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만5세 입학' 추진..초등 교사들에게 물었다

한광범 2022. 8. 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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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90% 이상 반대.."인력양성 매몰된 졸속행정"
"두살 많은 아이와 경쟁? 대부분 아이에겐 불가능"
"엘리트 중심적 발상..만5세부터 사교육 내몰릴 것"
"요즘 아이 똑똑해졌다? 실제는 더 어려지고 있어"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윤석열정부가 2025년부터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5세로 하향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교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교사들은 교육 현실을 전혀 모르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지난 1일 전국 1만 662명의 교사들을 상대로 진행한 긴급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4.7%가 입학 연령 하향 정책을 반대했다고 밝혔다. 반대 교사의 82.2%가 ‘아동의 정서 등 발달단계와 교육과정 난이도 등을 전혀 고려치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

지난 1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유치원에 어린이가 등원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응답 교사들은 ‘본인 아이를 만 5세에 입학시킬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91.1%가 없다고 답했다. 교사들은 주관 응답에서 “인력양성에 매몰돼 졸속으로 추진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정치가 교육에 입혀지고 정권마다 학제개편이 단골 레퍼토리로 반복되고 있다”, “조기 진학이 열려 있는데 왜 일률적으로 적용하는지 무리인 것 같다” 등 우려를 쏟아냈다.

2일 이데일리와 만난 교사들도 학제 개편안에 대해 우려를 쏟아냈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에 근무 중인 40대 교사 A씨는 “정부 정책은 학교 현장에 교육이 아닌 보육을 요구하는 구조”라며 “보육과 교육은 엄연히 다른데, 전혀 다른 보육을 학교 현장에 떠맡기겠다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초등 저학년, 몇 개월 차이만으로 격차 벌어져

그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몇 개월 차이만 나도 학교생활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며 “1년도 훌쩍 넘게 차이 나는 아이들을 같은 학년에 넣는다면 그 차이는 더 벌어지게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 중인 30년 경력의 교사 B씨도 “과거 3월 기준으로 입학할 당시에도 1~2월 출생 아이들 중 학교생활 어려움으로 유예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만 5세와 6세가 다니는 전환 시기는 물론, 만 5세만 다니게 되는 하향 완료 후에도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교사들은 입학 연령 하향의 실익이 없다고 지적한다. B씨는 “현재도 원할 경우 조기입학이 가능하지만 대부분 학부모가 아이의 부적응을 우려해 이를 꺼리고 있다”며 “굳이 왜 무리하게 제도 변경을 추진하는지 모르겠다”고 일침을 가했다.

정부가 ‘엘리트 중심 교육’에 매몰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발언은 지난달 29일 대통령업무 보고 브리핑에서 “아이들을 조기에 공교육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 미래 커리어 설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일단은 입학 연령을 앞당기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특출난 아이들 중심 맞춤 교육?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 중인 30대 교사 C씨는 “최대한 다수의 아이들이 따라올 수 있는 교육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며 “만 5세에 입학해 성공을 거둔 극히 일부의 특출난 케이스를 기준으로 교육 정책을 만들어선 안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학 방역·학사 관련 대학총장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너무 이른 나이에 학업에 투입되는 아이들로서도 스트레스가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아이들이 경쟁에 내몰리며 놀 수 있는 권리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다.

B씨도 “결국 만 5세부터 학교에 다니게 되면 다수 아이들은 그에 맞춰서 사교육에 내몰리게 될 것”이라며 “인재 육성이라는 명목으로 경쟁에 내몰리는 나이를 낮추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A씨도 “뛰어놀아야 할 나이엔 뛰어놀게 해야 한다”며 “‘커리어 설계’를 이유로 아이들이 왜 행복권을 침해당해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아이들이 과거에 비해 지식 습득 정도가 더 빨라졌다’는 교육 수장의 인식에 대해서도 황당하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A씨는 “정보의 홍수 시대니까 아이들도 그에 맞춰 주변에서 보고 듣는 게 많아졌다. 당연히 아는 것도 많아진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생활력이나 생활습관 측면에서 보면 과거 아이들보다 훨씬 미숙하다”고 설명했다.

“정작 학교 현장 급한 정책 놔두고…”

C씨도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아본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생활적인 측면에서 점점 더 어려지고 있다는 것을 경험한다”며 “요즘 아이들이 똑똑해졌다? 학교 현장에선 절대 그게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교육 정책의 우선순위가 잘못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당장 초등학교 교육 현장에서 계속되고 있는 문제에 대해선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입학 연령 하한에 몰두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B씨는 “그동안 돌봄 교실을 확대하며 정작 시설 투자 등에 소홀해 특별활동 교실 등 아이들의 학습권과 직결되는 시설을 반대급부로 줄이고 있다”며 “선언적 의미의 돌봄 확대가 오히려 학습권 침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C씨도 “다수의 초등학교에선 시설 부족 등으로 아이들이 교실에서 배식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정작 급한 정책을 외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총은 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 한국유아교육행정협의회 등과 함께 정치권 등 관련 기관을 상대로 학제 개편 저지를 위한 전방위적 활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한광범 (toto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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