또 다른 이유는 플레이 스타일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주니어 선수들은 대부분 ‘버티는 플레이’를 지향한다. 베이스 라인 근처에서 상대의 볼을 받아내는 소극적인 플레이로 일관하는 게 국내 주니어 선수들의 공통된 플레이 스타일이다. 결국 뼈를 깎는 반복훈련을 통해 자신의 실책을 줄이는 게 ‘버티는 플레이’의 핵심이며, 승부는 상대의 실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투어 프로는 다르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공격적인 플레이로 경기력을 다듬어온 외국 선수들은 투어 프로로 전향하면 플레이 스타일은 그대로 유지한 채 실책을 줄이는 선수로 진화하게 된다. 축적된 기량과 반복된 훈련을 통해 실책을 줄인 이들은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단 격으로 기량이 급상승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리한 진단이다. 공격적 플레이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경기운영 능력 또한 좋아져 한국 선수들과 기량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 선수들은 주니어 시절 몸에 밴 소극적인 플레이,즉 상대의 실책에 편승해서 이기는 ‘버티는 플레이’를 프로 무대에서도 고수하면서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이 지점이 바로 한국 테니스 선수들이 프로무대에서 연착륙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다. 공격적 플레이에서 경기 주도권은 늘 자신이 쥐게 돼있다. 상대를 힘과 스피드로 윽박지르는 공격적인 플레이와 상대의 실책만 기다리는 소극적인 플레이 중 어느 것이 승산이 높은지는 삼척동자가 다 아는 사실이다. 테니스 기대주 조세혁도 이 점을 가슴속에 새겨둬야 한다. 지금의 승패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버티는 플레이’가 아닌 공격적인 플레이로 미래의 그랜드슬래머가 되기 위한 기본을 다져 놓지 않으면 그 또한 선배들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한국 최고의 투수로 한 시대를 풍미한 박찬호도 그랬다. 불같은 강속구로 상대를 윽박지르는 공격적인 파워피처(power pitcher)시절에는 승부의 주도권을 늘 자신이 행사했다. 그러나 강속구가 시들해진 시절에는 달랐다. 스피드보다 제구력에 신경쓰는 피네스 피처(finess pitcher)로 변신한 뒤에는 승부의 열쇠는 자신이 아닌 상대 타자로 넘어갔다. 타자가 속아주면 이기고 그렇지 않으면 질 수밖에 없는 평범한 투수로의 전락, 소극적인 플레이의 한계는 명백했다.

주니어와 투어 프로의 차이는 크다. 상대의 실수에 의존하는 ‘버티는 플레이’에서 벗어나는 습관을 몸으로 익혀두지 않으면 미래의 성공을 장담하기 어렵다. 승부의 열쇠를 자신이 쥘 수 있는 공격적인 플레이는 프로 무대 연착륙의 확률을 높이는 든든한 버팀목이자 지렛대다. 지지 않는 경기를 하는 것과 이기는 경기를 하는 건 비슷해 보이지만 엄청나게 다르다. 그게 바로 주니어와 투어 프로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jhkoh@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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