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北에서 살인 등 중범죄 저지른 탈북자 국내서 처벌한 적 있다?
귀순 전 범죄 처벌한 적 있지만 모두 국내에 피해자·목격자 있는 사건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탈북 어민 강제 북송 논란이 북한에서 중범죄를 저지른 탈북자가 국내에서 처벌받은 선례가 있었는지를 둘러싼 진실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2019년 탈북 어민 2명의 강제 북송을 결정할 때 이들이 어선 동승자 16명을 살해한 흉악범임에도 귀순을 받아주면 마땅한 처벌 수단이 없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한 사실이 공론화되면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강제 북송 탈북 어민에 대해 "한국 사법 시스템에서 당연히 단죄가 가능하다"며 "그런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앞서 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온 사람들을 여기서 다 재판해서 형을 살게 했다"고 언급했다.
반면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입장문을 내고 "지금까지 북한지역에서 북한 주민을 상대로 저지른 흉악 범죄와 관련해 우리 법원이 형사관할권을 행사한 전례가 하나도 없다"고, 국가정보원 출신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중대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 왔는데 대한민국에서 처벌받은 사람은 1명도 없다"고 말했다.
어느 쪽 주장이 맞을까?
통일부에 따르면 국내 정착한 탈북민은 6월 말 현재 3만3천834명이다.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민은 1997년 제정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북한이탈주민법)에 따라 우리 정부로부터 국내 정착에 필요한 보호·지원을 받는데, 만약 결격 사유가 있으면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다.
결격 사유는 ▲ 항공기 납치, 마약 거래, 테러, 집단살해 등 국제형사범죄자 ▲ 살인 등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자 ▲ 위장 탈출 혐의자 ▲ 국내 입국 후 3년이 지나서 보호 신청한 사람 등이다.
이 같은 사유로 보호 대상에서 제외된 이는 323명으로, 전체 탈북민의 1%가 채 안 된다. 이 중 중대 범죄인 국제형사범죄와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 전력자는 모두 23명이다.
범죄 유형별로 보면 마약 거래가 13명으로 가장 많고, 살인 관련 범죄는 6명이다. 나머지 3명은 3년 이상의 징역형 선고자, 1명은 감금·폭행·인신매매 혐의다.
탈북민 관리 주무 부처인 통일부는 이들의 형사처벌에 대한 연합뉴스의 수차례 질의에도 "통일부는 사법처리에 관여하지 않고 국내에서 형사처벌 받은 사례는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고만 답변했다.
이런 가운데 국정원은 윤건영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서에서 "국정원이 북한이탈주민 조사 과정에서 중대범죄를 확인해 통일부가 비보호 결정한 사례는 총 23건으로 이에 대해 수사 의뢰한 바 없다"고 밝혔다.
그 이유로는 탈북민에 대한 정부합동신문 근거 법규에서 간첩 색출 등 대공 혐의 규명만 규정하고 있고, 북한이탈주민법도 살인 등 중대 범죄를 수사 의뢰 사항으로 규정하지 않는 점을 들었다.
실제로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 가운데 간첩 혐의로 사후 기소돼 처벌받거나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는 있다. 또 간첩 혐의는 아니지만, 귀순 전 대남 정보수집·공작을 담당하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협력한 전력이 뒤늦게 드러나 처벌받은 사례도 있다.
2007년 귀순한 뒤 사기 대출로 붙잡힌 A씨는 탈북 전에 한국 국적의 탈북 여성이 북한에 남은 딸을 탈출시키려는 걸 알고 유인해 체포하려는 보위부 공작에 가담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도 함께 인정돼 2015년 대법원에서 징역 5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2018년 국내 정착한 B씨는 귀순 전 탈북자들의 송금 브로커로 일하다 북한 보위부에 포섭돼 해외에서 탈북자 재입북 공작에 가담한 혐의(국보법 위반)가 인정돼 지난 5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2017년 귀순한 C씨도 귀순 전 북한 보위부 정보원으로 활동하면서 중국에서 탈북민을 강제 북송하는데 가담한 혐의(국보법 위반)로 지난 6월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됐다.
이들 사건은 일종의 대공 사건으로, 북한이탈주민법상 비보호 결정 사례에 포함되지는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국정원 내사와 검경 수사를 거쳐 귀순한 지 수년 뒤 기소됐는데 국내에 거주하는 피해자나 목격자의 증언이나 진술로 범죄가 입증됐다.
다시 말해 통상 증거 확보나 피해자 특정이 쉽지 않은 북한 내 살인 등 중범죄 사건과는 차이가 있다.
한동훈 장관이 언급한 탈북민 처벌 사례는 탈북 과정에서 일어난 성폭행 사건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1년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넘어오기 위해 중국에 머물면서 탈북 여성을 성폭행한 D씨는 국내 정착한 피해자가 인권단체 도움으로 검찰에 고소해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결론적으로 탈북민의 귀순 전 범죄 전력에 대해 국내에서 처벌한 사례가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해당 사건은 모두 국내에 거주하는 피해자나 목격자가 있는 사건이었고 북한 보위부에 연루된 대공 사건이 다수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에 논란이 된 탈북 어민 북송 사건의 경우처럼 정부 당국이 합동신문을 통해 확인한 살인 등 중범죄 전력 탈북자 23명을 국내에서 처벌한 사례는 아직 없는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2일 입장문을 통해 "탈북민 조사과정 등에서 중국 또는 북한에서 성폭행·납치·감금 등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확인돼 국내 입국한 탈북민을 처벌한 사례가 4건"이라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사건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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