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는 한 명, 사인은 두 개".. 시민단체에 고발당한 의료중재원, 또 부실감정 논란

송복규 기자 2022. 8. 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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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전 환자 8시간 방치한 병원
의료중재원 "부적절한 부분 없어 보여"
시민단체 "의료중재 명확한 기준 마련해야"

지난 2020년 2월 경남 밀양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던 A씨가 다급한 목소리로 119에 전화를 했다. A씨는 “지금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다”며 요양병원에 와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내 요양병원 측이 A씨를 제지했고, 이후 A씨는 밀양에 위치한 한 한 종합병원으로 옮겨졌다.

A씨는 심비대에 호흡곤란을 호소하고 양쪽 폐에 침윤이 발생하는 등 전형적인 심부전 증상을 앓고 있었다. 심부전은 심장 이상으로 인해 신체 조직에 필요한 혈액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질환이다.

A씨가 입원한 B종합병원은 평소 A씨가 자주 다녀 주치의까지 있는 곳이었다. A씨가 요양병원에서 B종합병원으로 이송될 때의 산소포화도는 85%로 통상 산소포화도가 90% 이하일 경우 ‘저산소증’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B종합병원은 병원 도착 후 2시간이 지나서야 저산소증인 A씨의 상태를 인지했다.

A씨는 저산소증을 해소하기 위한 처치도 받지 못한 채 8시간 동안 방치됐고, 산소포화도는 48%까지 내려갔다. 산소포화도가 50% 이하로 5분 이상 내려갈 시 저산소성 뇌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 A씨가 입원해 있던 요양병원의 경우 A씨의의 호흡수와 산소포화도를 기재하는 기록부를 거짓으로 작성한 정황도 추후 확인됐다.

김모(48)씨가 A요양병원과 B종합병원을 대상으로 의료중재원에서 받은 감정 결과. 사망자는 한 명이지만, 서로 사망 원인이 다르다. /송복규 기자

A씨의 아들인 김모씨는 병원들의 진료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2020년 5월과 지난해 4월 요양병원과 종합병원을 상대로 각각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료중재원)에 조정을 신청했다. 의료중재원은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공포에 따라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2012년 설립된 공공기관이다.

두 병원이 김씨의 모친에 대한 심부전 증상을 확인했으면서도 제대로 처치하지 않고 방치했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의료중재원은 ‘병원이 환자 진료에 있어서 부적절한 부분은 없어 보인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의료중재원은 김씨가 요양병원을 상대로 한 조정에서 “요양병원은 진단된 병증에 대한 관리 정도의 진료가 이뤄지는 것을 보면 만성 기저 질환에 대한 평가 및 진단 과정이 없었다고 해서 적절하지 못했다고 하기 어렵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이런 감정은 종합병원을 상대로 한 조정에서도 되풀이됐다. 의료중재원은 “환자의 경우 갑작스런 심정지가 아니고 심한 전신쇠약과 폐렴 및 다기관기능부전으로 혈압이 내려가고 승압제에도 반응이 없는 임종 과정에 있었다”며 “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은 점이 부적절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약 8시간 동안 별다른 처치가 없었던 것은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의료중재원은 또 감정 과정에서 문제가 된 종합병원에 심장전문의와 심부전 관련 검사 장비가 없다는 가정도 제시했다. 종합병원이 심부전 관련 기초 진단을 할 여력이 안 된다고 본 셈이다. 하지만 이 종합병원의 온라인 홈페이지에는 원장이 심장전문의고, 해당 병원에 심혈관센터가 있다는 사실을 홍보하고 있었다.

의료중재원은 요양병원과 종합병원을 상대로 한 조정에서 A씨의 사망 원인도 다르게 제시했다. 요양병원을 상대로 한 조정에선 ‘심부전에 의한 폐부종, 기관지 확장증, 폐렴’이라는 사망 원인이 나왔지만, 종합병원 관련 조정에선 ‘전신쇠약과 폐렴으로, 심부전 악화로 인해 급격히 경과가 나빠졌다는 소견은 찾기 어렵다’는 종합소견이 나왔다. 하나의 사망자를 두고 감정에 따라 다른 사망 원인이 나온 것이다.

지난 6월 13일 오전 11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의료중재원 추가 고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경실련 제공

김씨는 “모친이 병원에 방치된 시간을 고려하면 목숨을 건졌더라도 ‘식물인간’인 상태로 살았을 것”이라면서 “모친이 요양병원에서 고통을 호소한 뒤 종합병원으로 이송됐고, 종합병원에서는 방치됐다. 모든 과정에 문제가 있는데 의료중재원은 문제가 없다고 한다”고 하소연했다.

두 병원에 책임이 없다는 의료중재원의 감정서로 인해 경찰 수사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의료중재원 조정으로 나온 감정서는 경찰 수사와 법원 재판에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의료중재원에서 의료사고를 인정하지 않으면 경찰에서도 혐의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김씨도 의료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유기치사 혐의로 요양병원과 종합병원 의료진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했지만, 허위 진료기록 작성에 의한 의료법 위반 혐의만 검찰로 송치됐다. 경찰 수사 결과에 불복한 김씨는 올해 3월 업무상과실치사와 유기치사, 의료법 위반 혐의로 요양병원과 종합병원에 대한 고소장을 재차 접수한 상태다.

의료중재원의 부실감정 논란은 A씨 사례가 처음이 아니다.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올해 1월 의료중재원 전직 상임감정위원 3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하고, 지난달 13일에도 의료중재원 감정부서 임직원들을 업무방해 및 사문서 위조·행사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명확한 기준이 없이 감정부 상임위원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감정이 이뤄지다 보니 이렇게 한 사건을 두고 다른 사망 원인이 나오는 문제가 발생한다”며 “상임위원에게 권한이 집중돼 다른 비상근 상임위원이나 비의료인의 의견이 묻히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공기관의 신뢰성이나 공정성에 문제가 발생하는 만큼, 객관적인 기준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의료중재원은 사망자 한 명을 두고 사망 원인이 다르다는 지적에 대해 표현상의 문제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의료중재원 관계자는 “감정서의 사망 원인은 심부전 악화로 인해 급격히 경과가 나빠졌다는 소견일 뿐, 결국 사망에 대한 소견은 같은 것으로 보인다”며 “감정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알려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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